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Tyler, The Creator - Wolf
- rhythmer | 2013-04-08 | 1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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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Tyler, The Creator
Album: Wolf
Released: 2013-04-02
Rating:
Reviewer: 강일권
“강간과 몸통을 토막 내는 얘기 같은 건 이제 더 이상 흥미 없어. (중략) 사람들은 자꾸 첫 앨범의 재현을 원하는데, 난 못해. 그때 난 빈털터리에 18살이었어. 하지만 이번 세 번째 앨범에서 난 돈도 있고, 내 우상들과 논다고. (지난 앨범과) 같은 내용의 랩을 할 순 없어.”최근 스핀 매거진(SPIN)과 인터뷰에서 오드 퓨쳐(Odd Future)의 수장 타일러(Tyler, The Creator)가 밝혔던 위 내용은 [Wolf]의 음악적 방향성을 어느 정도 대변한다. 얼핏 거리에서 시작하여 메이저 랩 스타가 된 이들이 종종 내뱉는 변명과 별 다를 것 없는 답변이지만, 앨범을 들어보면, 타일러의 이 말은 다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돈이 되는 스타일의 프로덕션이나 단순한 스웩에 치중했다는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확실히 본작에선 그의 불안정한 심리, 분노, 똘끼의 표출이 꽤 줄어들었다는 게 느껴진다. 대신 좀 더 어둡고 진중해진 화법으로 내면을 드러내는데, 또 마냥 그러한 태도로 일관하는 건 아니다. 비록, ‘강간과 신체훼손 얘기 따위 이젠 재미 없어.’라고 밝히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기괴하고 공격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현재의 자아와 기존의 자아가 충돌하면서 전작들과는 또 다른 감흥이 만들어진다. 특히, 주변의 시선이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환경을 X도 신경 안 쓰며 거침없이 나아가던 그가 어릴 적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해 증오와 그리움을 동시에 쏟아내는 “Answer” 같은 곡은 백미다.
타일러는 이전에도 “Yonkers”를 비롯하여 몇몇 곡에서 아버지를 향한 애증이 담긴 라인을 써왔는데, 이번엔 아예 한 곡을 할애했다. ‘faggot’이라는 극단적인 욕설까지 동원하여 벌스 내내 독설을 퍼붓던 ‘후레자식’ 타일러는 각 벌스의 마지막과 후렴구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간절히 소망하는 ‘부성애 결핍의 소년’으로 돌아가 경악스러움과 측은함을 번갈아 안긴다. 이 와중에 곡의 끝에선 반전장치까지 마련하는 치밀함을 보인다.지질했던 과거를 지나와 바퀴벌레 한 마리를 먹고 부유한 랩 스타가 된(Bitch, I ate one roach and I made a lot of money‘) 현재를 무릎 탁 치는 비유와 걸걸한 입담으로 늘어놓는 “Domo23”, 어긋난 관계 속에서 여인에게 보내는 달콤 살벌한 편지 “IFHY”, 스타가 되어 사생활 침해를 받는 것에 관한 스트레스와 문제를 적나라하게 토로하는 “Colossus” 등등, 이번 앨범에서 타일러는 현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 주제들을 표면화하는, ‘55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선보인(?) 귀요미 3종 세트 표정과 정반대되는 둔탁한 음성의 랩핑이 지니는 무게감과 호소력은 여전하다.
그런데 본작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타일러가 책임진 프로덕션이다. 그동안 발표한 석 장의 정규 앨범을 통틀어 이번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만족할만한 성과를 냈다. 소리의 조합과 랩을 받쳐주는 분위기 형성에 주력하는 인상이 강했던 전작의 비트들과 달리 전반적으로 신스를 이용하여 멜로디 라인에 신경 쓴 비트들이 꽤 눈에 띈다. 이는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목매 자살하는 퍼포먼스보다 충격적이다.
여러분은 한 번이라도 ‘멜로디’와 ‘타일러’를 연관 지어본 적 있는가? 물론, 기존의 팝-랩 트랙이나 랩/성 콜라보(Rap/Sung Collaboration) 트랙들에 비하면, 멜로디컬하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지만, “Answer”, “Rusty”, “Cowboy”, "PartyIsntOver/Campfire/Bimmer" 등의 곡에서 선명하게 부각된 멜로디와 (오늘날 그의 집처럼) 몇 개의 층으로 쌓아 올린 구성은 상상하지 못한 터라 놀랍고, 완성도가 탁월해서 두 번 놀랍다.[Wolf] 속에 바퀴벌레를 먹고 토하던 ‘Bastard’ 타일러는 더 이상 없다. 그의 변칙적이고 똘끼 가득한 랩을 기대했다면,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만큼 앨범의 무게중심은 랩보다 프로덕션 쪽으로 옮겨와 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음악들은 은근하게 귓속으로 들어와 서서히 듣는 이의 머리와 가슴을 잠식해갈 정도로 매력적이다. 기존에 하위문화를 흡수하며 자란 어린 예술가로서 면모와 엽기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충격을 안겼던 타일러는 이렇게 비트메이커이자 한 장의 앨범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프로듀서로서 성장한 모습을 통해 또 한 번 충격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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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LE (2013-04-10 22:36:28, 221.142.41.**)
- 타일러 짱짱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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