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서리 - The Frost on Your Edge
- rhythmer | 2023-04-03 | 2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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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서리(30)
Album: The Frost on Your Edge
Released: 2023-02-19
Rating:
Reviewer: 이진석
크루 서리(30)의 두 번째 컴필레이션 [The Frost on Your Edge]는 많은 부분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전개된다. 비앙(Viann)이 프로덕션의 키를 잡은 가운데, 호전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개성 뚜렷한 멤버들의 랩이 이어진다. 서브 컬쳐 요소나 인터넷 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여전하다. 기본적으로 전작과 비슷한 기조다.가장 달라진 부분은 아무래도 딥플로우(Deepflow)의 합류다. 동시에 제일 인상적인 순간을 만드는 것도 딥플로우다. 베테랑의 관록이 묻어난다. 빼곡하게 라임을 채워 넣으며 자연스럽게 타격감을 살리고, 시종일관 타이트하게 밀어붙인다. 한편으론 레이블의 대표에서 물러나 한층 자유로워진 듯하다.
지금까지 그를 공격했던 래퍼들에게 펀치를 날리는 부분에선 잘잘못을 떠나 통쾌함까지 느껴진다. 본인의 앨범에서 잘 짜인 이야기와 내러티브를 통해 감흥을 만들어냈다면, [The Frost on Your Edge]에선 보다 래핑이 줄 수 있는 원초적인 쾌감에 집중한 듯하다.
가장 눈에 띄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멤버가 딥플로우라면, 앨범의 일등공신은 단연 비앙이다. 긴박함과 익살스러움을 오가는 프로덕션으로 크루의 색채를 효과적으로 연출했다. 첫 곡부터 인상적인 변주가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Cakewalk”, 소울풀한 샘플 소스 위로 내달리는 드럼 필인이 얹혀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The Bold Crew” 등, 트랙 하나하나의 만듦새가 빠짐없이 뛰어나다.
러닝타임이 길지 않지만, 밀도 높은 구성에서 쳐지는 부분 없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그의 공이 가장 크다. 그 안에서 각자 다른 톤과 언어를 지닌 래퍼들의 기술이 합을 이룬다. 딥플로우가 앨범의 콘셉트 내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면, 쿤디판다(Khundi Panda)는 예의 베일 듯 날카로운 톤으로 여전히 유려한 랩을 선보인다.
특히 오하이오래빗(Ohiorabbit)의 발전이 도드라진다. 그는 다른 멤버보다 톤 자체의 매력이나 개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래서 무난하게만 다가왔던 전과 달리 이번엔 치밀한 랩 디자인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할 만하다.
다만, 내용 면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곡마다 소재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앨범 전체를 보았을 땐 전작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동어반복의 느낌이 강한 탓이다. 그간 크루 활동으로 만든 캐릭터와 앨범의 콘셉트에 맞춰 멤버 모두가 호전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기억에 남는 라인이 적다. 가사 대부분을 인터넷 밈과 서브 컬쳐에서 차용한 탓이다.
물론, 서브 컬쳐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건 래퍼들의 가사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으며, 또 하나의 재미를 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줄기 세포같이 뻗쳐 / 황우석처럼 겜을 조작해 / 다나와에서 봤지 견적’, ‘추잡스런 꼴 코 후비기 선수. 춘식이 / 널 없애버릴 요술 flow 후디니’ 등등, 소모적인 라인이 많다면 얘긴 달라진다. 그 탓에 간간이 지나가는 강렬한 표현들도 임팩트가 약해졌다.
서리는 여전히 한국 힙합 씬의 흥미로운 집단 중 하나다. 음악 안팎을 넘나드는 이슈로 마치 씬의 악동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이를 작품으로 영리하게 풀어낸다. 이번 앨범 역시 그렇다. 비록, 아쉬운 점은 있으나 [The Frost on Your Edge]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랩 엔터테인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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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서 (2023-04-05 22:18:33, 59.20.45.**)
- 기억에 남는 라인이란 거 보다 오히려 단어가 재밌었는데요 저는.. 공격적인 랩과 대비되는 재밌는 단어들의 나열, 서로 주고받는 애드리브들이 너무 자유롭고 올드 스쿨 힙합 자체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Madvillany가 떠오르는 비앙의 프로듀싱도 그렇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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