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Raury - Indigo Child
- rhythmer | 2014-09-18 | 1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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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Raury
Album: Indigo Child
Released: 2014-09-03
Rating:Rating:
Reviewer: 지준규
음악 시장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 수십 년간 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음반 시장은 현재 끝 모를 침체의 늪에 빠져 있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음원 서비스들도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트렌드와 소비자들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에 급급할 뿐 뚜렷하고 분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장의 불안감은 자연스럽게 뮤지션들에게도 이어졌고 그들의 음악적 소신과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음악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주목을 받기 위해 음악 자체의 완성도가 아닌 선정적인 소재 또는 극도로 대중 친화적인 사운드에만 집착하는 아티스트들이 양산되었고 일시적인 자극에 의존하는 태도는 점차 당연시 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미디어 산업의 고정화 된 틀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음악 영역을 개척하려는 뮤지션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들의 행보는 신선한 활력소가 되곤 한다. 얼마 전 첫 앨범 [Indigo Child]를 무료로 공개한 힙합 아티스트 라우리(Raury) 역시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다.라우리는 말 그대로 여러 장르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뮤지션이다. 우선 그는 라임에 충실한 랩 가사나 그루비한 플로우, 그리고 반복되는 샘플링 등의 힙합적인 요소들을 중점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그 외에도 최신의 일렉트로닉 팝과 화려한 기타 리프는 물론, 현 흑인 음악 씬의 거대한 조류인 PBR&B의 그윽한 감성까지도 적극 수용하면서 자신의 자유로운 음악 세계를 마음껏 드러낸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라우리의 음악이 미국의 본 이베어(Bon Iver)나 더 루미니어스(The Lumineers) 같은 인디 포크(Indie Folk) 밴드들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 점이다. 그는 어쿠스틱 기타의 멜로디컬한 라인과 투박하고 간결하지만 깊은 음색의 스네어 비트를 충분히 활용하여 인디 포크 특유의 짙은 정서를 담아내고 그와 타 장르간의 조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며 독특한 감상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다양한 질감의 사운드들이 역동적으로 어우러져 있는 라우리의 음악에선 그가 가진 실험적인 면모는 물론 기존의 힙합이 가진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패기 넘치는 열정과 순수함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대중의 입맛에 미련을 두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과 표현 방식으로 장르와 스타일을 재해석 하고자 한 라우리의 음악적 신념은 앨범의 인트로를 듣는 순간 명확해진다. 짧은 가사를 수차례 반복하며 젊은 청춘의 자부심과 동지애를 역설하는 첫 트랙 “War Pt 1”은 육중한 비트가 기반을 닦고 그 위로 음울한 신스음이나 울부짖는 보컬 등이 마구잡이로 더해지며 혼란스러움을 점점 고조시키는데, 1분 남짓의 이 곡은 정형화된 기준과 패턴을 지양하는 앨범의 방향성을 정확히 대변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짧은 스킷(Skit)을 지나면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곡 “God’s Whisper”가 등장한다. 포크 음악의 전원적인 분위기가 그 외의 것들과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색다른 감흥을 전하는 이 곡은 어색한 조율의 어쿠스틱 기타와 라우리의 스포큰 워드(Spoken Word) 보컬, 그리고 둔탁한 드럼 사운드가 엉성하게 얽혀서 의도적인 여백을 남긴다. 그리고 그 빈 공간들은 조밀한 핸드 클랩이나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원초적인 코러스로 불규칙하게 메워지는데, 이는 주변의 이야기보다는 내면의 직관이 더 중요하다는 노래의 메시지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곡에 생기를 더한다. 이 외에도 감동 충만한 포크에서 랩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인상적인 “Superfly”나 농밀한 기타 연주 위에 유려한 피아노 라인과 시시각각 변하는 전자음이 변칙적으로 얹히며 긴장감 있게 전개되는 “Amor”, 활기차면서도 강렬한 비트 위로 실존과 허무를 논하는 “Chariots of Fire” 등의 곡들 역시 앨범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이처럼 라우리는 이번 앨범에서 장르 간의 간극을 좁히고 그를 통해 새로운 힙합의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했던 본래의 의도를 어느 정도 관철시켰으며,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그만의 기발함과 재치 또한 효과적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창작욕과 독창성에 비해 앨범의 전체적인 완성도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 대표적인 이유는 보컬에서 찾을 수 있는데, 변화가 적고 단조로운 발성과 톤이 지나치게 반복되는 라우리의 보컬은 종종 음악적 변수들이 가득한 다채로운 음색의 사운드들과 적절히 융화되지 못한 채 지루함을 유발하거나 감상을 방해한다. 또 중간중간 등장하는 짤막한 스킷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직접적이고 거친 탓에 그에 이어지는 곡의 극적인 매력이 반감되는 경우가 발생하여 곡의 배치나 구성에 있어서 치밀한 계산이 부족했음을 느끼게 한다.
라우리는 얼마 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세대는 더 이상 갇혀있지 않아. 우리는 정말 많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자랐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내 음악의 자양분이 될 거야.” 9살 무렵부터 작곡을 시작해 이제 막 소년의 티를 벗은 사내아이의 이 같은 목표와 희망은 예사롭지 않은 데뷔 앨범을 통해 일정 부분 달성되었다. 비록, 음악성이나 기술적인 무게감에 있어서 아쉬운 지점은 있지만, 의미 없는 경쟁과 획일화 또 상품화로 점철된 지금의 음악 시장을 돌아볼 때, 라우리의 당찬 포부와 도전 정신이 돋보이는 이번 앨범이 지닌 가치와 의의는 한층 더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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