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재키와이 - Enchanted Propaganda
- rhythmer | 2018-07-16 | 1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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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재키와이(Jvcki Wai)
Album: Enchanted Propaganda
Released: 2018-07-06
Rating:
Reviewer: 이진석
비록, 첫 EP의 성과는 미미했지만, 재키와이(Jvcki Wai)의 캐릭터와 랩은 (레퍼런스 논란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웠다. 프로듀서 그레이(Graye)의 도움 덕에 몇몇 신선한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017년에 발매한 두 번째 EP [Neo EvE] 역시 음악적으론 아쉬웠으나 프로듀서보다 재키와이의 색이 돋보였다는 점을 주목할만했다. 특히, 인상적인 가사와 중독적인 후렴구의 “Anarchy”는 강렬했다.그리고 비로소 발표된 첫 정규작 [Enchanted Propaganda]. 힘있게 울리는 베이스, 겹겹이 쌓아 올린 전자음, 오토튠의 활용을 극대화한 랩-싱잉 등을 골자로 한 그녀의 음악세계는 이번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데뷔 초부터 협업해온 랩탑보이보이(Laptopboyboy)와 [Neo EvE]에 참여했던 이안 퍼프(Ian Purp)를 비롯하여 생소한 이름인 배드애스개츠비(badassgatsby), 에디 파우어(Eddy Pauer) 등등, 여러 프로듀서가 힘을 보탠 중에도 재키와이의 색이 중심을 잡았다.
일렉트로닉에 더 가까운 신시사이저의 활용과 공간감을 강조한 프로덕션 위로 재키와이의 보컬이 하나의 악기로써 얹히면서 고유한 색이 나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안정된 퍼포먼스다. 독특한 톤과 별개로 프로덕션에 의존하는 감이 있던 이전과 달리, 존재감 있는 벌스가 곳곳에 자리한다. “dOgMa”와 동명 타이틀곡 “Enchanted Propaganda”, 수록곡 중 가장 극적인 비장미를 선보인 “NeoClear”는 대표적이다.
이렇듯 그녀의 퍼포먼스가 충분한 힘을 발휘하는 곡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곡에선 감흥의 차이가 확연해진다. 일례로 “Life Disorder”나 “Digital Camo”에선 지나치게 단순화한 멜로디와 작위적으로 반복되는 후렴구가 발목을 잡는다. 가장 결정적인 약점은 가사에서 드러난다. 기존의 캐릭터에 전쟁 메타포를 엮어 내세운 콘셉트는 흥미롭다. 하지만 일부에선 너무 덤다운(dumb down)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호하게 다가오며, 전쟁과 관련된 단어의 나열은 앨범의 무드를 강조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혐오에 관해 노래한 “HATE Generation”은 그래서 더욱 아쉽다.
작품 전반을 휘감은 다소 거창한 주제와 은유의 기운을 뒷받침해줄만한 라인, 혹은 서사는 희미하고 콘셉트만 남은 모양새다. 반골 기질, 페미니즘, 성공에 대한 욕망, 종교와 꼰대를 향한 냉소 등이 뒤섞여서 강렬함을 선사한 “Anarchy” 같은 곡이 하나도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내내 비슷한 사운드와 어휘 선택, 그리고 단순한 라임이 이어지는 탓에 일정 시점 이후로는 자기복제의 반복으로 느껴진다. 피로감을 더하는 요소 중 하나다.
전에 없던 재키와이 고유의 스타일은 분명 흥미롭다. 다만, [Enchanted Propaganda]는 주목받는 신예의 첫 정규작으로서 장점보단 약점이 더 도드라진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만든 세계관이 소재의 나열 이상으로 뻗어 나가지 못한 점이 아쉽다. 재키와이가 추구하는 오토튠 랩-싱잉이 이미 전세계적으로 식상해진 수준에 이르렀다는 현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싱글 단위의 감흥을 앨범, 그것도 정규로 확장하기 위해선 분명 트랙의 개수나 늘어난 러닝타임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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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omis (2018-07-17 11:59:48, 120.50.80.**)
- Anarchy, Hyperreal처럼 확실히 도드라지는 킬링 트랙이 없다는 비판에는 동의합니다. 듣는 이 역시도 이 앨범의 서사와 컨셉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재키와이의 세계관을 수용하게 만드는 힘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고요.
그래도 언뜻언뜻 가사를 통해 제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꽤나 강렬했어요. 캐릭터도 좋고, 음악 역시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물론 이건 제가 '요즘 힙합'을 거의 듣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요.
채도와 밀도가 높은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라 부족한 지점이 눈에 띄더라도 일단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첫술에 배가 부르진 않았지만 독특한 풍미는 확실히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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