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윤다혜 - 개미의 왕
- rhythmer | 2025-10-30 | 1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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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윤다혜
Album: 개미의 왕
Released: 2025-09-26
Rating:



Reviewer: 황두하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처음으로 펼쳐 보이는 순간은 짜릿하다. 윤다혜의 첫 정규 앨범 [개미의 왕]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그는 박문치와의 작업과 김트와친구들 활동을 통해 주로 팝적인 성향이 강한 음악에 목소리를 얹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후(kohu), 혜민송(hyemingsong)과 함께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기반으로 한 과감한 사운드 전개를 펼친다.
드럼앤베이스를 차용해 극적으로 진행되다가 후반부에 거친 질감의 신시사이저가 쭉 뻗어나가는 “신 시티”, 겹겹이 쌓아놓은 신시사이저와 아프로비츠를 기반으로 한 리듬 파트가 결합한 “Funeral Freestyle”, 느릿한 템포와 부유하는 듯한 신시사이저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귀 있는 자”는 앨범의 기조를 대표하는 곡들이다.
백미는 “그녀는 손가락 금붕어”와 “그녀의 손가락 금붕어”다. 전자에서는 기타 스트로크가 주도하는 가벼운 미디엄 템포로 진행되다가 템포가 느려지면서 두터운 신시사이저와 디지털 가공된 보컬이 어우러지며 다음 곡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후자에서는 노이즈 소스와 둔탁한 드럼으로 한층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같은 멜로디를 기반으로 한 상반된 분위기의 두 곡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상황에서 느끼는 애틋함과 슬픔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단단한 발성으로 진성과 가성을 자유롭게 오가는 안정적인 보컬은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낮게 읊조리며 리듬을 밀고 당기다가도 음 사이에 여백을 두고 멜로디의 결을 살리는 능숙한 보컬 그 자체로 듣는 맛이 상당하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손가락 금붕어”의 첫 곡이나 “Funeral Freestyle”, “White Tee” 등에서는 한 번 들으면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금세 집중하게 만든다. 덕분에 프로덕션의 낯선 첫인상이 상쇄된다.
가사도 독특하다. 욕망과 죄악, 외로움 속에서 괴로워하지만, 끝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내면을 상이한 단어의 조합과 은유로 풀어냈다. 상대에 대한 마음을 평이하지 않은 어휘를 열거하며 표현한 “그녀는 손가락 금붕어”, 죽음과 절망을 통한 구원이라는 독특한 인식을 드러낸 “Funeral Freestyle”, 지난한 길을 걷고 난 후 상처투성이가 된 자신을 향해 연민하는 “카스테라” 등은 대표적이다. 지칭하는 대상과 이야기의 전개가 모호해서,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비중이 높은 영어 가사는 표현이 평이하고 수준이 낮아서 아쉽다. 본인만의 언어가 돋보이는 한국어 가사와 비교해 보면 이러한 점은 더 두드러진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그녀는 손가락 금붕어”와 “그녀의 손가락 금붕어”는 조사의 활용으로 각 곡의 방향성을 명료하게 만드는 영리함이 빛나는 곡들이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금붕어”의 가사가 지나치게 단조로워서 집중해서 들을수록 감흥이 반감된다.
[개미의 왕]은 아쉬운 점만큼 매력도 분명한 작품이다. 윤다혜는 여러 장르를 해체, 재조합하는 전위적인 프로덕션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보여줬다. 선형적인 진행을 탈피한 멜로디와 이를 살리는 탄탄한 보컬, 철학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가사도 앨범의 매력을 배가한다. 2025년 반드시 들어봐야 하는 한국 알앤비 작품 중 하나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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