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제시(Jessi)
Album: Un2verse
Released: 2017-07-13
Rating:
Reviewer: 이진석









한국힙합 씬에 여성 랩퍼가 부족하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현재 제시(Jessi)가 각광받는 정도는 다소 의아하다. 제시카 에이치오(Jessica H.O)라는 이름으로 2000년대 중반에 데뷔했지만, 그다지 이목을 끌지 못했을뿐더러, 이후의 활동 역시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유명해진 건 여성 랩퍼 오디션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를 통해서다. 10년여 동안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그녀는 해당 방송에서 베테랑 랩퍼로 둔갑했고, 결과적으로 가장 득을 많이 본 아티스트가 되었다. 이후 방송에서도 가수 지망생들의 랩 선생으로까지 활동했지만, 정작 떠올릴만한 본인의 결과물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런 가운데 제시의 첫 EP [Un2verse]가 발표됐다.

그녀가 방송을 통해 구축한 ‘센 언니’ 캐릭터는 앨범 전반에 걸쳐 중심 콘텐츠로 기능한다. 첫 트랙인 “Gucci”는 이 같은 캐릭터가 음악과 가장 효과적으로 맞물린 곡이다. 동시에 앨범에서 그나마 귀를 잡아끄는 트랙이기도 한데, 힘있게 치고 나가는 클럽 뱅어 류의 프로덕션과 무게감 있는 발성이 제법 잘 어우러진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다. 첫 곡에서부터 예상한 감흥이 무색할 만큼 이어지는 곡들의 감흥은 더더욱 떨어진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심각한 건 가사의 수준이다. 특히, 앨범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어 가사는 정도가 심각하다. 애초에 작사에서 다른 랩퍼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부터 치명적이지만, 그러한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표현으로 점철되었다. 게다가 'The 오빠s call me 누나'처럼 간간이 등장하는 민망한 한영혼용 라인 역시 실소를 유발한다. 다섯 트랙의 짧은 러닝타임 내에서 최대한 다양한 주제를 꺼내 어필하려 하지만, 이를 끌어가야 할 제시의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시도 자체가 무색하게 다가온다. 다채로운 색을 보여주긴커녕, 작품의 산만함만 더하는 결과가 된 셈이다.

프로덕션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본토의 메인스트림 힙합 사운드와 구성을 적극적으로 차용했지만, 뻔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변주와 밋밋한 진행이 이어진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결국, 제시 특유의 무게 있고 시원시원한 발성만 남았다. 그리고 이 같은 발성을 바탕으로 한 제시의 랩 퍼포먼스가 유일하게 힘을 발휘하는 건 피처링 작업물을 포함한 후렴구에서뿐이다. 그 외의 지점에서는 매력을 발견할 수 없으며, 정규가 아닌 EP 규모조차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한다.

그녀가 전면에 내세우는 ‘센 언니’ 컨셉트는 본인이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캐릭터지만, 동시에 전형성으로 빠질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이는 [Un2verse]에서 특히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러 면에서 제시는 니키 미나즈(Niki Minaj)로 대표되는 미국 메인스트림 여성 랩퍼의 클리셰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으며, 랩 실력 면에서도 허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Un2verse]는 그녀가 ‘언프리티 랩스타’ 때부터 그토록 내세웠던 10년 넘는 경력이 민망할 정도로 허술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