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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아날로그 소년 - 행진
    rhythmer | 2010-12-06 | 1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아날로그 소년   
    Album: 행진
    Released : 2010-11-25
    Rating : 
    Reviewer :
    남성훈








    전천후 뮤지션 김박첼라와 두 래퍼 아날로그 소년, 루피로 이루어진 인디안 팜(Indian Palm)은 2009년 셀프타이틀 앨범 [Indian Palm]을 발표한 후, 씬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으며 평단과 장르팬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무엇보다 인디안 팜이 더욱 높게 평가 받아야 할 이유 중 하나는 반(反)힙합에 가까운 일관된 프로덕션을 유지하면서도 랩 보컬을 전면에 내세움으로 타 장르에 인색한 힙합 팬들이 잊고 있던 정서적 경험을 무리 없이 선사했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소년의 [행진]은 여전히 전 곡을 김박첼라가 책임지고 있기에 아날로그 소년판 인디안 팜 외전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아날로그 소년이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하는가가 앨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앨범타이틀 [행진]의 뉘앙스에서 느낄 수 있듯, 아날로그 소년은 '청춘'이라는 코드에 앨범 전체를 할애했다. 다채로움을 위해 억지로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최다의 코드들을 깔아놓는 과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자 함정이다.

    그렇다면 가장 보편적인 음악 주제 중 하나인 '청춘'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에 주목해야겠다. 앨범을 여는 "모여라"와 "기쁜 우리 젊은 날"의 기운에서 느낄 수 있듯 아날로그 소년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 역시 반힙합에 가깝다. 대부분의 래퍼들이 현실을 더욱 현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냉소적인 기운을 담아내는데 주력하는 것에 반해, [행진]에서 아날로그 소년은 긍정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앨범을 이끌어 나간다. 김박첼라의 프로덕션 역시 기타를 활용해 서정적인 분위기를 덧씌웠던 [Indian Palm]과는 다르게, 아날로그 소년의 가사를 살려주는 박진감 있는 드럼을 활용하는 동시에 장르 팬들에게 생소한 보컬들을 동원해 색다르게 밝은 느낌을 전달해준다.

    하지만 단순한 청춘 희망가들로 그치지 않는 것은 그의 노래들이 계급적인 이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계급 시스템을 까발리고 도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경제적으로 중하계층으로 짐작되는 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의 한계 안에서 애써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은 결국, 현실부정적으로 느껴진다. 그 모든 것의 배경이 되는 잔인한 도시를 소재로 삼은 “서울서울서울”에서 아날로그 소년은 무척이나 신나 하는 것 같고, “마라톤”에서는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사회구조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기 보다는 결국 개인이 힘을 내는 수 밖에 없다고 격려한다. ‘어쩔 수 없음’의 서글픔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삐걱대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방문도 지나가는 사람들 신발이 보이던 창문도 소음과 또 잡음도 소문보단 괜찮은걸 이거보다 못한 방에서도 잘 버텨왔는걸’ – 이사 가는 날 中

    그 중 백미는 단연 “이사 가는 날”. 반 지하 자취방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이사를 가는 힘겨운
    청춘의 건조한 일상을 연민이 느껴질 정도로 낭만적으로 그려내, 듣는 이의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거부감 없이 불러 올 이 곡은 아날로그 소년이 현재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로 보여진다. 반면, 가장 극적인 순간은 무려 9곡을 지나와서야 드디어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인정하는 “기록”에서 찾아온다. 흔한 주제일지라도, 앨범 내내 플레이 된 곡들에서 애써 숨기고 있던 것을 힘겹게 꺼내 보여주는 극적인 효과 덕분에 그 감정선은 다른 래퍼들이 들려주는 그것들보다 굵고 진하다. 적절한 곡 배치다.

    아날로그 소년의 랩은 장르 팬들이 열광할 만큼 기술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라임배치와 전달능력을 볼 때 그의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랩 자체로 순간순간 청자의 감정을 뒤흔드는 부분을 쉽사리 찾기 힘든 것은, 앨범의 방향성을 생각했을 때 여간 아쉬운 부분이 아니다. 유사한 내용과 분위기를 담은 곡들이 반복되며 앨범의 긴장감이 풀어지는 것을 막지 못한 것도 곡들의 완성도보다는 이 이유가 커 보인다. 물론, 아날로그 소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앞서 말한 청춘을 바라보는 계급적 이념이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이 먼저이기에 커다란 흠이라고 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두 장의 EP를 지나, 인디안 팜의 멤버로 주목 받기 시작한 아날로그 소년은 이번 정규앨범에서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앨범 전체에 투영하며 제대로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반힙합적인 방향성을 가진 래퍼가 결과물들을 통해 자리잡아 힙합 씬이 한 뼘 더 풍부해지는 것을 보는 재미있는 경험이다. [행진]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아날로그 소년의 다음 앨범, 아니 다음 랩이 기다려진다. 방향성을 확실히 한 래퍼의 모든 랩은 그 다음부터 청자들과 일종의 심리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남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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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소개구리 (2010-12-28 18:55:55, 119.71.79.**)
      2. 힙합 리뷰를 제대로 다뤄주는건 리드머 뿐,,,
        "아날로그 소년" 멋진듯
      1. Lafayette (2010-12-08 15:01:28, 210.119.101.**)
      2. 간만의 국힙 리뷰군요 ㅎㅎ
        국힙 리뷰 글도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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