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에픽하이 - Epik High Is Here 下
- rhythmer | 2022-02-27 | 1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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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에픽하이(Epik High)
Album: Epik High Is Here 下
Released: 2022-02-14
Rating:
Reviewer: 황두하
아티스트가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과 타성에 젖는 것은 한 끗 차이다. 작품마다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내놓는다고 해도 더 나은 완성도를 보여준다면 영역을 공고히 한 아티스트가 될 것이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그런 의미로 지난 몇 년간 에픽하이(Epik High)의 행보는 실망스러웠다. 이전에도 서정성을 강조한 프로덕션 위로 삶과 사랑을 노래했지만,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2017)부터 완성도가 낮아지면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타블로(Tablo)와 미쓰라(Mithra)의 퍼포먼스는 전보다 안이해졌고, 번뜩이는 펀치라인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순간도 사라졌다. 구성적으로도 비슷한 형식이 반복되어 전체적으로 전작의 다운그레이드 버전 같은 인상이 강했다.
열 번째 정규 앨범의 두 번째 파트 [Epik High Is Here 下]에 담긴 음악 스타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완성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첫 번째 파트의 마지막 곡 “Wish You Were”와 이어지는 인트로 트랙 “Here”를 지나면,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의 궤적을 짧게 훑는 “Prequel”이 이어진다. “Believe”가 떠오르는 비장한 분위기의 붐뱁 사운드와 지난했던 과거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특히, 지난 앨범 제목들로 가사를 쓴 타블로의 마지막 벌스는 오랜 팬들이라면 소소한 감동을 느낄만한 포인트다. 부유하는 듯한 신시사이저와 808드럼이 어우러진 “Super Rare”도 원슈타인(Wonstein)의 개성 강한 후렴이 어우러지며 색다른 감흥을 안긴다.
중반부부터 다시 에픽하이 특유의 서정적인 무드의 트랙들이 이어진다. 균열이 생기는 것도 이 지점이다. 윤하가 후렴구를 맡은 타이틀곡 “그래서 그래”는 지난 히트곡들의 전형을 그대로 따라간다. 지난 [신발장](2014)의 “또 싸워” 이후 오랜만에 함께한 곡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간결하고 중독적인 멜로디 라인과 이별 후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가사가 잘 조화한 “우산”을 생각한다면 완성도가 아쉽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에서는 아예 “우산”을 직접적으로 인용하여 추억을 소환해낸다. 그러나 역시 평이한 완성도 탓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타블로 혼자 곡을 이끄는 “I Hated Myself”도 ‘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메시지를 다소 단선적인 표현으로 풀어낸 가사와 평범한 수준의 퍼포먼스 전부 지난 솔로곡들보다 못하다. “Rich Kids Anthem”까지 우리가 아는 에픽하이의 모습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뻔한 구성의 곡들이 이어져 실망스럽다.
다행히 후반부에 이르러 감흥이 조금씩 살아난다. 기리보이(Giriboy), 저스디스(JUSTHIS), 식케이(Sik-K)가 참여해 준수한 활약을 펼친 “Face ID”, 세대가 교체되며 달라진 가족의 풍경 속에서 느끼는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한 “가족관계증명서”, 열 번째 정규 앨범의 마지막을 자축하는 “Champagne” 등, 곡마다 세심한 연출이 돋보인다. 편곡에서의 고심이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특히 “Champagne”이 인상적이다. 1집 첫 트랙 “Go”의 공연 실황 음성으로 시작하고, 마지막 곡 “막을 내리며 (Dedication)”의 후렴을 인용해 마무리한 구성은 처음부터 그들의 커리어를 좇아왔다면 추억에 잠기고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과거를 돌아보며 살아남은 현재를 소소하게 자축하는 가사도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열 번째 정규 앨범의 마무리로 적절한 트랙이다.
앨범은 지난해 발표된 [Epik High Is Here 上]을 잇는 열 번째 정규작의 두 번째 파트지만, 타블로의 [열꽃] 때와는 다르게 각각 완결된 구성을 가진 독립적인 작품이다. 첫 파트와 음악적 스타일이나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점도 비슷하다.
간혹 타블로가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만, 두 MC의 퍼포먼스는 대체로 평이한 수준이고, 전작들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 안이한 트랙들도 여전하다. 구체성이 더해진 가사와 극적인 연출의 편곡 등, 디테일한 면에서의 작은 차이가 느껴질 따름이다.
긴 세월 동안 쌓인 커리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은 인상적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지점이 [Epik High Is Here 下]의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 이상의 감상 포인트가 부족한 탓이다. “Super Rare”나 “Face ID”도 주인공들보다 게스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앨범을 다 듣고 나면, 에픽하이의 초기 앨범들이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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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야방야방야 (2022-02-28 15:29:58, 211.106.25.***)
- 인트로 지나서 프리퀄, 슈퍼 레어까지 듣고 괜찮은 앨범 나왔나 싶었는데 역시나였음.. 리뷰어님 말대로 막줄 진짜 공감되는게 저도 10집 한 두번 돌리다가 4집 때리러 갔었음... 진짜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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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하 (2022-02-28 12:58:12, 115.91.18.**)
- @ripxxxtentacion 표기 오류가 있었습니다. 수정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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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pxxxtentacion (2022-02-27 20:41:58, 39.115.95.**)
- 가족증명서가 아니라 가족관계증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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