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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딥플로우 - Heavy Deep
    rhythmer | 2011-10-20 | 3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딥플로우(Deepflow)
    Album: Heavy Deep
    Released: 2011-10-20(온라인), 2011-10-25(오프라인)
    Rating:  
    Rating (2020):  
    Reviewer: 남성훈









    딥플로우(Deepflow)는 한국힙합 씬에서 단연 가장 개성 강한 캐릭터 중 하나다. 큰 덩치에 삭발한 머리, 과장된 몸짓. 어딘가 모르게 사회부적응자의 풍모를 갖고 있지만, 거대한 야심을 품은 듯한 날카로운 눈빛은 마치 자신을 둘러 싼 현실을 직시해 하류인생을 탈피하려는 영화나 소설 속 인물을 떠올린다. 세상살이와는 동떨어진 반골기질의 유쾌한 언행이 가장 큰 매력이지만, 어느 선을 넘으면 쉽게 다가가기 힘든 공포감 역시 그를 규정하는 코드인 것은 그 때문이다. 컨셉트와 현실 사이에 묘하게 걸쳐 있는 그는 이른바 ‘알고 보면 좋은 오빠’ 랩퍼들이 많은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판에 분명 캐릭터가 주는 재미를 선사하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다. 하지만 정규작은 2007년 데뷔앨범 [Vismajor] 뿐이었기에, 작품을 기반으로 한 견고한 캐릭터 구축이었는지는 사실 분명하지 않았다. 따라서 4년만의 정규작 [Heavy Deep]은 자연스레 그가 어떻게 자신의 매력을 잘 살려냈는가에 감상의 포인트가 맞춰진다.

    딥플로우는 [Heavy Deep]에서 자신이 속한 시공간 밖으로 나가는 것에 관심도 욕심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Heavy Deep]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딥플로우는 앨범이라는 마감된 작품을 구성하는 선택과 집중의 과정에서 확장보다는 축소를 택했다. 적은 트랙 수를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선 앨범 전체에 걸쳐 그는 ‘홍대’라는 특정 지역으로 앨범이 그리는 공간을 좁게 한정 짓는다. 그리고 딥플로우를 그 곳에 위치시킨다. [Heavy Deep]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이 두 가지가 전부다. 각각 좁고 세밀하게 규정된 장소와 캐릭터는 효과적으로 호스트가 있는 공간을 만들며, 청자에게 다가가기보다는 초대한다.

    적은 트랙 수에도 앨범은 절묘하게 정확히 반으로 접힌다. 첫 네 트랙에서 딥플로우는 자신의 매력을 내뿜는데 공을 들인다. 무엇보다 “이 구역의 미친 놈은 바로 나야”는 한정한 지역과 캐릭터의 매력을 뒤섞어 단숨에 청자에게 딥플로우 판타지를 선사하는 멋진 트랙이다. 특히, 붐 뱁(Boom Bap) 힙합을 표방했던 전작에서, 스타일의 클리셰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보이기도 했던 그의 랩은 스트리트한 서던(Southern) 힙합 스타일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군더더기 없이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변신이라기보다는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프로덕션을 찾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앨범은 정중앙에 놓인 “홍대놀이터 옆 코쿤사거리” 스킷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반전된다. “Welcome to the Club”에서 현실에선 비루해 보이는 언더그라운드 랩퍼의 시선으로 그가 깔아놓았던 판타지를 직접 걷어내며, 구차한 설명 없이 지역 판타지에 중량감을 더한다. 실재하는 클럽을 배경으로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듯한 분위기는 ‘혹시 날 기억해? Whatever’ 같은 구절과 만나 손에 잡힐 듯한 드라마를 부여한다. 이런 현실과 언더그라운드 랩퍼의 괴리가 만드는 경계를 허물기 위해 고분 분투하는 “Close My Eyes”까지, 스킷을 포함한 중반부 세 트랙은 앨범의 하이라이트라 부를만하다. 열기를 뿜어내는 전반부와 그것에 당위를 부여하는 듯 인간적인 이면을 보여주는 후반부로 정확히 양분한 구성은 단순하지만, 앞서 말한 앨범에서 담으려고 했던 것을 보여주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딥플로우는 [Heavy Deep]에서 자신의 현재 모습만 세밀하게 조명하는 것 외엔 다른 이야기를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예술가로, 또는 상업적으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사회에서 반쯤 숨겨져 있는 홍대 언더그라운드 랩퍼를 재발견해냈다. 앨범의 시작과 마지막을 “Let it Go”, “Still Ma Flow pt.2”로 막아내며 뭐가 어찌되었든 그는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청자를 지나가는 방문객으로 규정한 것도 영리하다. 개별적인 트랙은 평범한 듯하지만, 앨범의 전체적인 감상에 마음이 동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앨범의 범위를 축소하고 집중했기에 [Heavy Deep]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앨범 밖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새로울 것 없는 비트와 내용을 가지고도 과감한 구성과 세밀한 전달로 이번 앨범을 통해 이룬 성취를 뛰어 넘을 또 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의문 정도다. 어쨌든 딥플로우는 하드코어 랩퍼가 으레 겪는 동어반복의 패착을 선택과 집중으로 뛰어넘고, 단단한 앨범으로 자신의 매력에 견고함을 더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앨범으로 증명하는 랩퍼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Track List

