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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유라 -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
    rhythmer | 2023-12-06 | 2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유라(youra)
    Album: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
    Released: 2023-07-07
    Rating:
    Reviewer: 장준영









    한국 얼터너티브 음악의 흐름에서 유라는 가장 대표적인 이름 중 하나다. 흡인력 있고 몽환적인 음색의 보컬, 얼터너티브 알앤비와 팝에 기반을 두고 록과 일렉트로닉까지 적극 포용한 음악, 유라의 음악세계는 독특하고 폭넓다. 작년에 밴드 만동과 함께 만든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2022)는 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예다. 크로스오버 재즈를 토대로 록, 소울, 포크 등, 여러 장르의 특징을 영리하게 취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곡을 쭉 듣다 보면, 종종 전혀 다른 아티스트가 여럿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종잡을 수 없는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드디어 내놓은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 역시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포문을 여는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부터 그렇다. 긴박하게 내달리는 건반을 필두로 드럼, 콘트라베이스, 기타가 재즈의 틀에서 어우러지며 변주의 합을 들려준다. 몽환적인 유라의 목소리와 마치 듀엣으로 노래하는 듯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바이올린도 무척 잘 어울린다. 비단 첫 곡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목에게"에선 일렉트릭 기타의 다양한 사운드와 변주를 들려주며, "수풀 연못 색 치마"에선 비정형적인 전개가 눈에 띈다.

     

    미니멀한 악기 구성으로 애절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늘 덮개", 귀를 흠뻑 적시는 코러스에 서정적인 모던 록의 특징을 포용한 "동물원", 내달리는 디스토션 걸린 기타와 베이스로 얼터너티브 록의 향수를 내뿜는허무한 허무함의 패턴도 인상적이다.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만동의 송남현과 함께 매우 다양하며 견고한 프로덕션을 완성해냈다.

     

    단단하게 다진 지반에 보컬이 아름답게 올라갔다. 부르는 모든 곡을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개성 넘치는 음색이 풍성히 활용되어 오묘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허영 깊은 분위기에 실오라기 같은 눈을 가진 자에선 차가운 전자 드럼 비트에 콘트라베이스와 함께 겹겹이 쌓인 코러스가 서늘한 느낌을 전달한다.

     

    또한 목에게에선 귓속에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 더미와 함께 유라의 가성이 묘한 긴장감을 전 하고, 소규모 편성에 호흡과 떨림에 집중하는그늘 덮개에선 담백하면서도 섬세하며 정교한 테크닉이 유독 귀에 오랫동안 머문다.

     

    유라는 노랫말에 상징과 은유를 무척 풍성하게 사용한다. 다만, 최소한의 맥락과 여러 수식어로 감싼 보조 관념을 다수 배치하여 원관념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당연히 일반적인 가사보다 훨씬 난해하게 느껴지며, 어려운 시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단점보단 장점으로 연결된다.

     

    이번 앨범에선 드러내고자 하는 이미지를 강력하게 내민다. 특히 정확한 의미를 추정하기 어려운 상실과 그리움으로 연결되는 표현을 그득하게 채워 음산한 사운드가 극대화되었다. 오묘한 내용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는 점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한국어 가사의 말맛을 상당히 잘 살린 점이 훌륭하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단어를 풍부히 녹여내면서, 각운을 맞추고, 시각, 미각, 청각 등 감각적인 이미지를 자극하는 표현을 듬뿍 풀어냈다. "수풀 연못 색 치마"가 대표적이다. '적색의 체리 나무', '펜촉을 눕혀', '하늘', '푸르게 우거진 수풀 연못 색', '차임벨 소리'와 같이 다양한 품사의 활용이 한껏 언어를 풍성하게 만든다.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는 이해가 쉽지 않은 제목처럼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또한 앨범의 감흥을 완성하는 요소다. 앨범의 여러 큰 축이 돌출하고, 어울리지 않을 법한 그 세 가지가 절묘하게 합을 이루며 재미를 끌어올린다. 얼터너티브한 유라의 음악은 더욱더 대안적이고 대체 불가한 것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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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베이징궈안으로이적한진민짜이 (2023-12-09 22:40:10, 218.150.75.**)
      2. 따로 리뷰 안하실 것 같던 앨범이었는데 올려주셨네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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