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원슈타인 - ZOO
- rhythmer | 2020-09-04 | 1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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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원슈타인
Album: ZOO
Released: 2020-08-23
Rating:
Reviewer: 황두하
2018년 최고의 힙합/알앤비 앨범인 제이클레프(Jclef)의 [flaw, flaw]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참여 진 모두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이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생각이 많아”에 참여한 원슈타인(WONSTEIN)은 단연 눈에 띄었다. 이 한 벌스에서 그는 개성 넘치는 톤과 유연한 플로우의 랩-싱잉, 익숙한 단어를 낯설게 배치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가사를 들려주며 존재감을 아로새겼다. 더불어 1년 반 전에 만든 것을 2019년 정식 발매한 믹스테입 [Frankenstein]으로 그가 가진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과 날카로운 감각을 드러냈다.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즉흥성이다. 되는 대로 멜로디와 랩을 뱉어내는 것 같으면서도 유려하게 흘러가고, ‘아무 말’처럼 보이는 재치 넘치는 가사로 그사이에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즉흥성은 EP [ZOO]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프리스타일로 랩을 뱉으며 본인을 고양이에 비유하는 첫 번째 트랙 “새로운 고양이 Freestyle”은 앨범의 성격을 대변한다. 버벌진트(Verbal Jint)가 만든 피에르 본(Pi’erre Bourne) 스타일의 아기자기한 신시사이저가 주도하는 트랩 비트와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를 오마주한 퍼포먼스의 조화가 다소 어설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본인과 앨범을 소개하는 인트로격 트랙으로서 적절하다.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간은 “Life is a ZOOoo..”부터 “작은고기”까지 이어지는 초반부다. 대체로 침잠된 무드의 무난한 사운드 디자인을 살려내는 건 랩과 노래를 수시로 오가며 넘실거리는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다. 본인의 개성과 세상의 기준 사이에서 갈등하며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가사도 매우 흥미롭다. 추상적인 표현 사이로 구체적인 상황 묘사를 끼워 넣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독특한 단어 선택으로 호전성과 서정성이 섞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랜만에 타이트한 랩 싱잉 벌스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 “GOAT”의 버벌진트도 인상적이다.
후반부에 위치한 곡들도 준수하다. 슬로우잼 넘버 “Late night walker”, 캐치한 멜로디라인으로 물질적인 것에 대한 애증을 노래한 “3기니”, 타이트한 랩으로 빠르게 내달리다가도 여백을 두는 멜로디 라인으로 긴장을 조였다 푸는 “노르웨이 팽귄” 등등, 모두 개성 강한 원슈타인의 음악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곡들이다. 더불어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당신이에요”는 빈티지한 질감의 컨트리 록 사운드를 세련되게 구현했다.
정중앙에 위치한 스킷 “Waves Room Skit”도 독특하다. 본작의 기획 의도를 직접 원슈타인이 키보드 연주 위로 내레이션과 노래를 오가며 설명하는데, 마치 공연 중간에 멘트를 던지는 듯하다. 이 같은 즉흥성은 특별한 음악적 경험을 선사한다. 앨범을 더욱 쉽게 이해하며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티스트와 보다 친밀감을 느끼도록 만들기도 한다. 여러모로 영리함이 돋보이는 트랙이다.
다만, 벌스와 후렴의 경계가 모호하거나 급작스레 곡이 끝나는 등, 곡마다 전형적인 구성을 따르지 않은 탓에 전체적으로 미묘하게 습작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꼭 일반적인 구성을 따를 필요도 없고, 실험적인 시도가 더 좋은 결과를 낼 때도 있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곡들이 이어지며 일정한 흐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매 곡마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며 흐름을 끊는 탓에 완성된 트랙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EP보다는 두서없이 곡을 모아 만든 믹스테입 같은 인상이 강하다.
[ZOO]의 곡들을 한데 모아주는 것은 “Waves Room Skit”에서 설명한 것처럼 ‘동물’이라는 주제다. 트랙마다 특정 동물의 습성에 비유해 주제를 풀어나갔다. 본작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표현법과 퍼포먼스는 오로지 원슈타인만이 지닌 무기다. 무난한 프로덕션과 다소 설익은 연출력은 아쉽지만, 첫 EP부터 본인만의 색을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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