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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히피는 집시였다 - 나무
    rhythmer | 2017-08-29 | 2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히피는 집시였다
    Album: 나무
    Released: 2017-06-12
    Rating:
    Reviewer: 황두하









    그룹 와비사비룸은 신선한 프로덕션과 독특한 기운의 랩이 어우러진 앨범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멤버들은 팀으로서뿐만 아니라 각자의 커리어도 쌓아가는 중인데, 그중 제이플로우(J-flow)는 역할 분리가 확연하다. 팀에선 랩에 전념하지만, 개인 작업에선 프로듀싱을 겸한다. 2015년에 발표된 제이통(J-Tong)의 문제작 [이정훈]에서 중간중간 정색한 듯 끼워 넣은 백양산”, “”, “호흡등의 인스트루멘탈 트랙들이 바로 그의 손을 거친 곡들이었다. 해당 트랙들은 근 몇 년간 유행하는 얼터너티브 사운드에 근간을 뒀지만, 독특한 소스와 악기의 운용으로 마치 명상 음악 같은 무드를 만들어냈다. 앨범 자체는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이 곡들은 프로듀서로서의 제이플로우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듀오 히피는 집시였다는 제이플로우가 프로듀서로서 신예 보컬리스트 셉(Sep)과 의기투합해 만든 팀이다. 작년 12EP []을 발표하며 등장한 이들의 음악은 제이플로우가 제이통의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것들과 일맥상통한다. PBR&B를 위시하여 유행하는 얼터너티브 알앤비 사운드를 차용하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한국적인 무드를 담고 있다. 마치 민요처럼 토속적인 느낌이 드는데, 작년 신예 비단종이 알앤비와 국악 요소를 절묘하게 퓨전했던 것과는 또 다르다. 제이플로우 특유의 소스 운용과 한영혼용 없는 가사, 그리고 장르적 감흥이 살아있으면서도 동양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멜로디 라인이 어우러져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약 반년 만에 발표한 첫 정규앨범 [나무]는 지난 EP의 훌륭한 확장판과도 같다. 전작에도 수록됐던 한국화”, “어여가자가 포함된 앨범은 4곡밖에 되지 않아 미완의 느낌을 주었던 EP보다 훨씬 완결성이 있다. 전반적으로 큰 고저 없이 일관된 무드를 유지하지만, 완성도와 감성의 밀도가 워낙 높다 보니 집중도도 흐려지지 않는다. 더불어 또 다른 신예 오르내림(OLNL)과 소마(SOMA),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의 참여 덕에 음악적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특히, “지네연리지에 참여한 김오키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색소폰 연주로 매우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언급한 지네를 비롯하여 단선적으로 뻗어가는 오르간과 일렉 기타 연주 위로 셉의 폭발적인 가성이 진하게 파고드는 “Cold”, 곡이 진행될수록 다양한 소스가 어우러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 질척이는 질감의 드럼과 리듬 악기들의 운용으로 지친 발걸음을 묘사한 회색등은 가장 완성도가 뛰어난 곡들이다. 아울러 풍부한 감성을 바탕으로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트랙들에 성스러운 기운마저 불어넣는 셉의 보컬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앨범 초반부 지네와 같은 트랙에서 보컬에 의도적으로 이펙트를 먹여 악기처럼 운용하는 지점도 흥미롭다.

     

    가사 역시 본작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구체적인 묘사와 삶과 사랑에 대한 철학이 담긴 표현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며 강한 여운을 남긴다. 가장 구체적으로 부모님이라는 특정 대상을 호명하는 회색은 이 같은 가사의 힘이 빛을 발한 경우다. 다만, 우리말 가사가 고유한 무드를 형성하는 데 워낙 중요한 요소이다 보니 지네어여가자의 영어 가사가 아주 적은 분량임에도 무드를 해치는 듯하여 아쉽다.

     

    한국 힙합/알앤비 씬에서 레퍼런스 논란은 매년 반복되는 화두 중 하나이다. 정도를 떠나 직간접적으로 미국 메이저 씬의 영향을 받는 현실은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영향을 얼마나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해내느냐이다. 히피는 집시였다의 [나무]가 더욱 돋보이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트렌드인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어디에도 없던 그들만의 색깔로 재창조해냈고, 그것을 완성도 있는 앨범에 담아냈다. 매체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시안 얼터너티브라 할만하다. 랩퍼와 프로듀서 양쪽 포지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제이플로우는 물론, 본작을 통해 존재감을 아로새긴 셉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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