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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Logic – Under Pressure
    rhythmer | 2014-11-11 | 1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Logic
    Album: Under Pressure
    Released: 2014-10-21
    Rating: 
    Reviewer: 강일권









    세상이 변하고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지금도 슬럼가는 존재하고 그곳의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각종 범죄와 위험에 쉽게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 자연스레 힙합의 역사와 함께해온 마약 거래와 총격 사건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컨텐츠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밑바닥으로부터 성공 신화'(진정성 면에서든 엔터테인먼트적으로든) 미 힙합 씬에서 여전히 쾌감을 안기고 주된 주제로 먹히는 결정적인 이유다. 작년에 발표한 믹스테입 [Young Sinatra: Welcome to Forever]로 기대치를 한껏 올린 로직(Logic)의 음악적 핵심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마약, 혹은 범죄가 원인이 된 결손가정에서 자라 일명 '거리의 삶'을 체험하다가 랩으로 성공한다는 일화는 힙합 씬 도처에 널렸다. 관건은 랩을 빌어 이 흔해 빠진 이야기를 얼마나 그럴듯하고 흥미롭게 하느냐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치밀한 서사 구조와 라임 설계를 통해 탁월한 내러티브로서 가치를 획득하고, 사회상까지 잘 담아낸다면, 명작의 반열에 오를 확률이 커진다. 2012년 말부터 2013년에 걸쳐 힙합 씬을 크게 들었다 놨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Good Kid, m.A.A.d City]가 딱 그런 작품이었는데, 로직도 사전에 밝혔듯이 [Under Pressure]는 그 배경이 컴튼(Compton)에서 게이더스버그(Gaithersburg)로 바뀌었을 뿐, [Good Kid, m.A.A.d City]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비단 앨범의 주제와 내러티브 면에서만 하는 얘기가 아니다. 완성도 면에서도 그렇다.

     

    사실 앨범의 큰 주제는 "Intro"가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본작은 한 편의 근사한 성장 드라마와 같다. '마약과 범죄에 찌든 가족을 둔 한 소년이 있었다. 악몽 같은 순간의 연속 속에서 나쁜 길로 들어설 수도 있었지만, 힙합을 만나 희망을 봤고, 랩퍼로서 재능을 키워나갔다. 놀라운 실력을 갖추게 된 그는 어느덧 청년이 됐고, 여러 결과물을 통해 일찌감치 자신을 증명한 끝에 힙합의 성지 데프 잼(Def Jam)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시작한다.' 얼핏 통속적인 이 이야기는 로직의 경탄할만한 플로우와 가사, 그리고 준수한 프로덕션까지 삼박자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며, 기존의 뻔한 '밑바닥 인생 탈출기'와는 전혀 다른 수준에 올라섰다. 무엇보다 로직은 싱글 "Under Pressure"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지적인 무드와 상스러운 기운 사이의 경계를 절묘하게 가로지를 줄 안다. 치밀하게 짜인 라임 안에서 높은 수준의 은유와 배설의 쾌감을 부르는 욕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리리시즘(Lyricism)이 완성되고, 빈틈없이 전개되는 플로우가 그 탁월함에 방점을 찍는다. 더불어 (그가 실제로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청자가 서사를 최대한 잘 따라가며 이해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풀어서 얘기하는 와중에도 가사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 역시 훌륭한 부분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곡을 통해 드러나는 로직의 태도다. 그는 세상이나 시스템을 향해 불만을 폭발시키거나 가족사를 통해 사람들의 연민을 끌어내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현실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과 견해, 내면의 감정을 문학적으로, 그리고 이야기의 힘을 실어서 잘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는 듯한데, 결과적으로 이것이 게이더스버그, 더 나아가서는 슬럼가의 젊은이들이 처한 환경과 여전히 미국이 직면한 여러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으로 확장된다는 게 백미다. 앨범 중 가장 거친 편에 속하는 묘사로 불편한 가족사를 비롯하여 범죄로 점철된 환경을 노래한 "Gang Related", 그런 환경 속에서 성공에 대한 도전 의지를 담은 "Buried Alive" 등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상의 특징과 장점들은 [Under Pressure] [Good Kid, m.A.A.d City]에 비견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각자 화법이야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그만큼 두 작품에선 공통분모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차이점이라면, 프로덕션의 방향일 것이다. 트렌드와 전통성이 고르게 섞인 가운데 일부에서 '90년대 웨스트 코스트 힙합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내며 감탄을 자아낸 [Good Kid, m.A.A.d City]가 철저한 컨셉트 아래 정해진 프로덕션 안으로 랩퍼가 뛰어든 느낌이었다면, [Under Pressure]는 랩퍼가 구사하는 빠르고 정확하게 뱉는 플로우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자 한 느낌이다. 로직을 잘 꿰뚫고 있는 총지휘 프로듀서 노 아이디(No I.D.)가 꾸린 집안 프로듀서들과 로직 스스로도 프로덕션에 참여한 덕일 것이다. 의미적으로 전자가 좀 더 무게감을 갖고 짜릿함을 선사하긴 하지만, 완성도는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본작 역시 훌륭하다. 재미있는 건 앨범 속 몇몇 곡이 [Good Kid, m.A.A.d City]의 영향을 대놓고 드러낸다는 점이다. "Under Pressure" "Metropolis"가 그러한 곡들인데 그 방식이 조금 복잡하다.

