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Apollo Brown & Ras Kass - Blasphemy
- rhythmer | 2014-12-10 | 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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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Apollo Brown & Ras Kass
Album: Blasphemy
Released: 2014-10-28
Rating:
Reviewer: 강일권
래스 캐스(Ras Kass)는 동부든 서부든 스타일을 가리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비트를 타는 랩 실력과 가공할 리리시즘(Lyricism)으로 무장하고, '90년대 힙합의 황금기 한복판에 등장했다. 한때 촉망받는 신예였지만, 프로덕션에 대한 제작진의 과도한 개입으로 말미암은 레이블과 마찰, 그에 따른 완성도와 홍보 부족에 이은 앨범의 상업적 실패, 완성시켜 놓은 앨범 발매가 무산되는 일 등을 겪으며, 대표적인 '비운의 랩퍼' 중 한 명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이후, 오랜 공백기 끝에 주류에선 완전히 밀려났으나 인디 노선을 걸으며, 여전히 왕성한 창작욕과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는 베테랑 랩퍼다.아폴로 브라운(Apollo Brown)은 샘플링과 루핑의 미학에 근거한 '90년대 붐뱁 힙합의 명맥을 이으며, 2000년대 힙합의 신세기 한복판에 등장했다. 시작은 조용했지만, 그룹 더 레프트(The Left) 프로젝트, 베테랑 랩퍼 오씨(O.C.)와 합작 앨범 등을 통해 절정의 감각을 인정받은, 2000년대 등장한 몇 안 되는 '샘플링의 귀재' 중 한 명이다. 비록, 아쉬운 결과물도 더러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프로듀서다.
그리고 이 두 뮤지션이 뭉쳤다. 그것도 제목처럼 아주 신성 모독적인 주제를 가지고.
본작에서 이들이 설파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은 종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래스 캐스는 특정 종교만을 표적으로 삼지 않고, 주요 종교를 다 아우르면서 높은 식견을 바탕으로 교리 안에 내재된 모순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물론,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역사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개인, 혹은 범국가적 폭력 문제까지 파고들어 낱낱이 까발리고 비판한다. 그래서인지 미국 국기를 상징하는 앨범의 커버 아트워크가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극도로 민감한 주제를 공론화하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탁월한 은유와 랩핑을 통해 구현된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 깊다. 거침없이 비속어를 사용하는 TV 전도사로 유명했던 리버런드 엑스(Reverend X)의 '97년 연설 일부를 차용한 인트로 "Next Caller"에 이은 첫 곡 "How To Kill God"부터 래스 캐스는 날카로운 시각과 맹렬함을 드러낸다. 성서에서 발견되는 몇몇 의문점과 거기에서 비롯된 모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후, 후반부에 이르러 '만약 자신이 (이렇게 신성 모독적인 발언을 한 탓에) 지옥에 가게 된다면, 진실을 찾은 것이니 공유하겠다.'라는 태도를 담은 펀치 라인으로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Deliver Us From Evil"에서는 올해의 참극 중 하나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을 예로 이슬람교와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Animal Sacrifice"에서는 주요 종교계(특히, 로마)의 의식에서 이루어진 동물 희생 행위를 레퍼런스 삼아 현 힙합 씬과 산업계를 꼬집기도 한다. 물론, 본작이 종교 이야기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다.
그가 20여년 간 활동하며 몸소 익히고 쌓은 거리와 음악 산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48가지 법칙'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48 Laws (Part 1)", 엄숙한 비트 위에서 친구, 가족, 세상을 떠난 동료 아티스트들에 대한 헌정을 담은 "Bon Voyage"처럼 다른 흥미로운 주제의 곡들도 존재한다.래스 캐스의 훌륭한 랩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앨범의 완성도에 방점을 찍는 건 역시 아폴로 브라운의 탄탄한 프로덕션이다. 가장 최근의 랩퍼와 합작들인 길티 심슨(Guilty Simpson)과 듀오 앨범, 그룹 어글리 히어로즈(Ugly Heroes) 프로젝트 앨범에서는 다소 주춤한 듯했으나 본작에서 다시 한 번 빛나는 샘플링의 정수를 선보인다. 묵직하게 떨어지는 드럼과 샘플링을 통해 조성하는 진중한 무드가 만나 탄생한 아폴로 브라운표 붐뱁 사운드는 이번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비록, 2012년 걸작인 [Trophies (with O.C.)]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특히, 그가 비트를 전개하는 방식은 듣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지점이다. 이전부터 브라운은 옛 선배 프로듀서들처럼 자신이 샘플링한 원곡을 먼저 맛보기로 들려준 다음 비트로 돌입하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는 샘플 원곡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임과 동시에 해당 곡을 어떻게 재탄생시켰는지를 과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아폴로 브라운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나는 건 매우 익숙한 곡들을 재료로 사용한 곡들에서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ara Streisand)의 팝 클래식 "The Way We Were"를 샘플링한 "H2O", 커먼(Common)의 "Misunderstood”에도 쓰였던 니나 시몬(Nina Simone)의 명곡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샘플링한 "Please Don't Let Me" 등이 대표적인 예. 기존과 차별화된 루프(Loop)의 활용과 무드의 변화를 통해 익히 잘 알려진 곡들을 샘플링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프로덕션의 틀을 절묘하게 비켜나가는 브라운 식 샘플링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앨범이 내세운 메시지적인 지향점에 비해 종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곡의 수가 적은 건 아쉬운 부분이지만, 이것만 제외하면, [Blasphemy]는 각 분야의 상위권 실력자들이 만나 좋은 화학작용을 일으킨 작품이라 할만하다. 래스 캐스는 털끝만큼도 녹슬지 않은 랩 실력으로 이 판에서 여전히 살아남고 있는 이유를, 아폴로 브라운은 확실히 믿고 듣는 이름이 된 프로듀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눈부시게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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