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전산시스템오류 - 비정규앨범
- rhythmer | 2020-09-08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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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전산시스템오류
Album: 비정규앨범
Released: 2020-09-01
Rating:
Reviewer: 강일권
래퍼들의 세계 속에서 ‘도시’는 다각도로 묘사된다. 낭만의 공간이자 투쟁의 공간이며, 비극의 공간이기도 하다. 신진, 크레딧(Credit), 이안 최(ian choi/*필자 주: 정보를 찾기 어려워 정확한 이름 표기를 알 수 없는 관계로 기본 표기인 ‘최’로 적는다. ‘이안 초이’일 수도 있겠다.)로 구성된 그룹, 전산시스템오류는 데뷔작 [비정규앨범]에서 도시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린 도시는 적어도 낭만의 공간은 아니다.팀 이름과 앨범명에서 오는 이물감과 착잡함은 안에 담긴 음악에도 고스란히 전이되어 있다. 랩을 맡은 신진과 크레딧이 집중한 건 도시 내부에서 진동하는 악취, 모순, 거짓, 추락, 죄악 같은 것들이다. 두 래퍼는 시종일관 병들고 황폐한 도시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Adam's Apple (WeTalkAbout)”이나 “JOKER”처럼 상징적인 제목과 비교적 친절한(?) 전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곡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추상적인 비유가 지배적이다.
단번에 주제가 와 닿지 않아도 당황할 필욘 없다. 가장 기본적인 바이오조차 전무한 그들의 배경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하며 공감 여부를 따지기란 불가능한 게 당연하다. 그래서 한편으론 이것이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앨범을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와 전반에 흐르는 뒤틀린 무드에서 오는 감흥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길 바라기보다 마치 듣는 이마저 본인들이 형상화한 도시에 잠식당하길 원하는 듯하다. 그만큼 그룹이 흩뿌려놓은 일련의 단어들과 문장을 따라 호흡하다 보면, 어느샌가 도시의 비정규군에 속한 듯한 느낌이 닥친다. 의도한 바가 어느 쪽이든 설득력 있고 효과적이다. 실로 오랜만에 적극적인 사유와 해석을 요하는 가사의 랩이다.
플로우와 가사 모든 면에서 관조하듯 건조하고 덤덤하게 일관한 크레딧과 보다 과격하고 치열하게 나아가는 신진의 다른 듯 조화로운 랩을 듣는 맛도 좋다. 때때로 신진의 랩이 감정적으로 과잉될 때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들려준다.
얼터너티브와 힙합의 경계를 가로지른 이안 최의 프로덕션도 탄탄하다. 특히, 일렉트로닉을 적극적으로 껴안은 다음, 부유감을 잘 살려낸 사운드가 탁월한 “MISSING”,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전반부에 이어 마이너풍의 힙합 비트로 절묘하게 전환되는 “타인의타액” 등은 하이라이트다.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했던 비정규 곡을 제외하면, 이제 다섯 개의 정규 트랙을 내놓았을 뿐이지만, 촉망하는 바가 커진다.
다만, “FuckTheSpaceOpera”는 아쉽다. 곡의 완성도는 준수하나 얼터너티브 팝에 가까운 구성과 전개가 좀처럼 어우러지지 못했다. “MISSING”, “Adam's Apple (WeTalkAbout)”, “타인의 타액”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형성한 긴장감을 깨버려 몰입감을 앗아간다. 첫 벌스에서의 노래 보컬이 전혀 감흥을 주지 못한 탓도 크다. 마무리에서 갑작스레 등장하여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환기한 “MISSING”에서의 보컬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최초 사운드클라우드에서 간헐적으로 곡을 공개하던 전산시스템오류는 [비정규앨범]을 통해 또다른 플랫폼에 첫발을 내디뎠다. 일단 발자국은 선명하게 찍혔다. 이제 그 자국이 먼지에 뒤덮여 사라지게 될 지, 시작의 상징으로서 남게 될 지는 다음 단계의 성과가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불친절한 출사표엔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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