    01. Let It Go
    02. Heavy Deep
    03. 이 구역에 미친놈은 나야 (feat. 지구인, New Champ)
    04. 생긴대로 놀아 (feat. Juvie Train, Koonta)
    05. 홍대놀이터 옆 코쿤사거리 (Skit)
    06. Welcome To The Club
    07. Close My Eyes (feat. VEN)
    08. Handicap Race (feat. VEN)
    09. Still Ma Flow pt.2
    10. [Bonus Track] B.L.K (feat. New Champ, Wutan, Carry Diamond, CeeJay, Swings, Okasian, Rocky L, Va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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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ernel (2012-01-04 03:48:23, 119.149.48.***)
      2. 흠....ㅋㅋㅋ이런 느낌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이렇게 들리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꿈보다 해몽일수도?
      1. close (2011-12-10 09:53:10, 121.181.97.***)
      2. 인터뷰 보고 리뷰보러 왔어요 ㅋㅋ 상구님 최근에 관심이 떨어져서 앨범낸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상당히 호평이네요 들어봐야겠어요
      1. 정동민 (2011-11-22 00:24:42, 121.175.152.**)
      2. 진짜 괜찮았음..ㅋㅋㅋㅋㅋㅋ 한 곡에서 영지지 그대로 따라한 느낌이 난 것 빼고는..
      1. JAMES (2011-10-26 01:32:18, 211.243.238.***)
      2. 딥상구 짱ㅋㅋ

        딥형의 목소리가 너무좋고 라임도 깔끔하고

        비트도 좋고 조화가 잘이루어진 앨범ㅋㅋ
      1. pusha (2011-10-24 22:41:48, 175.113.134.***)
      2. 딥플로우는 좋타... 곧죽어도 내꼴리는데 간다라는 마인드가 웬지 멋짐

        뭔가 싸내답다랄까?
      1. 쿨킴(jjay) (2011-10-21 22:05:56, 118.33.62.***)
      2. 힙합 보다 알앤비를 더 좋아하는 저 마져도 흡수한 앨범.
        개인적으로 저는 발매 전부터 들어볼 수 있었다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를 두고 있어요. ㅋㅋ
      1. disaster (2011-10-21 15:03:38, 211.45.56.*)
      2. 솔직히 딥플로우 관심없었는데 이 앨범은 완전 맘에 드네요. 바로 전곡 구매했습니다 TIGHT 그자체네요
      1. FUNKY METHODIST (2011-10-21 14:56:13, 175.202.126.***)
      2. 솜씨에 비해 결과물이 부족하다 싶었는데(떨어진다는게 아니라 좀 양에 안차는?), 간만에 나온 이번작은 완전 리얼임다.
      1. Fukka (2011-10-21 13:41:49, 211.246.69.***)
      2. 매우 잘 들었습니다. 스킷에서 웰컴 투 더 클럽으로 이어질 때 소름 돋더군요
      1. closer (2011-10-21 07:41:01, 118.40.4.**)
      2. 거리냄새가 리릭에 자연스럽게 스며듬과 동시에 본인이 환장하는 스트릿풀한 싸운드 개념있게 충실히 뽑아낸 존나 쩌는 앨범. 사실 나는 근래들어 dok2, 스윙스 제외한 국내힙합 정규앨범들은 도저히 끝까지 듣질 못하겠던데 이 앨범 물건임. 힙합문화, 음악이 주는 본연의 매력들을 이질감없이 있는 그대로 충실히 보여주는 극소수 몇안되는 국내 힙합아티스트중 한명이라고 생각함. 훼이보릿트랙은 헤비딥 제외하고 3,6,8번트랙
      1. 리듬을 타는 렉스 (2011-10-21 01:31:55, 211.246.71.***)
      2. 개인적으로는 비트들도 그렇고 딥플로우의 랩도 그렇고 본인의 영역 구축을 확실히 한 느낌이에요. 올해의 힙합 앨범 후보가 아닐지요. 정말 좋습니다.
      1. Raaaam (2011-10-20 11:58:37, 27.119.40.***)
      2. 배니쉿뱅은 딥플로우의 메시지가 너무 언더그라운드라는 틀에만 치우쳐져 있어서 식상하다고 한적이 있었던거 같은데... 오히려 그런 점을 좋게 승화시켰다면 또 색다른 맛이 있겠군요! 한번 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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