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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비비 - Eve: Romance
    rhythmer | 2025-12-22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비비(BIBI)
    Album: Eve: Romance
    Released: 2025-05-14
    Rating:
    Reviewer: 장준영









    비비의 음악에서 사랑이란 가장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인 내용이다. 시간이 지나고 프로덕션이 변모하면서도 주제만큼은 일관되게 밀어왔다. 그만큼 삶과 행복에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역설하는 듯 느껴진다.

     

    첫 정규 [Lowlife Princess: Noir](2022)에서는 욕망과 쾌락을 동력으로 부도덕하고 강렬한 사랑을 나열했다면, [Eve: Romance]에서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랑을 외친다. "종말의 사과나무"부터가 그렇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상대방의 정신과 육체를 탐하는 욕망을 직유와 은유를 섞어 표현했다. 많은 여성 아티스트가 섹스를 비롯해 외설스러운 이야기를 펼치곤 한다. 당연하게도 이것 자체만으론 그리 신선한 시도라고 말할 수 없다. 비비의 차별점은 뒤바뀐 권력의 축이다. 노랫말에선 타자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전시하기보단, 오히려 남성 아티스트가 여성을 그리는 방식처럼, 상대를 대상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주도적으로 주제를 가지고 논다. 주체가 뒤바뀌고 관계가 전복되면서, 흔한 소재는 신선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책방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판타지를 펼치는 "책방오빠 문학소녀"를 들으면, 비비의 장점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청량한 신스 루프가 이어지는 이 곡에선 책과 관련된 행위를 스킨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하는 기발함이 돋보인다. 더불어 '문학소녀'라는 흔히 순수하고 수동적인 이미지로 인식되는 캐릭터를 반대로 사용했다.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치며 감정을 주체 못하는 모습의 노랫말은, 밀고 당기듯 끈적하게 그루브를 만드는 발군의 가창과도 제격이다.

     

    앨범 전반에 유지되는 흥미로운 가사에 맞게 프로덕션과 퍼포먼스도 완성도에 한몫한다. 제목부터 알앤비를 표방하는 "홍대 R&B"에선 끈적끈적한 기타 연주와 함께 농밀한 보컬 테크닉이 인상적이며, 프랭크(FRNK)와 함께한 "Pygma girl"에선 차분하지만 리드미컬한 비트에 어울리는 중저음의 보컬과 랩을 유려히 오간다. 톡톡 튀는 일렉트로닉 소스와 심장 박동을 연상케 하는 헤비한 베이스가 굉장한 "Sugar Rush", 변형한 보컬 샘플과 귀엽고 예쁜 소리를 주조하는 보컬 퍼포먼스로 상대방을 갖고 싶은 벅찬 마음을 표현한 "데레", 시티팝의 미덕을 지키는 프로덕션과 맑고 투명하게 부르는 가창이 끝내주는 "왔다갔는교" 등등, 만족스러운 순간이 한둘이 아니다.

     

    [Eve: Romance]는 사랑에 새롭게 빠진 초반부와 뜨겁게 불태우는 중반부, 오해와 다툼으로 이별을 맞이한 후반부까지, 앨범 전체가 한 커플의 사랑의 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슬픔과 괴로움을 다룬 후반부의 프로덕션이 초중반과 온도차가 상당하다.

     

    멀어지는 연인 사이를 담은 "밤양갱"은 곡의 굉장한 성취는 차치하고, 프로덕션부터 가창까지 다른 곡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돌출하는 인상이 아쉽다. 꾸밈없이 담백하게 노래하는 "한강공원"도 앞 곡들과의 분위기에서 매우 상이해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르페지오 기타가 주를 이루는 구성에 담담하게 외로움을 흘리는 "행복에게"와 "겨울"은 두 곡 간에 큰 차이가 없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물론 이런 일부의 순간을 제외하곤, [Eve: Romance]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꽤 근사하게 완성됐다. 알앤비 장르에서 떼놓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이란 주제를 이토록 새롭고 신선하게 완성하는 저력을 쉬이 목도할 수 있는 작품이다. 비비의 사랑은 이번에도 활기차고 아름답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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