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로파이베이비 - 미술관
- rhythmer | 2020-08-18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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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로파이베이비(Lofibaby)
Album: 미술관
Released: 2020-07-23
Rating:
Reviewer: 김효진
프로듀서 조(Zo)와 싱어송라이터 세이(SAY)로 이루어진 듀오 로파이베이비(Lofibaby)는 음악가이면서 낭독가 같다. 그들이 2018년 발매한 첫 정규 앨범 [N]은 한 편의 소설이다. 주인공 ‘S’가 열렬히 ‘N’을 좇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냈다.전작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장치를 여럿 설치했다. [N] 속에서 인털루드(Interlude) 역할을 하는 ‘Skit’은 멜로디가 아닌 내레이션이다. 로파이베이비가 직접 쓴 소설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들이 의도하고 만든 이야기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타이틀곡 “WORLD”엔 사운드 스케이프를 활용해 소설 속 주인공들을 둘러싼 환경을 상상할 수 있게끔 한다.
이처럼 로파이베이비는 여러 시도를 통해 음악에 다양한 요소를 융합시키는 아티스트다. 그래서 그들의 앨범은 오래 각인할 수 있는 컨셉트가 특징이다.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미술관’이라는 컨셉트 아래 전시, 미술, 음악을 같이 녹여냈다. 하나의 미술 전시회를 상상하게 한다. 프로덕션 면에서는 알앤비/소울을 중심으로 일렉트로닉을 융합시켰다. 오늘날의 얼터너티브 알앤비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시작부터 컨셉트에 충실하다. 가장 먼저 앨범 속으로 안내하는 것은 “도슨트1”이다. ‘안녕하십니까 관람객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얼핏 안내 방송 같기도 한 “도슨트1”은 미술관 도슨트처럼 앨범에 대해 설명한다. 앨범이 지향하는 지점과 앨범 내 구분, 지금부터 시작될 첫 번째 파트 소개까지.
“도슨트1”에 담긴 말처럼 각 트랙의 제목은 미술 기법 이름으로 간단히 정의돼 있다. 노랫말도 그렇다. “크로키”는 ‘가볍고 빠른 사랑’을, “수묵”은 ‘여유롭게 스며드는 사랑’을 표방한다. 트랙의 만듦새 또한 미술 기법을 닮았다. 짧은 시간 내에 특징을 포착해 색 없이 선만으로 빠르게 그리는 “크로키”는 캐치한 기타 리프로 표현했으며, 수성 물감으로 종이에 그리는 기법인 “수묵”과 “수채”엔 찰랑이는 소리를 더해 제목과의 개연성, 더 나아가 앨범 전체 컨셉트와의 연결점을 잇는다. 모든 미술 기법, 즉 모든 모양의 사랑을 총합한 듯한 마지막 트랙 “콜라주”는 사진 앨범을 차근히 훑어보는 듯한 감각을 선물한다.
로파이베이비는 확실히 음악으로 공간감을 만들 줄 아는 아티스트다. 동 떨어진 조각들을 데려와 하나의 공간을, 하나의 이야기를 건설한다. 본작에서 특히 그 재주가 두드러진다. ‘도슨트’를 기준으로 나뉘어진 파트들은 각각 사랑에 서서히 빠지는 순간, 사랑이 해(害)가 되는 순간, 사랑을 추억하는 순간으로 나뉜다. 분위기도 그에 맞게 고조된다. 그들의 의도가 다분히 담긴 앨범 구성은 앨범 전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컨셉트에 충실한 나머지, 일부 트랙의 온전한 힘이 부족한 게 단점이다. 음악보다 ‘미술관’이라는 컨셉트가 지닌 힘이 압도적이다. 각 트랙을 미술 기법에 비유했지만, 그 미술 기법의 개성을 온전하게 체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 닮은 트랙들이 있다. 미술 기법 자체가 비슷한 면을 가진 트랙들이다. “스크래치”와 “프로타주”, “수묵”과 “수채”는 실제 미술 기법이 유사해서인지 음악 스타일도 비슷하다. 각각 파트도 나뉘어져 있어 앨범 내 대응 관계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구성이 의도적일 순 있겠으나 전체를 아우르기엔 부족했다.
로파이베이비는 내딛는 걸음마다 묵직하다. 컨셉트에 입각한 트랙 리스트와 그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제작해 하나의 종합 예술을 창조한다. 오래 다듬어 결실을 이룬 것이 느껴진다. 비록, 음악적인 아쉬움은 존재하나 [미술관]에서 그들의 의지는 뿌리를 내려 둔중한 줄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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