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지바노프 - Talking Book
- rhythmer | 2021-01-15 | 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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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지바노프(jeebanoff)
Album: Talking Book
Released: 2020-12-18
Rating:
Reviewer: 김효진
1942년에 만들어진 샹송 “Que Reste-T-Il De Nos Amours?”(우리 사랑에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요?) 가사엔 이별 후 남겨진 자취들이 나열돼 있다. 낡아빠진 사진, 봄날의 달콤한 편지, 끊임없이 따라오는 추억들, 빛 바랜 행복, 도둑맞은 입술, 향기를 잃은 꽃. 그러다 묻는다. “Se sont envolés pourquoi?"(왜 다 사라졌을까?) 실연 후 남겨진 사람은 ‘왜’에 몰두한다. ‘왜’ 헤어졌을까, ‘왜’ 그때 그랬을까, ‘왜’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 도대체 ‘왜.’ 이 물음들은 씁쓸한 잔상이 된다.지바노프(jeebanoff)의 [Talking Book]은 이별 후일담이다. 남겨진 사람이 써내려 간 솔직한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래서 ‘Talking Book’이라는 타이틀은 마치 일기장처럼 해석된다. 일기장 앞에서는 누구나 진솔하다. 일기장을 넘기듯 트랙을 넘어가다 보면 실연 후 미련들이 무작위로 등장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나빴던 게 아니야’(“난 아니야 / NOT ME!”)하며 지난 날을 되짚어보고, 누군가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신호등”만 봐도 그리움이 짙어 진다고 고백한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가던 몇몇의 밤’과 새어 나오는 사랑으로 ‘안아준 날들’까지도 그립다면서. 그렇게 닿지 못할 질문으로 끝맺는다. “Why don’t you love me?”(왜 날 사랑하지 않아?)지바노프의 강점은 시시콜콜한 감정들을 음악 안에 녹녹하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지질하다 느껴지는 마음들까지도 지바노프의 음악과 언어 안에서는 온당하게 느껴진다. 전작 [GOOD THING.]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에 걸맞는 알앤비 사운드를 차용해 음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본작에서도 강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찬란했던 모든 순간이 닳아 무의미해지는 날들에 대해 쓰고 노래한다. 그 혼곤한 잔상들은 포근한 질감의 사운드 소스와 만나 보통의 정서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다만, 개성이 드러나는 노랫말에 비해 멜로디는 전체적으로 단조로워 아쉽다. 또한, 알앤비와 댄스홀, 하우스를 조합하는 등, 창의적인 시도가 성공적으로 귀결된 전작과 달리 본작은 비슷한 톤이 이어진다. 비슷한 무드가 이어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하다 보니 지바노프만의 매력마저 희석된다.
그럼에도 보컬이 그가 쓴 음악적 서사에 수긍하게 만든다. 특히 “OUI 2”에서의 미성이 대표적이다. 확실히 서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소금(sogumm)이 참여한 “We (OUI)”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이 곡은 가사 속 모든 ‘우리(We)’에 대한 가정법을 “OUI”(‘Oui’는 프랑스어로, ‘Yes’를 의미한다.)라고 답했을 때의 뒷이야기처럼 읽힌다.
두 곡의 연결점은 “We (OUI)” 속 ‘우리가 조금만 서로 선을 그었다면 좋을까’라는 노랫말이다. 그 가정법에 대한 대답이 “OUI”인 줄 알았으나, “OUI 2”에서 상대가 그은 분명한 선에 외려 애타고 있는 모습이다. 지바노프의 건조한 미성이 스스로 확신했던 대답, 선택, 사랑이 어긋나 쓸쓸한 모습을 탁월하게 그린다. 도리어 처절하지 않은 발성이 애처로운 모습을 극대화한다.
“Que Reste-T-Il De Nos Amours?”은 영어 가사가 붙어 “I Wish You Love”라는 곡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사랑 후 남겨진 것들을 노래한 샹송과 달리 영어 버전에는 헤어진 상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들을 바란다. 두 이별의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별 상대를 다시 욕심내지 않는다. 지바노프의 이별도 그렇다. 가끔 깊은 미련에 실수할지라도 다시 시작하자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감정에 솔직할 뿐. 달큰한 연애 후의 씁쓸한 잔향이 짙게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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