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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비비 - 인생은 나쁜X
    rhythmer | 2021-05-25 | 1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비비(BIBI)
    Album: 인생은 나쁜X
    Released: 2021-04-28
    Rating:
    Reviewer: 김효진









    인생의 가장 잔혹한 점은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다.’는 점, 그리고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 없다.’는 점일 테다(*김영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인용). 우울에 침잠된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떨쳐낼 수 없고, 타인도 내 우울을 떼어내 줄 수 없다. 그래서 삶은 때때로 무가치하고 보잘 것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을 쉬고 살아가야 한다면, 삶을 끊어낼 용기가 없다면, 스스로를 탓하며 깊이 가라앉는 대신 누군가를 탓하며 욕하는 것도 삶을 살아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테다.

     

    [인생은 나쁜X]은 인생 이야기다. 비비(BIBI)가 그리는 인생의 초상은 좌절로 가득하다. 고통스럽고 가학적이며 광기 어려 있다. 불안정한 관계를 지속하기 때문이다. 앨범 속는 홀로 오롯이 살아낼 힘이 없다. 상대방에게 상처 받아도(“BAD SAD AND MAD”) 그를 나의 구원이라 상정하고 그의 곁에 있길 바란다(“피리 (PIRI the dog)”). 게다가 “Birthday Cake”를 먹는 것조차 타인의 허락이 필요할 정도로 예속됐다. 그러나 끝에 다다라서는 그 달콤함에 다시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인생은 나쁜X”).

     

    비비는 앨범에 묘사된 상대방을인생이라 정의했다. 추측하건대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끊어낼 수 없고, 다시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해도 그 매혹적인 빛깔에 또 다시 넘어갈 것이다. 그는 이러한 형상을 색깔로 탁월하게 묘사한다.

     

    “Umm… Life” “BAD SAD AND MAD”의 가사처럼 그가 주는 상처는 검고 파랗고(‘You black and blue’) 빨갛고 보랏빛이다(‘you red my mind’ / ‘purple my eyes’). 앨범 커버에 묘사 됐듯이 그 색채들은의 빈 곳을 채운다. 홀로 올곧게 설 수 없는는 그렇게 더 처절히 인생을 원하고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색을 활용해 감각적인 인상을 남긴 것과는 별개로 영어 가사가 단순해 아쉽다. 그저 단어를 반복 나열하는 데 그친 탓에 개성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인생은 나쁜X”처럼 한국어 가사가 주를 이루는 곡과 비교해 보았을 때 단점이 더 두드러진다.

     

    비비는 곡의 정서에 따라 퍼포먼스를 구사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아티스트다. 앨범 내에서 단조로운 영어 가사보다 한국어 가사로 보컬을 뱉어낼 때 매력이 돋보인다. 그러한 맥락에서 “BAD SAD AND MAD” “Birthday Cake”처럼 영어 가사가 대부분인 곡에서는 비비의 강점과 매력을 느낄 수 없다. 지금까지 싱글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개성이 너무 희석되어버렸다.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노랫말과 달리 프로덕션이 마냥 침잠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밝은 느낌을 주는 편이다. 수록곡 대부분은 트랩 기반에 반복적인 멜로디가 특징적이다. 808 베이스를 토대로 경쾌한 클랩 사운드를 활용하거나(“Umm… Life”, “BAD SAD AND MAD”, “Birthday Cake”) 하이햇을 부각하여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피리(PIRI the dog)”, “인생은 나쁜X”). 그러나 국내외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평범하고 비슷한 구성의 곡들이 이어진 탓에 감흥이 떨어진다.

     

    비비는 이 앨범을인생 탓 프로젝트라 명명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인생 탓을 하려다가 나약한 마음을 다잡으려 채찍질하는내 탓 프로젝트에 가깝다. 그런 가운데 비극의 보편성을 그려낸 지점이 흥미롭다. 웅숭깊은 이야기를 던질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음악의 완성도가 부족하고, 곡 수마저 적다 보니 이야기가 확장되지도 못했다. 그가 좇는 시선에는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으나, 서사를 선명하게 직조하지 못 해 그 시선이 제자리에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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