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clipping. - CLPPNG
- rhythmer | 2014-06-23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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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clipping.
Album: CLPPNG
Released: 2014-06-10
Rating:
Reviewer: 오규진
전반적인 랩의 수준이 높아지고, 힙합이 하나의 장르로 인정을 받으면서, 여러 장르에서 랩을 도구로써 가져와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단순히 랩을 첨가하는 것을 넘어서, 힙합과 다른 장르의 결합은 새로운 장르들을 탄생시켰다. 록과 결합한 랩-록(Rap-rock), 여기서 더 나아간 뉴 메탈(Nu Metal) 등이 있고, 영국에서는 드럼 앤 베이스(Drum and Bass)와 섞여 그라임(Grime)이 탄생했다. 더 급진적인 장르로는 빗크러셔(Bitcrusher) 등을 통해 소리로 불길한 느낌을 강조한 인더스트리얼 힙합(Industrial Hip Hop), 글리치(Glitch) 장르의 리드미컬한 부분을 강조시킨 글리치 합(Glitch Hop)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장르에선 대부분 힙합이 가진 고유의 지분은 줄어들고, 랩 또한 곡의 중심이 아닌 하나의 ‘드레싱’으로 존재하곤 한다.그런 면에서 노이즈 랩(Noise Rap)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클리핑(clipping.)의 음악은 단순한 혼종 장르라고 치부하기엔 주목할 면이 많다. 분명 이들이 들려주는 대부분의 비트는 노이즈(Noise)라고 불릴만한 자그마한 소리들로 채워져 있고, 음이 있는 악기가 별로 없다. 하지만 클리핑의 음악은 랩과 보컬이 곡 전체를 지배하는 음악이다. 이들이 선보이는 특이한 비트가 힙합을 섞은 다른 장르를 뜻한다기보단, 오히려 호러코어(Horrorcore)의 연장선 위에서 굉장히 새로운 비트 위에 랩을 해보려는 시도로 들린다. 노이즈라는 소리가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 조합은 특이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럴싸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이질적이었던 전작 [Midcity]와 달리, 이번 앨범 [CLPPNG]에선 청자를 더 배려한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노이즈가 지배하는 음악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CLPPNG]의 곡들에선 이미 존재했던 힙합의 여러 스타일과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넵튠즈(The Neptunes)가 “Drop It Like It’s Hot”에서 드럼과 아기자기한 소리만을 이용한 미니멀한 비트로 새로운 유행을 선도했듯이, 클리핑도 노이즈를 최소한으로 쓴 미니멀한 비트로 청자에게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느낌을 들려준다. 또한, 이번 앨범에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개척자 중 한 명인 킹 티(King T)나 서던 힙합(Southern Hip Hop)을 대표하는 그룹 중 하나인 쓰리 식스 마피아(Three 6 Mafia)의 전 멤버 갱스터 부(Gangsta Boo)가 지원 사격을 해준 것도, 클리핑의 음악이 힙합 고유의 색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암시한다. 무엇보다도 메인 엠씨 다비드 딕스(Daveed Diggs)의 랩 실력은 한층 더 성장해서, 이질적인 비트를 전작보다 훨씬 더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 나간다. 그의 목소리는 종잡기 힘든 그루브를 가지고 놀고, 그의 가사는 재치 넘치는 갱스터 랩을 표방한다.
앨범에는 군데군데 인상적인 지점들이 있다. 휘몰아치는 랩으로 시작을 알리는 “Intro” 다음 곡인 “Body and Blood”에서, 클리핑의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이즈와 호러코어의 절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다비드 딕스는 남자를 유혹해 살인을 저지르는 여자를 섬뜩한 목소리와 거슬리는 소리들 위에 묘사하는데, 전작보다 드럼이 훨씬 두드러진 비트 위에서 뛰놀고, 무서울 수 있는 가사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듣는 사람의 거부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피처링 진이 반가운 “Work Work”, “Summertime”의 경우, ‘특이한 소리를 가미한 미니멀한 힙합 비트’의 정신을 이어받아, 다른 랩퍼들이 벌스를 무난하게 얹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기도 했으며, “Taking Off”, ‘Tonight”, “Inside Out”에서는 공간감 넘치는 드럼과 리듬 쪼개기를 통해 그라임과 비슷한 비트를 선보인다. 대미를 장식하는 세 곡인 “Dominoes”, “Ends”, “Williams Mix”에선 겹겹이 쌓인 수많은 노이즈로 이들의 음악이 범상치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클리핑은 한 인터뷰에서 ‘이상하게 들리는 비트 위에 랩을 하는 것을 상업적 힙합에 대한 공격이자, 판을 뒤엎으려는 시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라고 했다. 동시에 ‘우리는 랩 음악을 사랑하고, 오히려 우리는 메인스트림 힙합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을 할 뿐’이라고 했다. 이 말은 고스란히 이들의 음악에서 잘 드러난다. 힙합과 어두운 혼종 음악을 만들어온 다른 뮤지션들과는 달리, 클리핑에게선 힙합 청자들에게 신선하면서도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비슷한 선상에 있는 데쓰 그립스(Death Grips)나 샤바즈 팰러시스(Shabazz Palaces)와 같은 뮤지션들이 청자와 소통보다는 완성된 음악 그 자체에 신경을 쓴다면, 클리핑은 보다 ‘소통하는 이질적인 음악’을 표방하고 있다. 분명히 처음 들을 때에는 불편한 음악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 방향 또한 힙합의 새로운 일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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