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차붐 - Sour
- rhythmer | 2017-08-02 | 3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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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차붐(Chaboom)
Album: Sour
Released: 2017-07-21
Rating:
Reviewer: 황두하
차붐(Chaboom)은 현재 씬에서 가장 독보적인 캐릭터를 가진 랩퍼다. 프로듀서 마일드 비츠(Mild Beats)와 함께했던 석장의 앨범을 통해 ‘안산 양아치 랩’이라고 정의할만한 특정한 무드를 창조한 것만 봐도 그렇다. 특히, 2014년 작 [Original]은 이 같은 ‘안산 양아치 판타지’를 작정하고 정면에 내세운 다음, 거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을 극적으로 엮은 수작이었다.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발표한 EP [Sour]에서도 그러한 기조는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Original] 이후의 달라진 상황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두 앨범 사이에 차붐의 신상엔 꽤 큰 변화가 있었다. 중국 투자자와 함께 제작하는 아이돌 기획사의 사장님이 됐고, 어느 정도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작년 여름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그의 사업 역시 접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 웃픈(?) 스토리는 EP의 중심 내러티브가 되었다.
우선 첫 트랙인 “이빠이”에서 그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속물적인 욕망에 대해 피력하고, “리빠똥”과 ‘안산 트릴로지’의 마지막 시리즈인 “안산 블루스”를 통해 본인의 캐릭터를 다시 한번 강하게 상기시킨다. 힙합 씬의 사장님들과 함께한 한국식 스웩(Swag) 트랙 “에쿠스”를 지나면, 시점이 중국으로 옮겨지는데, 성공 스토리가 이어질수록 감정선이 가라앉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특히, 친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소주가 달아”와 역마살 낀 인생과 순수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토로하는 “몇 밤 더 자고 가”로 이어지는 라인은 앨범에서 가장 진한 여운을 남기는데, 차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빛을 발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의 공허함과 씁쓸함을 이야기하는 두 트랙 “로얄제리”와 “돈 명예 섹스”가 마지막으로 이어지면서 그가 지난 3년 동안 느낀 진솔한 감정을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앨범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돈 명예 섹스”의 아웃트로에 그의 실패를 조롱(?)하는 여성의 내레이션이 나오며 보너스트랙 “엿”과 “장미”로 이어진다. 보너스트랙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앨범의 내러티브에 꼭 필요한 곡들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사회와 힙합 씬, 그리고 자신을 통렬하게 조롱하고 비판하는 “엿”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처럼 높은 가사적 감흥에 방점을 찍는 건 특유의 슬랭이다. 차붐은 미국의 랩퍼들이 그러하듯 본인만의 속어를 창조하고 늘어놓는다. 단어의 음절을 거꾸로 배치하여 그대로 읊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똥파리'를 거꾸로 발음한 '리빠똥'이나 ‘카드’를 거꾸로 발음한 '드카', ‘지갑’을 거꾸로 발음한 '갑지' 등이 그렇다. 물론, 아예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미국 랩퍼들의 방식과는 다소 다르지만, 단순히 음절 뒤집기만을 통해서도 신선한 느낌과 찰진 발음의 맛을 전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무적이다. 그동안 한국 랩퍼들에게선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라 더욱 흥미롭고 말이다.
한편, 프로덕션은 전작과 다르게 조금 더 트렌드를 흡수했다. 여전히 “리빠똥”이나 “엿”처럼 투박한 붐뱁 트랙이 자리했지만, 근래 유행하는 트랩 사운드를 꽤 괜찮게 구현한 “에쿠스” 같은 트랙도 눈에 띈다. 프로덕션 대부분을 책임진 마진초이(Margin Choi)가 다양한 스타일을 오가며 차붐에게 어울리는 옷을 맞춰주었다. 이외에도 버기(Buggy), 힙인케이스(Hipincase), 요시(Yosi) 등이 참여했지만, 특별히 튀는 구간 없이 일정한 완성도와 색깔을 유지한다. 발음을 씹어먹으며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차붐의 랩 퍼포먼스 역시 프로덕션과 맞물려 전보다 훨씬 타이트해졌다.
꽤 많은 피처링 게스트의 조력도 안정적이다. 특히, 처음으로 오토튠 랩을 시도한 딥플로우(Deepflow)와 신예 랩퍼 디젤(Dsel), 자신의 태도와 주변 상황을 노골적으로 내뱉은 화지 등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스킬적으론 준수하지만, 곡의 테마와는 조금 동떨어진 가사를 쓴 팔로알토(Paloalto)와 스윙스(Swings)는 아쉽다.
[Sour]는 EP지만, 정규앨범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알찬 구성과 탄탄한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다. 전작처럼 정서적으로 온도 차가 나는 트랙을 억지로 배치하지 않고, 내러티브에 집중했다는 점 역시 만족스럽다. [Original]을 통해 ‘안산 양아치 판타지’라는 견고한 영역을 쌓은 차붐은 이를 바탕으로 실제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Sour]에 현실성을 더했다. 이쯤 되니 그의 음악 커리어뿐만 아니라 인생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지가 매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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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ogba (2017-08-02 22:10:46, 222.112.114.***)
- 오랜만에 음반 들고 나오셔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CD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빨리 듣고 싶어서 일단 음원부터 구입해서 하루 두 번 정도는 돌립니다.
올해는 EP앨범이 괜찮네요. Buffet EP, 차붐형님 Sour EP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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