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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슬릭 - Colossus
    rhythmer | 2016-06-15 | 2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슬릭(Sleeq)
    Album: Colossus
    Released: 2016-06-02
    Rating:Rating:
    Reviewer: 이병주









    한국 힙합 씬에 여성 래퍼가 부족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다. 물론, 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세계 힙합 씬에도 적용할 수 있는 현상이다. 오랜 기간 힙합 씬의 주인공은 남성이었고, 그 흐름 안에서 때론 지나친 마초성이 부각되며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한국 힙합은 장르가 지닌 매력과 문제점을 동시에 끌어안은 상태로 나아갔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접한 몇 안 되는 여성 래퍼들은 남성과 비슷한, 혹은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톤과 플로우를 구사하는 이들로 대표됐다. 그 다음 섹시한 컨셉트가 뒤따랐다.

     

    여전히 단순한 남성성 과시가 아니라 여성 혐오로 이어지는 어긋난 마초성을 힙합의 주된 캐릭터로 규정하며 매달리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다행히 일각에선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 틀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자성과 자연스럽게 등장한 진보된 프레임의 작업물을 통해 모두 나타나고 있다. 우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여성 래퍼들의 모습부터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직 그 수가 매우 부족하지만, 수 년 전 등장한 케이온(Kayon)이 있었고, 첫 앨범 [Colossus]를 발표한 슬릭(Sleeq) 역시 인상적으로 그 흐름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앨범에서 슬릭의 가사나 랩 스타일이 갖는 특징은 사실 과거 케이온의 그것을 설명하던 포인트와 상당히 유사하다. 남성적, 혹은 여성적 표현 양식을 강박적으로 따라가거나 노골적인 장치로 사용하려는 과거의 여성 래퍼들과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그렇다. 슬릭이 여성 래퍼라는 점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단 몇 가지의 표현들을 통해서만 되새길 수 있을 뿐이다. 그녀의 랩 스타일은 소속 레이블 데이즈 얼라이브(Daze Alive)의 수장 제리케이(Jerry.K)와도 상당히 닮은 부분이 있는데, 여유로운 구성보다는 빽빽하게 가사를 집어넣고 종종 두운을 강조해서 읽어주는 플로우 구성이 특히 그렇다.

     

    반면 가사의 내용 면에선 선명한 직설을 통해 이야기를 이끄는 제리케이의 것과 어느 정도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조화가 슬릭의 캐릭터를 만들어내지만, 모든 트랙에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언급했던 랩 스타일과 가사 쓰기의 조화가 다소 삐걱거렸을 때는 "Rap Tight" 같이 그 감흥이 쉽게 식는 트랙이 나온다. 의도한 과잉으로 실력을 뽐내는 것에 집중한 곡이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고, 앨범 내에서 간혹 드러나는 이물감 있는 특유의 발음도 랩의 속도나 가사에 따라 어색한 흐름을 형성해 아쉽다.

     

    정작 슬릭이 지닌 랩의 기술적 운용 능력은 서사를 따라 집중하게 하는 다른 트랙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Liquor”나 “Effel” 같은 곡은 기술적으로나 가사적으로 주목할만한 트랙들이며, 앨범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또한, 그윽한 비트 위로 아티스트이기에 앞서 장르의 팬이었던 자신을 현재의 장르 팬과 오버랩하며 소박한 심경을 내비치는 "공연장 맨 앞줄에" 같은 곡이 남기는 여운도 좋다.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힘을 보탠 비트에선 일관성 있는 무드를 유지하고자 한 흔적이 눈에 띈다. 대체적으로 작금의 트렌드를 따르거나 특정 시대의 프로덕션을 구현하는 방향에서 벗어나 간소한 구성과 깔끔한 진행을 앞세워 자연스럽게 랩이 돋보이게끔 했다. 톤 다운된 심플한 비트 위주의 초반부는 앨범의 약한 고리가 되었지만, 대조적으로 신스음과 화려한 변주가 가미된 첫 곡 "Colossal"이나 "Eiffel"은 앨범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트랙들이며, 그녀의 랩을 확실하게 뒷받침한다.

     

    비록, [Colossus]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결정적 구절이나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 킬링 트랙을 찾긴 어렵지만, 들을수록 감정이입이 커지는 치밀한 가사와 일관성 있는 구성은 인상적이다. 그렇기에 앨범 단위로 감상했을 때 매력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동안 그녀를 둘러싼 긍정적 수식들이 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힙합 씬이 강박적으로 만든 여성 래퍼의 틀로부터 자연스레 거리를 두면서 수준급의 결과물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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