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오도마 - 밭
- rhythmer | 2019-10-22 | 1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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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오도마(O'Domar)
Album: 밭
Released: 2019-09-17
Rating:
Reviewer: 이진석
오사마리(OSAMARI) 크루의 멤버 오도마(O’Domar)는 슬릭 오도마(Slick O’domar)라는 이름으로 꽤 예전부터 활동했으나 이렇다 할 대표작은 없었다. 그가 이목을 끈 건 이번 [쇼미더머니] 출연을 통해서다. 하지만 그마저도 큰 성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쇼미더머니]에 나온 래퍼들이 으레 그랬듯이 그 역시 새로운 결과물을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밭]은 그간의 인식을 뒤집을만한 작품이다.여느 래퍼들과 마찬가지로 오도마 역시 [쇼미더머니]에 몇 차례 출연했고, 큰 득을 얻지 못한 채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며 보이는 태도는 다른 이들과 사뭇 다르다. 한국힙합을 향한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굳이 자신과 씬을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멍청함에 건배 / 난 한국 힙합 중심에서 / 오늘도 취하기를 원해’와 같은 라인으로 본인 역시 비판의 대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시인한다. 이처럼 앨범 전반에 깔린 자조적인 시선과 열등감은 오도마의 이야기가 진한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근원이다.
앨범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가사적 성취다. 오도마는 한국힙합, 혹은 삶을 비유한 ‘밭’을 배경 삼아 “장미밭”인 줄 알고 뛰어든 곳이 실은 “가시밭”임을 깨달은 무명 래퍼의 고단한 삶을 절절히 풀어낸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선택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한국힙합의 현실을 “홍등가”에 비유하고, 그 안에 그 역시 속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급”을 통해 본인의 이중성을 털어놓는다.
점차 고조되는 감정선과 함께 씬에 뛰어든 후의 심경 변화와 다짐을 담은 “밭”은 앨범의 하이라이트라 할만하다. 이렇듯, 철저히 체험을 바탕으로 한 오도마의 이야기는 한국힙합의 뒷편에서 느낀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프로덕션 역시 인상적이다. 과거 프로젝트팀 건배와 평화로 함께 활동했던 건배가 키를 잡았는데, 과하지 않은 변주로 완급을 주면서도 일관성 있는 무드를 유지한다.
투박하게 다듬은 리듬파트를 바탕으로 붐뱁 위주의 프로덕션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이스 샘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악기로 사용한 점 역시 눈에 띈다. 붐뱁 사운드와 서정적인 무드의 결합도 좋다. 그중에서도 단순한 세션이 아니라 마치 또 한 명의 주연인 듯, 벌스가 끝난 후 펼쳐지는 김오키의 색소폰 연주가 진한 여운을 남기는 “상실의 시대”는 백미다.
차분히 박자를 밟아가는 그의 랩은 다른 신예들보다 우위를 점할 만큼 눈에 띄진 않지만, 탄탄한 기본기가 느껴진다. 다만, 그 이상의 감흥이 부족하다. 예전에 발표했던 믹스테입 [Journal From Chosen One]을 비롯하여 비슷한 시기의 결과물보다는 한층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톤과 박자감이 도드라진다. 그러나 다소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운 플로우가 종종 귀에 잡힌다. 다른 부분에서의 성취를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지점이다.
그럼에도 오도마가 [밭]을 통해 풀어놓은 이야기는 귀를 기울이게 한다. 오디션에 도전하고 씬의 중심에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신의 모습을 변호하지 않고 전시함으로써, 오히려 다른 래퍼들과 대조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선 묘한 괴리감이 들기도 한다. [밭]은 그가 보너스 트랙에 담은 말마따나 확실히 커리어의 터닝포인트가 될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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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철현 (2019-10-23 14:59:27, 58.123.30.***)
-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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