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히피는집시였다 - 불
- rhythmer | 2019-12-16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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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히피는집시였다
Album: 불
Released: 2019-11-18
Rating:
Reviewer: 황두하
듀오 히피는집시였다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음악 색깔을 지녔다. 프로듀서 제이플로우(JFlow)는 얼터너티브 알앤비와 엠비언트를 기반으로 특유의 침잠된 무드의 신시사이저와 독특한 소스들을 사용하여 고유한 사운드를 완성했다. 여기에 기교보다는 맑고 곧게 뻗어 나가는 직선적인 셉(Sep)의 보컬이 어우러져 이들만의 ‘아시안 얼터너티브’ 사운드가 나왔다. 이후, 3장의 정규 앨범을 통해 음악적 영역을 더욱 확장해왔다.전작으로부터 약 1년 만에 발표하는 네 번째 정규앨범 [불] 역시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팀의 색깔을 지키는 선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변화를 준 것이다. 색깔이 너무 강하여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갔다. 인트로 격인 “녹”에 이어 나오는 “젊음”부터 이러한 시도가 눈에 띈다. 오토튠을 먹인 보컬로 랩-싱잉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트렌드를 팀의 방식대로 소화해냈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짱유 역시 에너지 넘치는 랩-싱잉 퍼포먼스로 트랙에 역동성을 부여해주었다.
“파도”, “땅거미”, “마저”, “상심” 같은 트랙들도 인상적이다. 보컬에 딜레이, 디스토션 등의 효과를 걸거나 일렉 기타, 색소폰 등등, 각종 악기를 활용해 극적인 연출을 가미했다. 덕분에 차분하게 흘러가는 와중에도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몰입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김오키 새턴발라드가 참여한 “마저”는 최고의 순간이다. 색소폰 연주와 노이즈 소스가 맞물려 감정의 여백을 채워주는 마무리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멜로디 라인은 한층 캐치해졌다. “그대로”나 “공기” 같은 곡의 후렴구는 한 번 들으면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인상적이다. 특유의 무드를 강조하다 보니 멜로디가 다소 귀에 남지 않았던 전작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더욱 발전한 멜로디 어레인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앞서 언급한 짱유와 김오키 새턴발라드를 비롯한 게스트들의 활약 또한 흥미롭다. 특히, 다른 곡에서는 음색만이 남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후디(Hoody)가 “그대로”에서는 본인만의 감성을 가득 눌러 담은 보컬로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각각 “땅거미”와 “상심”에 참여한 우원재와 저스디스(JUSTHIS)도 뛰어난 퍼포먼스로 곡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다만, 그 양이 많지는 않지만, 영어 가사의 활용으로 히피는집시였다 고유의 음악적 무드를 헤친 것은 다소 아쉽다. 한국어로만 이루어진 시적인 가사 역시 팀의 음악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표현으로 공허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여전한 한편, 전보다 직접적으로 무너진 관계를 묘사하기도(“마저”, “상심”) 한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 트랙인 “춤”에서는 ‘에헤야 디야 어야디야’ 같은 여흥구를 활용해 민요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히피는집시였다는 데뷔 후 꾸준하게 결과물을 발표하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첫 EP [섬](2016)부터 지향하는 바가 확실했던 이들은 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변주를 주며 한계를 조금씩 넘어왔다. [불]은 이러한 시도의 과정이 성공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이미 그 자체로 장르가 된 이들의 음악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궁금해진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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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oneet (2019-12-16 15:31:15, 49.168.110.***)
- 단연 올해들은 최고의 앨범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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