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뱃사공 - 탕아
- rhythmer | 2018-07-24 | 5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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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뱃사공
Album: 탕아
Released: 2018-07-18
Rating:
Reviewer: 남성훈
리짓군즈(Legit Goons)는 어느새 한국힙합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기운을 가진 집단 중 하나가 되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꾸준한 결과물과 다방면의 활동 덕분이다. 특히, 음악적인 부분에서의 발전이 도드라진다. 활동 초반엔 그들 고유의 매력이 발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어설픈 접근과 편차 큰 완성도 탓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2017년에 발표한 컴필레이션 앨범 [Junk Drunk Love]에 이르러 이를 완전히 해소하며, 커리어에서의 새로운 기점을 마련했다.뱃사공의 정규 2집 [탕아]는 그 이후에 나온 첫 앨범이다. 시기상 뱃사공은 물론, 리짓군즈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작품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작은 뱃사공의 음악적 능력이 제대로 응축된 한 방이다. 그가 꾸준히 추구해온 멋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 이는 [탕아] 속의 자기 서사가 세대론으로 확장되는 시사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것을 뱃사공이 의도했든 아니든 말이다.
급격히 경제가 성장하고 빈부격차가 고착화된 후, 자수성가가 불가능해보이는 시대, 뱃사공은 그 속에서 부대끼는 청춘의 비루한 현실을 ‘낭만’이란 멋을 덧씌운 본인을 통해 보여준다.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자수성가 판타지를 현실로 빚어주는 한국힙합의 기형적 틀에서 그가 비껴 서 있는 것이 오히려 부각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뱃사공이 치열하게 붙잡고 있는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는 태도’라는 사전적 정의처럼 현실도피에 가깝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이면의 씁쓸한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앨범을 여는 “축하해”에서 매일을 축하하는 긍정은 절대 쉽지 않은 일상을 짐작케 하고, 이어지는 “탕아”에서 자신을 방탕한 사나이(탕아)로 규정하여 웃음을 주지만, 들여다보면 그저 무해하고 성실한 청년일 뿐이라 결국 쓴웃음을 짓게 한다.
[탕아]엔 이런 식의 다층적 감상을 유도하는 페이소스 가득한 가사가 넓게 퍼져 있다. 노골적이지 않고 은근하게 말이다. “뱃맨”, “로데오”처럼 자신을 과시하는 트랙과 “돈이 없어도”, “우리집” 같이 일상의 풍경에 집중한 트랙 모두 공통의 정서를 풍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이전과 다르게 비루함을 숨기지 않는 마지막 트랙 “진심”이 던져주는 정서적 울림은 상당하다. “진심”의 ‘잘돼야 돼 잘돼야 돼 난’을 지나 다시 첫 트랙 “축하해”에서 ‘전부 잘되길 빌어’를 만날 때의 묘한 감정선 역시 특별한 경험이다.
이렇게 잘 쓰여진 가사의 힘은 지난 5년간 농익은 뱃사공의 랩 실력 덕분에 발휘된다. 가히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 [탕아]에서 그의 랩은 리쌍의 개리를 비롯한 비루하고 감성적인 정서를 강점으로 하는 래퍼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들이 놓쳤거나 강조하지 않은 랩 스킬을 갖췄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뱃사공의 랩은 기술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앨범의 테마에 최적화되었다.
능숙하게 비트를 타며 만드는 쫀득한 플로우는 속도감 있게 치고 나갈 때나 느릿하게 흐를 때나 능글맞을 정도로 여유 넘친다. 치밀하게 짜였기에 자연스럽고 세련된 라임 설계와 재치 넘치는 단어 선택 및 배치 능력 역시 랩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가사적으로 뱃사공이 주조한 앨범의 무드에서 벗어나 감흥을 해치는 팔로알토를 제외하면, 피처링 진의 조력도 뛰어나다. 특히, 초반부에서 만나는 제이통과 키드 밀리(Kid Milli)의 랩은 앨범의 핵심으로 기억될 만큼 인상적이다.
프로덕션 역시 다수의 프로듀서가 참여했음에도 뱃사공의 감독 아래 잘 취합되고 배치된 느낌이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빈티지(Vintage)한 사운드가 다양한 스타일과 무드의 비트를 잘 아울렀다. 대부분 곡에서 공간감을 부여하거나 특유의 질감을 더하는 전자기타 사운드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특히, 힙합 음악의 정체성을 놓지 않는 와중에 한국대중음악사에서 파생된 스타일의 영향이 느껴진다. 이는 [탕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다.
1970년대 이후 유행한 대학가의 그룹사운드를 연상시키는 생기 있는 연주, 그리고 ’60-‘70년대 한국적인 정서와 결합했던 사이키델릭 록의 영향도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프로덕션은 앨범의 주제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데 주효한 동시에 범대중적인 접근성까지 획득한다. [탕아]는 2015년에 나온 뱃사공의 첫 솔로앨범 [출항사]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 더불어 현재까지 리짓군즈 진영에서 나온 가장 뛰어난 결과물이며, 완성도 있는 앨범 가뭄에 시달리는 중인 2018년 한국힙합 씬에 내린 단비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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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로윈1031 (2018-07-25 18:43:45, 182.225.134.**)
- 작년 Junk Drunk Love를 기점으로 음악적으로 뭔가 더 나아간게 느껴졌습니다.
일단 리짓 군즈 하면 뭔가 재밌는 집단, 유머러스한 컨셉 같은걸 떠올리게 되지만 실상 그들의 작업물에서 느낄수 있는 건 전혀 신날것 없는 현실의 무게감과 밑바닥 근성이 주내용이라 듣다보면 재밌으려다 심각해지는 지독히도 한국적인 진지함이 묻어나와 아쉬웠는데,
이젠 낭만을 얘기함에도 허망하지 않고 멋과 아우라로 느껴질 만큼 감성의 호소력을 탁월한 기술적 완성과 신선함으로 능수능란하게 전달하고 표현해 전보다 훨씬 즐겁게 들을수 있었네요.
다만 fuck out my face에서 끝내주는 벌스를 남긴 뱃사에 비해 심각하게 재미를 죽인 팔로의 피처링은 정--말 아쉬웠습니다. (마치 당산대형에서 찬물을 끼얹은 바스코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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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omis (2018-07-24 19:49:38, 120.50.80.**)
- 특별한 장치나 과장 없이도 한 인간이 고스란히 녹아든 앨범.
비릿하고 따사로운 사람 냄새.
제아무리 해석을 잘한다고 한들, 외힙 가사를 보고 이런 감정을 느낄 순 없죠.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뱃사공이 언제까지 낭만을 부여잡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앨범을 기점으로 저는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뱃사공에게 애착을 가지게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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