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구름 -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
- rhythmer | 2021-03-16 | 1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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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구름
Album: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
Released: 2021-03-04
Rating:
Reviewer: 김효진
좋아하는 라디오 디제이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는 비교를 하면서, 나와 비교하면서 혹은 다른 누군가의 상황과 비교를 하면서 위로를 하는 것보단 그냥 그 사람에 대해서 얘기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2017년 2월 8일 MBC FM4U '푸른 밤, 종현입니다' 중에서) 가장 최악의 위로는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나도 힘들어’처럼 쉽게 뱉을 수 있는 비교의 말이다.비슷한 맥락으로 ‘내가 가장 힘들다’라고 말하는 건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예고 없이 닥치는 불안과 우울, 어둠, 절망, 허무 같은 건 그러한 감정 상태에 처한 자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외려 감정에 충실한 일이다. 누군가는 과장이라 칭하며 궁금하지 않다고 외면할지라도 말이다.
구름이 싱글 시리즈 ‘cloud’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정규 앨범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에는 소리없이 스며든 관계의 초상과 잔상들이 담겨있다. 이별 후 잔여물처럼 남겨진 우울, 근원지를 알 수 없는 먹먹함, 나긋나긋한 사랑까지 드러난다. 모든 우울과 행복을 넘나드는 화자의 모습은 한결 같다. 연약한 뿌리를 드러낼 줄 아는, 그래서 타인과 포갤 줄 아는 사람.
구름은 확실히 그런 아티스트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유연하게 변모하고 포개어진다. 밴드 바이 바이 배드맨에서 브릿팝 록 사운드를 소화하기도 하고, 치즈(CHEEZE)의 멤버로 활동하며 귀엽고 산뜻한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키보드와 신시사이저 연주자로서 무대에 올라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온전히 홀로 작업해 내놓은 본작은 아티스트의 말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앨범’일 테다.
그래서 노랫말이 모두 사적인 메모 같다. 손이 가지 않는 공책 뒷장에 적어두고 잊어버리고 싶은 생각, 가끔 누군가에게 들켜버리고 싶은 낙서, 사랑을 담아 고이 적은 편지 같은 문장들이 쓰여 있다. 감정의 고조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상대에 의존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모든 게 바뀌어버린 하루’(“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를 맞이한 것도 ‘온 세상이 꽃 같은’(“꽃”) 것도 모두 연인 때문이다.
특히, “자기 전”에서 감정을 솔직하게 서술한다. 새벽의 뒤척임과 함께 긴 밤 동안 느낀 마음들이 여과 없이 드러나 공감을 자아낸다. 혼자 있다는 사실에 외로워하다 전 연인을 그리워 하고 이따금 화가 나는, 영원히 정지된 듯 착각하다가도 아침이면 다 사라져버릴 마음들. 써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말들. 그 모든 걸 써내려 간다는 점에서 본작은 상처들을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 같기도 하다.
프로덕션 면에서는 'cloud’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알앤비, 팝, 가요 감성까지 포괄한다. 기본 토대는 건반이다. 대개 포근한 질감의 소스를 운용해 다감한 데가 있다. 그러나 일관된 흐름을 깬다. 건반으로 차분히 진행되다가 드럼을 몰아치듯 배치하기도 하고(“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 “마음의 무덤”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을 재즈 리듬으로 표현한다. 뒤척이는 마음을 담은 가사와 달리 청량감을 더한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자기 전”도 특기할만하다. 감당 못 할 파고에 매번 흔들리는 것 같아도 그 누구보다 안정되고 싶은 결핍을 성공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몇몇 곡들이 관성적으로 느껴진다. 아티스트가 밝힌 대로 대부분 오래 전에 만들어진 트랙이어서 그런지 4년 전 ‘cloud’ 시리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구름의 솔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부터 친밀하게 작업해온 아티스트 백예린의 기척 또한 느껴진다. 훌륭한 아티스트와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cloud’ 시리즈와 백예린의 목소리를 통해 충분히 들었던 음악들이 또 다시 반복 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럼에도 습하고 먹먹한 데가 있는 구름의 목소리로 채워지는 말들에 새삼스레 위로를 받게 된다. 위안이란 괜찮아질 거라는 상투적인 말보다 별 것 아닌 것에 쉽게 무너지고 마는 연약함과 누군가를 갈망하는 결핍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이라고 정의했지만, 그 어떤 말보다 진솔하게 쓰여진 고백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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