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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딥플로우 - 양화
    rhythmer | 2015-04-20 | 4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딥플로우
    Album: 양화
    Released: 2015-04-13
    Rating:
    Reviewer: 남성훈









    하드코어 랩퍼 딥플로우(Deelflow)는 전작 [Heavy Deep](2011)에서 '홍대'라는 공간으로 이야기의 범주를 축소하면서도 세밀한 캐릭터 묘사와 출중한 연기력, 그리고 과감한 구성을 통해 근래 보기 드물게 중량감 있는 앨범을 만들었었다. [Heavy Deep]은 분명 가장 견고한 전개와 마감을 보여주는 한국 힙합 앨범 중 한 장이다. 더불어 단순한 듯 효과적인 기획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컴필레이션 [RUN VMC]에서 딥플로우가 지닌 강점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의 세 번째 솔로작인 [양화]에 거는 기대가 바로 이러한 강점에서 기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딥플로우라는 랩퍼의 경력을 면밀히 살피는 이가 아니라면, 전작 [Heavy Deep]을 [양화]의 감상 전이나 감상 이후라도 꼭 접할 필요가 있겠다. [양화]는 성공적인 속편의 법칙을 충실하고 영리하게 따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딥플로우를 TV에서 볼 일은 없지 But 날 안다면 올리는 엄지 멜론차트에 랩송 다 구려 난 그걸 불 난 집 지켜보듯 구경 걔네 대부분이 구면 내게 인사해 그럼 난 소금 뿌려’ - 불구경

    딥플로우는 [양화]에서 작품의 스케일을 충분히 확장하고 누구든 전작 [Heavy Deep]의 감상을 마치고 궁금해했을 주인공의 또 다른 이면을 그 확장의 폭에 적절하게 배치한다. [Heavy Deep]의 전부를 할애했던 ‘홍대’는 "진짜 어울려"부터 "나 먼저 갈게"까지 앨범에서 겨우 1/3을 차지하는 다섯 트랙의 구간만 차지할 뿐이다. 불과 4년 사이에 그곳은 "낡은 신발"을 신고 "양화"(대교)를 타고 택시로 출퇴근하듯 다녀오는 일터와 같은 공간으로 바뀌어있다. 이런 구성미 덕분에 현실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빌어먹을 안도감”이나 “나 먼저 갈게”보다 하드코어 랩퍼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잘 어울려”, “당산대형”, “작두” 구간이 훨씬 더 깊은 페이소스를 발산하는 상황은 앨범의 백미다. 대신 그는 집에서 반쯤 포기한 듯 힙합 장르 시장의 현실을 “열반”의 상태에서 “불구경”하듯 조롱하고, 일을 마치고는 “역마”(살)가 낀 상태로 미련 없이 홍대를 떠나 힙합과 별 상관없는 서울의 부조리한 “Cliche”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캐릭터의 본질은 유지한 채 동일한 공간배경과 이를 충실히 반영하는 트랙들을 뭉쳐서 한 구간에 배치함으로써 정서적인 이물감 없이 스케일을 확장해내고 있다. 예를 들어 “Dead Line”의 ‘약속의 장소 어쩌면 다름 아닌 내 엄마의 품’이라는 가사는 한국에서 힙합 랩퍼로서 겪는 치열함과 고단함 끝에 찾아가는 가족을 그리는 후반부를 여는 결정적 라인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그리는 뻔한 주제를 대하는 청자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듯 크게 네 개로 나뉜 구간은 서로가 각 구간의 감흥에 깊이를 더하는 간접적 배경으로 절묘하게 기능한다.

    듣다 보면 딥플로우의 짧은 하루로도 읽을 수 있는 앨범의 구성미는 당연히 개별 트랙의 뛰어난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탁월한 수준이라 치켜세울 수 있다. 둔탁한 드럼이 주도하는 무게감 있는 루핑 위로 등장하는 다양한 사운드 소스의 재치있는 배치는 앨범 전체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각 곡의 가사가 추구하는 무드를 성공적으로 조성한다. 대부분 트랙에서 자연스럽게 상상력을 발휘해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러한 프로덕션은 앨범의 킬러 트랙들인 “불구경”, “작두”, “양화”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특히, 홍대 클럽 무대를 초현실적 공간으로 단숨에 탈바꿈시키는 “작두”의 비트는 프로듀서로서 딥플로우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딥플로우는 여느 때처럼 단출하지만, 세심한 단어선택 후 이를 못 박듯 배치하면서 특유의 톤 조절로 비장함에 약간의 유머를 섞어낸다. 그 유머가 서글픔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딥플로우표 페이소스’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다만, 이번 앨범에선 많은 수의 피처링 진을 확인할 수 있는데, 모두가 뛰어난 랩 퍼포먼스를 보여줬음에도 몇몇 트랙에서는 참여 랩퍼의 접근법이 감상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낡은 신발”에서 효과적으로 딥플로우의 입장을 보완하는 셔니슬로우(Sean2slow)의 랩과는 다르게, 온전히 딥플로우에 집중했어야 할 “당산대형”에서 바스코(Vasco)의 등장은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식이다. 더해서 “작두”에서 미지의 공간으로 무대를 그려내는 딥플로우와 넉살에 이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 클럽명과 레이블명을 끌어와 전혀 다른 접근법을 선보이는 허클베리피(Huckleberry P), 그리고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불편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Cliche”에서 같은 주제 아래 있지만 스토리텔링 트랙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끊는 차붐의 가사는 아무래도 곡의 집중도를 떨어트리기도 한다. 앨범 전체의 흐름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어릴 적 우상들이 하나도 안 멋있어 티비를 껐지 그래 씨발 아직도 난 여기 있어 내 동생들 말이 '형은 꼭 잘돼야 돼' 잘되는게 뭔데? 지금 난 창피하니?’ - Dead Line

    [양화]는 딥플로우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탁월한 전개와 마감의 구성미, 색이 뚜렷하면서 진부하지 않은 프로덕션, 그리고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뚜렷한 감정선의 랩으로 최근 몇 년간 발표된 한국 힙합 앨범 중 단연 돋보이는 완성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보편적인 일상과 한참은 떨어져 있는 하드코어 랩퍼의 일상을 담아내지만, 딥플로우가 던지는 감정선은 쉽게 보편성을 획득할 성격의 것들이기 때문에 많은 이가 큰 무리 없이 묵직한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한국 힙합의 흐름을 살핀다면 반드시 경험해봐야 할 견고한 앨범을 통해 딥플로우는 다시금 스스로 실력과 경력 모두 한 단계 위로 올리는 성취를 이루어냈다. 진정한 베테랑이 만든 작품이라 치켜세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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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asym (2015-06-03 17:28:13, 122.128.177.**)
      2. 이정도면 수작이상이죠
        몇년뒤에는 Classic이될지도
      1. Schopenhauer (2015-04-25 11:38:40, 121.88.163.***)
      2. 좋은 앨범
      1. Bruce Mighdy (2015-04-20 00:27:42, 58.123.207.**)
      2. 저랑 비슷한 시각에 양화 리뷰를 쓰셨네요~ 의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번 양화는 정말 수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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