     

    이 두 곡은 켄드릭 라마의 "Sing About Me, I'm Dying of Thirst"와 곡의 무드는 물론, 드럼 파트가 매우 흡사한데, 일단 이것은 로직과 켄드릭의 곡 모두 빌 위더스(Bill Withers) "Use Me"에서 드럼 파트를 샘플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그 다음이다. "Under Pressure"는 중후반부에 비트가 변주되는 형식까지 켄드릭의 방식을 빌려왔고, 바로 이 변주된 부분이 특히 비슷한 건데, 여기엔 또 다른 샘플링의 재미가 숨어있다. 켄드릭 라마의 "Sing About Me, I'm Dying of Thirst"는 빌 위더스의 곡 외에 재즈 기타리스트 그랜트 그린(Grant Green) "Maybe Tomorrow"에서 기타 리프를 샘플링했는데, 로직의 "Under Pressure"는 같은 그랜트 그린의 비슷한 무드지만, 다른 곡인 "My One and Only Love"를 샘플링한 것. 실로 프로덕션적인 재치가 물씬 느껴지는 지점이다. 이 외에도 앨범엔 깨알 같은 흥미 요소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많은 랩퍼가 대마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 "Nikki"라는 곡을 통해 담배에 대한 사랑을 표하며, 무려 니코틴을 의인화한 점이라든지, 탈리아(Thalia)라는 인공 가이드를 등장시켜서 로직이 영향받은 그룹 중 하나인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의 [Midnight Marauders]의 설정에 대한 오마주를 표하는 부분 등이 그것이다.  

     

    로직의 랩부터 가사, 프로덕션까지 애써 흠잡을 곳이 없다. 아쉬운 부분을 하나 찾자면, 그의 플로우가 시종일관 너무 꽉 조이며 질주하는 탓에 약간의 피곤함을 유발한다는 건데, 이것이 작품성을 해치는 요소가 되진 않는다. 또한, 그 충격파나 전반적인 구성미가 주는 쾌감에서 [Good Kid, m.A.A.d City]가 좀 더 인상적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본작의 가치가 깎이는 것도 아니다. 여기 걸출한 실력을 지닌 신예가 만든 또 한 장의 압도적인 앨범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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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anq (2014-11-12 13:49:33, 114.206.197.***)
      2. 정말 좋았던앨범... big krit앨범도 좋더라구요 올해연말엔 풍족하네요 ㅎㅎ
      1. Bruce Mighdy (2014-11-12 11:50:33, 58.123.207.***)
      2. 잘 짜인 프로덕션과 온전한 본인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 크게 인상을 주었던 앨범입니다~
      1. 앎통키 (2014-11-12 11:25:18, 121.145.39.***)
      2. 올해의 마지막엔 정말 진국같은 앨범들만 터져나오네요 Big K.R.I.T.까지 제대로 한방 해준다면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ㅠ
      1. 윤정준 (2014-11-12 09:25:03, 61.102.87.***)
      2.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은 느낌. 물론 좋은 쪽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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