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자이언티 - OO
- rhythmer | 2017-02-16 | 2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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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자이언티(Zion.T)
Album: OO
Released: 2017-02-01
Rating:
Reviewer: 황두하
초창기 자이언티(Zion.T)는 말하듯 음절에 강세를 두는 독특한 톤의 보컬과 캐치한 멜로디 라인으로 특색 있다는 평을 받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음악 자체는 기존에 있었던 스타일의 집합체였다. “만나”나 “씨스루” 같은 경우에는 자이언티보다 당시 프라이머리의 주력 스타일인 레트로 소울과 펑크(Funk) 사운드를 차용했던 것이고, 이후 정규 데뷔작인 [Red Light]의 타이틀곡이었던 “Babay”도 이를 잇는 트랙이었다.앨범의 다른 수록곡들도 빈티지 소울, 일렉트로닉 팝, 레게 등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을 뿐 딱 그의 스타일이라고 할만한 부분은 없었다. 자이언티의 음악을 특별하게 한 건 독특한 캐릭터와 탁월한 보컬, 그리고 일관된 컨셉트 아래 트랙을 묶는 구성력이었다. 그럼에도 보통 그 시대에 손 꼽는 아티스트들에게서 느껴지는 고유한 음악적 아우라를 결정짓는 요소가 여전히 부족해 보였다.
그런 그의 스타일이 정리되기 시작한 건 2014년에 발표한 히트 싱글 “양화대교”부터다. 장르적인 맛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갈만한 소울 팝 프로덕션 위에 특유의 리듬감이 살아있는 멜로디 라인과 단순하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가사가 얹힌, 그의 매력이 응축한 곡이었다. “양화대교”를 통해 자이언티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크게 상승한 건 물론이고, 특유의 음악 세계 역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발표한 “꺼내먹어요”, “No Make Up”, 크러쉬(Crush)와 함께 한 “그냥” 등은 모두 같은 선상에 있는 곡들이다. 그래서 “양화대교” 이후 자이언티의 음악을 변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오히려 자기 스타일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사실 그가 YG행을 택했을 땐 너무 레이블의 색에 묻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무려 4년 만에 발표한 [OO]은 그동안 정돈된 음악 스타일을 앨범 단위로 펼쳐놓은 결과물에 가깝다. 인스트루멘탈 트랙을 빼면 총 7곡 밖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어떤 스타일에서든 찰진 합을 보여주는 특유의 보컬과 미려한 멜로디, 그리고 단순한 듯하지만, 감성을 파고들며, 어감이 잘 살아있는 가사의 힘은 여전하다.
첫 트랙인 보사노바 재즈 리듬의 “영화관”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가사와 귀에 맴도는 멜로디 라인으로 앨범에 몰입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트랩 리듬 위에서 랩과 보컬을 오가며 인간의 모순적인 욕망을 노래하는 “나쁜놈들”, 지드래곤(G-Dragon)의 참여와 아이돌 비하 논란을 일으킨 가사로 화제를 모은 “Complex”, 어쿠스틱 기타 위로 지친 마음을 노래하는 “바람 (2015)” 등, 모두 자이언티 특유의 감성이 빛을 발한 트랙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Comedian”은 미니멀한 신시사이저 위로 창작자의 고뇌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며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데, 2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이 아쉬울 정도다.
다만, 몇몇 곡에서는 과거 히트 싱글을 답습한 관성적인 진행 탓에 흐름이 어그러지곤 한다. 타이틀곡인 “노래”와 빈지노(Beenzino)와 함께한 미디엄템포 알앤비 트랙 “미안해”가 그렇다. 두 곡 다 기존의 표현방식을 살짝 비튼 가사들이 반전을 위한 반전 같은 느낌이고, 멜로디 라인은 다른 곡들에 비해 느슨하다. 지나치게 대중적으로 접근하려다 보니 길을 잃을 느낌이다.
점차 색깔이 뚜렷해져 가던 자이언티의 음악은 [OO]를 통해서 그 매력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준수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가운데 몇몇 곡에서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식상함이 감지되기도 한다. 이처럼 약간의 아쉬움을 동반하지만, 본작은 국내 알앤비 씬에서 보기 드문 재능과 스타성을 갖춘 뮤지션의 현재를 오롯이 담은 작품이며, 준수한 곡들의 모음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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