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에이트레인 - Hello, My Name Is Insecure.
- rhythmer | 2018-01-30 | 2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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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에이트레인(A.TRAIN)
Album: Hello, My Name Is Insecure.
Released: 2017-12-11
Rating:
Reviewer: 강일권
한국의 많은 힙합/알앤비 아티스트는 미국의 블랙뮤직 트렌드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구현하는데 집중해왔다. 그 결과, 이제 기술적인 면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에 올랐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한때 메이저 가요계에서 불거지던 카피캣 논란이 장르 씬으로 옮겨졌고, (독창성과는 다른 의미에서) 본인만의 색깔, 혹은 느낌까지 내는 아티스트는 여전히 생각보다 흔치 않다. 신예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에이트레인(A.TRAIN)은 그 흔치 않은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 건 아니었다. 지난 2016년 믹스테입(Mixtape) [to sugarhill]로 데뷔했을 때만해도 현재의 알앤비 사운드를 그럴 듯하게 구현할 줄 아는 여느 아티스트와 차별되는 지점을 찾기 어려웠다. 두 번째 믹스테입 [to sugarhill 2]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발표한 이 데뷔 EP에서 에이트레인은 이전보다 탁월해진 역량을 드러낸다.
단지 트렌드를 좇던 것에서 트렌드를 독자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여 본인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매우 불안정하고 어둡다. 이를 관통하는 프로덕션은 얼터너티브 알앤비다. 장르의 주된 특성 중에서도 침잠된 사운드와 어둡고 몽환적인 무드가 극대화되어있다. 듣는 이를 짓누르는 앨범 근저의 정서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야말로 [Hello, My Name Is Insecure.]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지점이다.
보컬, 사운드 소스, 멜로디, 곡의 전개 모두 충돌과 불협화음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우울과 상실감이 잔뜩 벤 가사가 전반을 지배한다. 그 안에서 지그시 살아나는 멜로디는 여운의 깊이를 더하는 요소. 여기에 에이트레인의 인상적인 보컬이 방점을 찍는다. 프로덕션의 일부로써 건조하게 흐르는 듯하다가 어느 새 파고들어 감정의 파고를 불러일으킨다.
마치 관조하듯 흐르는 비트와 사이사이로 끼어들어 정적을 방해하는 노이즈와 보컬 샘플의 조화가 절묘한 “그 만큼만”, 앰비언트 팝의 향이 알앤비에 스며들어 우울한 꿈을 꾼 듯한 감흥을 전하는 “Pity” 등은 이 같은 특징을 대변하는 하이라이트 곡들이다. 수록곡 중에서 가장 불안정한 기운이 부각된 진행을 보이는 “Virus”와 유일하게 리듬감 있는 진행이 돋보이는 “I Got My Feel”도 탁월하다.
특히, “I Got My Feel”은 가사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곡이다. 내내 움츠러들어 있던 앞선 곡들의 가사와 확연히 다른 정서를 표출하기 때문에 언뜻 이질감이 느껴지는 듯하지만, 서사의 흐름상 보편적인 스웩이라기보다 의식적인 반대 감정의 표출, 즉, 우울과 상실감에서 잠시나마 해방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감상의 흐름이 깨지지 않고 오히려 앨범의 무드를 더욱 견고히 한다.‘불안정으로부터 오는 불완전한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다는 아티스트의 의도는 양질의 음악 덕에 현학적인 홍보 문구로 전락하지 않고 설득력을 얻었다. 2017년의 마지막 달을 장식한 [Hello, My Name Is Insecure.]는 풍성했던 그해 한국 알앤비/소울 씬에 깔끔히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었다. 동시에 화창한 날씨가 예상되는 올해 알앤비 씬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 블랙뮤직 계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 한 명 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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