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Kurupt – Streetlights
- rhythmer | 2010-05-04 | 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Artist: Kurupt
Album: Streetlights
Released : 2010-04-20
Rating :
Reviewer : 남성훈
[갤럭시퀘스트(Galaxy Quest, 1999)) 라는 영화를 보면, 한 때 유명 TV시리즈의 주인공들이었지만, 이제는 작은 행사에 참가해 팬들에게 사인이나 해주며 추억을 파는 배우들이 나온다. 최근 [더 레슬러(The Wrestler, 2008)]에서 미키루크가 연기한 추억을 파는 한물간 레슬러 ‘랜디’는 좀 더 우울한 버전이려나? 닥터드레(Dr.Dre)의 [Chronic](1992)에 혜성처럼 등장해 미(美)서부힙합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열었던 인물 중 하나였던 커럽(Kurupt)의 현재 모습은 안타깝지만, 영화 속 그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랜 콤비인 대즈 딜린저(Daz Dillinger)는 아예 대놓고 그들의 골수 팬들만을 타깃으로 삼은 뻔한 앨범들을 시대적인 사명감 없이 찍어내고 있다. 15년 전에 하던 이야기를 지금도 비슷한 음악에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내고, 드라마가 빠진 맥 빠진 갱스터 랩 앨범이지만, 오랜 팬들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추억을 되새김질 하며 즐거워한다.
꽤 괜찮은 앨범들을 들고 나왔었지만, 연이은 실패를 겪은 커럽 역시 지금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오랜 콤비와 별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와 다른 동료들을 구분하는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숨길 수 없는 특유의 기질이다. 청자에게 혐오감을 주기 위해 스스로를 ‘빈라덴’으로 칭하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은 그를 이해하기 위한 첫 단추이다. 절대 정치적으로, 아니 ‘갱스터랩’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갱스터 랩퍼들이 청자들에게 갱 판타지를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그것에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면, 커럽은 많은 부분에서 다가오기보다는 한 발 물러난다. 믹스테입 [Full Circle]의 첫 곡 “Half a Million”에서 빛을 발했던 역설적인 자기비하와 팬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분노와 비웃음이 서려있는) 고심, 자신의 형편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팬들로 하여금 한 발 물러난 커럽에게 먼저 심정적으로 다가가게 하는 여백을 남긴다. 우습지만, 그것이 ‘애틋함’이라고 한들 부정하긴 힘들다. 그렇게 커럽은 팬들과 쌍방향으로 소통한다.2010년 커럽은 테라스 마틴(Terrace Martin)이 대부분의 곡을 깔아 준 [Streetlights](2010)라는 또 하나의 솔로앨범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테라스마틴은 [Blaqkout](2009)에서 커럽과 호흡을 맞췄던 거장 디제이퀵(DJ QUIK)이 아니며, [Space Boogie:Smoke Oddessey](2001)에서 함께 했던 프레드 렉(Fred Wreck)은 더더욱 아니다. 앨범 전체의 음악을 책임졌지만, 테라스 마틴에게 음악적으로 기대할 것은 없다. 스눕 독(Snoop Dogg)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그는 딱 커럽의 랩을 해하지 않을 정도의 비트들을 만들었다. 팬의 입장에서 맞춤 생산했다고 보는 것이 편하다. 이 앨범을 즐기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커럽의 기질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 물론, 당신이 적어도 10년 이상 그의 행보를 주시한 팬이라는 전제하에서 말하는 것이다. 아니라면, 굳이 들을 가치는 별로 없다.
“Intro”에서 커럽은 자신의 현재 모습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들어간다. ‘Fuck the fame, I learned the game from Eazy’라는 부분에서 팬들은 이지-이(Eazy-E)가 살아있던 시절을 추억하다가 서부힙합과 커럽의 현재 위상을 느끼며 전율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그는 아예 ‘사람들이 날 싫어해서 난 앨범을 많이 팔지 못해.’라며, 배짱 있게 앨범을 시작한다(실제로 그는 첫 주에 3,000장을 채 못 팔았다). “Questions”는 본 앨범의 백미이자, 서부힙합의 오랜 팬들을 위한 선물보따리다. 하나의 작은 전설이 되어 버린 90년대 서부힙합의 이야기에 자신을 대입해 투팍(2pac)의 죽음부터 그의 파산 루머에 이르기까지 잔인한 질문들을 나열하는 형식은 답이 없더라도 팬들의 감정을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피트락(Pete Rock)이 비트를 선사한 “Yessir” 역시 커럽의 힘겨운 버티기를 보여주는 명곡. 마치 강수지를 한 번 직접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10대 팬이 세월이 흐른 뒤 밤무대에서 강수지의 모습을 언제든 볼 수 있게 되자 오히려 씁쓸해진 것과 비슷한 경우랄까? 이 곡을 듣는 많은 이의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커럽은 “Yessir”에서 ‘That’s Gangsta’를 계속 읇조리지만, 분명 [Kuruption!](1998)의 트랙“That’s gangsta”의 것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곡 안에서 닥터 드레와 스눕 독을 팔며, 팬들에게 ‘아직은 나 괜찮으니 안심하라.’고 속삭이는 듯 하다. 물론, 진중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I’m the Man”과 -‘I was the Monster’라는 라인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Streetlights”정도를 제외하고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트랙들로 채워져 있다. “I’m Burnt”, “In Gotti We Trust” 와 같은 하드한 곡들과 “Vibe”의 후속처럼 들리는 말랑한 “All that I want”가 본 앨범을 대표하겠지만, 앞서 언급한 트랙들은 커럽과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며, 이 앨범의 성격을 결정 짓는다.
2010년, 여전히 커럽은 20년째 랩을 기막히게 잘하지만, 내뱉는 이야기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자신의 위치를 인정한다. 나이 든 팬들이 “아직도 이러고 있네.” 라며, 나이만 먹은 철없는 갱스터 랩퍼들을 떠나갈 때 커럽은 갱스터 랩퍼 본연의 품위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슬쩍 날을 세워 세월의 흔적을 꺼내 보인다. 청자들 역시 다른 모양새로 느끼고 있을 시간의 무게를 가지고 그와 소통한다. 그래서 그는 아직 매력적이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남성훈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