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Black Milk - Glitches In the Break
- rhythmer | 2014-03-28 | 2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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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Black Milk
Album: Glitches In the Break
Released: 2014-03-04
Rating:
Reviewer: 지준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에게 예술적 지조는 끊임없이 요구되지만, 음악의 상업적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트렌드와 대중의 기호가 계속 변화하는 현 상황에서 본연의 중심을 지키며 자신이 설정한 노선을 타협 없이 걷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장르의 특성상 타 장르와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오늘날 힙합 씬에서는 변함없는 음악적 태도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어불성설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술적인 진보나 시대적 트렌드를 적절히 수용하면서도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색채 역시 잃지 않는 뮤지션의 결과물을 바라는 리스너들의 욕구는 여전히 본능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에 회답이라도 하듯 예술적 의의와 순수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멋진 음악들 또한 의식 있는 힙합 뮤지션들의 부단한 노력 속에서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에 통산 두 번째 솔로 EP를 발매한 블랙 밀크(Black Milk) 역시 이러한 뮤지션들 중 한 명이다.블랙 밀크는 디트로이트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을 대표하는 프로듀서이자 랩퍼이며, 명성에 걸맞게 고(故) 제이 딜라(J Dilla)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뮤지션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 프로듀서로서 커리어를 시작할 때부터 피트 락(Pete Rock)이나 제이 딜라가 선사해주었던 과거의 유산들과 현대적인 사운드 사이의 타협점을 기가 막히게 집어내는 식으로 음악을 구성했고, 이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많은 이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렇듯 힙합의 황금기를 향한 애정과 소울, 재즈에 대한 탐닉을 그 특유의 타이트한 힙합 비트와 조화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의 곡들은 왜 블랙 밀크라는 뮤지션이 디트로이트의 소중한 유산으로 칭송받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2013년 가을에 발표했던 다섯 번째 솔로 앨범 [No Prison No Paradise]를 통해 음악적 성숙도가 절정에 다다랐음을 알린 그는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수준급의 EP를 발매하면서 현 힙합계에 다시 한 번 과거의 숨을 불어넣고 있다.
[Glitches in the Break]는 비트의 구성만을 본다면 전반적인 면에서 전작과 그 궤를 같이한다. 소울이나 재즈 샘플을 사용한 비트를 기반으로 하되 그 위에 다채롭고 실험적인 전자음들을 뒤섞어 버무리는 식의 구성이 그대로 연장되어 있다. 다만, 실험적인 터치가 전자음이나 신스의 영역에만 머물렀던 과거의 곡들과는 다르게 이번 앨범에서는 그 영역이 한층 확장되었고, 앨범에 담긴 많은 곡들에서 다양한 효과음들이 더욱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곡의 전체적인 외형 자체가 주는 인상은 기존의 곡들과 달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적절한 정제와 꼼꼼한 배치를 통해 적재적소에서 그 효과를 최대한 부각하는 독특한 사운드가 전체를 아우르며, 더욱 깊은 감상을 유도한다.
앨범의 첫 트랙인 “There are Glitches”에서는 귀를 강타하는 현란한 피아노 선율과 강한 드럼 사운드, 그리고 그 뒤로 흐르는 전자음들이 혼란스럽게 결합하여 범상치 않은 음악으로 포문을 연다. 다음 곡이자, 실질적인 첫 곡인 “Dirt Bells”는 실험적인 전자음이 그리 강조되지는 않지만, 중심 뼈대를 이루는 서정적인 실로폰 멜로디와 각종 샘플링 보컬의 적절한 삽입을 통해 구현된 블랙 밀크만의 재지한 레이드-백(Laid-Back) 사운드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어지는 곡인 “Ruffin”은 이번 앨범의 특징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트랙이라고 할 수 있다. 뭔가 비어있어 어색한 느낌마저 주는 낮은 울림의 드럼 비트를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사운드들이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며 보충해주고, 기괴한 전자음이나 가벼운 기타 사운드, 또는 샘플링된 보컬이 예상치 못한 부분에 등장하여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었을 곡에 유쾌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 곡들 외에도 음산한 비트와 화려한 랩핑이 맛깔나게 어우러지면서 그동안 (그의 비트에 비해) 회자되는 비중이 낮았던 블랙 밀크의 작사 실력과 수준급의 플로우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Silence”, 이미 2011년 랜덤 액스(Random Axe)의 데뷔 앨범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었던 길티 심슨(Guilty Simpson)과 블랙 밀크의 또 다른 느낌의 조합을 볼 수 있는 “G”, 제이 딜라의 소울풀한 감각이 느껴지는 애틋한 “Cold Day”, 그리고 디테일하게 구성된 악기와 샘플들이 보컬 없이도 멋진 질감을 구현해내는 “Break” 같은 곡들 역시 열정이 돋보이는 보석 같은 트랙들이다. 비록, 중간중간 힘이 다소 떨어지며 피로감을 주는 부분들이 간혹 존재하지만, 각 트랙들 하나, 하나에서 느껴지는 블랙 밀크의 탁월한 음악적 구성 능력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앨범에서 블랙 밀크는 자신이 뮤지션으로서 살아온 삶을 반추함과 동시에 아티스트에게 있어 명성과 인기가 지니는 의의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그의 노력이 앨범을 통해 명확히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블랙 밀크가 지금 시기에 던지는 이 사안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유산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재해석을 통해 디트로이트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부상한 블랙 밀크가 이번 앨범을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색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블랙 밀크가 지금까지 앨범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비단 과거의 음악적 작법의 답습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제이 딜라가 [Donuts] 같은 앨범에서 보여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정신’과 ‘평범함에 대한 거부’까지도 블랙 밀크는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의 계승은 이번 앨범의 비트들을 통해 더욱 명백해졌고, 앨범의 가사에 담긴 메시지들 또한 블랙 밀크가 생각하는 미래의 힙합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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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퍼엔 (2014-04-17 14:50:23, 211.56.190.***)
- 미래의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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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rnel (2014-04-03 15:14:49, 125.133.57.***)
- 블랙밀크가 드디어 제이딜라 색깔을 벗는것 같아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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