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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Freddie Gibbs – ESGN
    rhythmer | 2013-07-22 | 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Freddie Gibbs
    Album: ESGN (Evil Seeds Grow Naturally)
    Released: 2013-06-20
    Rating:
    Reviewer: 양지훈









    최근 수 년 사이 청자들을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랩퍼가 몇 명이나 있을까? 그 좁은 대열에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를 포함시키는 것이 결코 무리한 처사는 아니라고 본다. 그는 본인의 EP와 믹스테입부터 게스트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조금이라도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여준 일이 없었다. 능숙한 완급조절, 갱스터 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 어떠한 스타일의 비트 위에서도 탁월한 랩을 얹는 능력 - 이 모든 점을 미루어 봤을 때, 프레디는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랩퍼였고, 그의 첫 앨범은 마니아들에게 최고의 기대작으로 거론되곤 했다.

     

    작년부터 소문만 무성하던 프레디의 첫 앨범은 영 지지(Young Jeezy)와 결별한 후에야 나오게 되었다. 프레디는 작년 말 독립 선언을 하기 전부터 다년 간의 경력을 통해 확보한 측근들에게서 도움을 얻어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영 지지와 그가 이끄는 CTE 레이블의 흔적은 조금도 묻어있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팬들의 기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상태에서 그의 앨범 [ESGN]은 발표됐다.

     

    [ESGN]은 그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격차가 굉장히 큰 앨범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갱스터 랩을 표방하는 랩퍼답게 화끈한 직설과 은유를 오가는 화법, 그리고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는 여전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결과물을 바탕으로 프레디 깁스의 재능에 대해 의심치 않았던 팬이라면, [ESGN]을 듣고 의아함이 들 수밖에 없다. 의아함을 설명하기에 앞서 팬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갱스터 랩에 최적화된 톤의 목소리

    (2) 보컬리스트를 대동하지 않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탁월한 자체 후렴구(hook) 메이킹 능력

    (3) 빠른 랩부터 도발적이고 느릿느릿한 랩까지 어떤 스타일도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능력

     

    이런 점들이 그를 최고의 기대주로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ESGN]은 위의 세 가지 중에 두 항목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우선, 지난 5년 여의 시간 동안 들려준 날카로운 랩보다 다소 무뎌진 듯한 느낌이 난다. 이러한 실망스러움은 '프로덕션 선택의 실패'와 맥락을 같이 하는데, 기존 믹스테입의 제작부터 관여했던 이들이 다수 참여했음에도 자신 있게 내놓을 만한 비트를 찾기 어렵다. 아예 투박한 드럼 루프를 운영했다면 더 좋을 수 있었겠다 싶은 곡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Cold Day in Hell] 믹스테입 시절, 빅 크릿(Big K.R.I.T.)이 프로듀싱한 "Rob Me a Nigga"와 같은 예상치 못한 수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역시 그러한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6월 초 뮤직비디오와 함께 선 공개된 "Eastside Moonwalker", 빠른 랩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프레디 깁스의 자신감이 농축된 "Freddie Soprano"처럼 이따금씩 건질만한 곡이 보이기는 하나, 우리가 바라던 바를 채워주기에는 전반적으로 너무 부족하다. 작년 [Baby Face Killa] 믹스테입 시절, "Kush Cloud", "Bout It Bout It" 등으로 전성기 피프티 센트(50 Cent)에 버금가는 중독성 강한 후렴구를 들려주던 프레디의 장점 또한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부기 다운 프로덕션(Boogie Down Productions)의 명곡 "9mm Goes Bang"을 재해석한 "9mm"의 코러스가 그나마 기대에 부응하지만, 이미 앨범의 끝자락에 다다를 시간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피처링 게스트들의 두드러진 활약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70여 분의 러닝타임이 밋밋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마니아들의 기대치가 대기권을 뚫고 우주를 향했지만,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앨범이 되고 말았다. 적대 관계의 이들에게 으름장을 놓고("F.A.M.E."), 때로는 매우 저돌적인 가사("Lay It Down")를 통해 전형적인 갱스터 랩의 정수를 보여주지만, 비트와 조화가 늘 발목을 잡는다. 지난 날에 보여준 환상적인 모습이 이어지길 바랐던 팬들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위안을 삼아보는 건 프레디가 여전히 최고의 재능을 지닌 랩퍼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가 언제든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머지않아 공개될 매드립(Madlib)과 프로젝트 매드깁스(MadGibbs)를 비롯한 다양한 결과물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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