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버벌진트 - K-XY : INFP
- rhythmer | 2023-10-11 | 3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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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버벌진트(Verbal Jint)
Album: K-XY : INFP
Released: 2023-09-07
Rating:
Reviewer: 장준영
버벌진트(Verbal Jint)는 [Modern Rhymes](2001)의 20주년에 맞춰 변곡점을 지정하고자 [변곡점](2021)을 내놓았다. 그러나 큰 변화를 일으키진 못했다. 그동안의 관성에 크게 영향받은 듯 기존과 유사한 내용과 어지러운 구성이 연속되면서 새로운 위치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2년 만에 내놓은 [K-XY : INFP]를 듣고 나면, 마치 절치부심한 것만 같다.전작과 가장 큰 차이는 역시 가사다. 그는 커리어 내내 자기 항변을 드러낸 아티스트다. 특히 2016년에 음주운전이 적발된 이후론 [변명없이 (No Excuses)](2017)부터 [변곡점]까지, 일관되게 참회의 태도를 보였다.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반성하는 모습은 (도덕적으론) 긍정적이다. 그러나 강박적일만큼 끊임없이 언급한 탓에 감흥보다는 피로감이 상당했다.
6년에 가까운 반성은 이번 앨범에 들어서야 종료되었다. 기존에 드러내던 변명은 내려놓고, 일관된 컨셉을 들이민다. 앨범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K-XY : INFP]는 한국 남성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일상, 순간을 꽤 상세히 나열한다.
단순히 제목만 보면 파편적인 이야기를 무작위로 배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별 후의 과정이 이어지는 도입부의 트랙을 필두로 장면과 순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도록 의도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중 하룻밤 사이의 일은 "같이 와"부터 "LDH"까지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배치하였으며, 후반부의 곡은 회상과 분노, 후회로 뒤섞인다. 덕분에 맥락이 잘 살아있다.
다만 이 같은 흐름상의 장점과 별개로 가사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많지 않다. 여전히 정교하게 짜인 라임 구조가 놀라우면서도, 밋밋한 표현이 즐비한 탓에 감흥이 반감된다. 이별 후의 끼니를 때우는 "배달음식을 기다리며"가 대표적이다. 장면이 쉽게 그려질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는 특색 없고 진부한 단어와 문장 사용이 잦아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는 것에 그쳐 아쉽다.
반면 "성격차이"에선 헤어진 연인과 성향 차이를 나열하면서도 라임을 무너뜨리지 않아 흥미롭다. 그러나 과도한 정보와 다소 낯간지러운 표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는 비교 및 대조의 구성이 반복되면서 랩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떨어뜨린다. 또한,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의 후속작 같은 "자격"에선 의미 없는 말장난이 이어지며, 제목처럼 음식만 나열하다 끝내는 "Food"는 재미보다 뜬금없다.
"같이 와"에선 나쁜 남자 이미지를 제시한다. 하지만 매력적인 구절이 부족하여 설득력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답답하게 쥐어짜는 듯한 가성과 과도하게 낮은 저음을 번갈아 소리 내는 보컬 역시 곡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풍기기엔 부족하게 들린다.
한편, 참여 진의 퍼포먼스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마이너한 건반 루프로 무드를 형성한 "자기파괴"에선 스월비(Swervy) 특유의 타이트한 랩이 힘겨운 듯한 심경을 읊조리는 담백한 버벌진트의 랩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한다.
"행간"에선 래원의 톡톡 튀는 랩이 펑키한 비트와 어우러지는 동시에 버벌진트의 중저음 톤과 대비되면서 재밌는 순간이 펼쳐진다. 연기라는 주제로 내뱉는 "연기자"에 언에듀케이티드 키드(UNEDUCATED KID)를 초대한 점도 재치 있다. 다만, 다민이가 참여한 "Friendzone"은 곡과 어울리지 못하는 톤과 내용이 어색하게 느껴져 아쉽다.
프로덕션이 주는 즐거움도 장점 중 하나다. 그는 신시사이저를 바탕으로 소리를 영리하게 쌓는 것에 능한 프로듀서다. 신보에서도 다양한 비트에 다채로운 소스를 풍성히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5일 후"에선 코러스와 보컬 이펙트 사용이 평이한 퍼포먼스를 일부 상쇄해 준다. "LDH"에선 현악 소스와 일렉트릭 기타를 곡 전개와 낮게 깔리는 랩에 어우러지도록 적절히 섞어낸다. 또한,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꽤 통일성 있게 주조했다.
하지만 중간마다 난입하는 이질적인 순간이 몰입을 흩뜨려 놓기도 한다. "배드모닝"에선 "굿모닝"을 새롭게 가져온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밝은 사운드 및 관악 소리가 앞뒤의 곡들과 지나치게 상이해 동떨어진 느낌이 강하다. "배달음식을 기다리며" 역시 내용과 무관하게 두 보컬의 맑은 톤과 보사노바의 특징을 끌어온 프로덕션이 다른 곡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앨범의 무드와 어긋나 감흥을 저해한다.
[K-XY : INFP]에선 피처링 아티스트와의 합과 몇몇 시도가 흥미롭다. 그러나 이전만큼 강렬하지도 날카롭지도 않다. 무엇보다 그의 랩이 주는 감흥이 주는 감흥이 떨어져 더욱 아쉽다. 나름의 변화를 도모했지만, 여러모로 씁쓸한 뒷맛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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