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J. Cole - 2014 Forest Hills Drive
- rhythmer | 2014-12-19 | 2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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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J. Cole
Album: 2014 Forest Hills Drive
Released: 2014-12-09
Rating:
Reviewer: 조성민
몇 년 전, 힙합 씬을 들끓게 만들었던 대형 루키들의 등장이 있었다. 그들의 등장은 다소 정적인 흐름을 유지해가던 씬에 신선하고도 동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신풍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른바 이 황금세대의 동시다발적인 메이저 데뷔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어리고 랩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이 세대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다름아닌 그들이 가진 목표에 있다. 그들을 앞질러간 수많은 선배들처럼 랩을 엄청나게 잘하는, 히트 싱글을 만들 줄 아는 ‘랩 슈퍼스타’가 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직접 기획을 하고, 본인들만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묻어나는 작품을 만들 줄 아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인 것이다. 같은 출발선에 서 있던 그들은 각자의 길을 걸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현재, 마치 아티스트에게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높낮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이 콜(J. Cole)은 그 전도유망했던 또래들 가운데에 현재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까? 갑작스레 나왔지만, 사실은 치밀하게 준비된 정규 3집 [2014 Forest Hills Drive]가 그의 위치를 알려줄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생각해보면 제이 콜은 시작부터 또래들과는 사뭇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공하겠다는 야망과 패기는 혈기왕성했던 그들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것이었으나, 모두 본인을 중심에 놓고 외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랩으로써 풀어나갈 때 제이 콜은 내면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의 유명한 믹스테잎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정규 데뷔작인 [Cole World: Sideline Story]와 2집 [Born Sinner]는 다른 또래들의 앨범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기성찰적(introspective)이면서 의식적(conscious)인 주제들로 꽉 채워져 있다. 그는 훌륭한 스토리텔러임과 동시에 한 가지 확고한 컨셉트를 중심으로 앨범을 빌드업 해나갈 줄 아는 영리한 리리시스트다. 가벼움보다는 진중함에 조금 더 무게를 둔 주제선별부터 감각적인 샘플링 사용과 붐뱁(Boom Bap)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담백한 비트들까지. 그것들이 곧 제이 콜의 강점이며 그만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페이티빌(Fayetteville) 출신의 랩퍼는 이번 앨범을 통해, 본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강점들을 그대로 끌고 가면서 전작들에서 지적받던 약점들을 효과적으로 보완해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가 여태까지 내놓은 앨범들은 한 가지 확고한 컨셉트를 중심으로 곡마다 하위 주제들을 풀어냄으로써 앨범의 방향성에 통일성과 안정감을 더했다. 제이 콜은 이번에도 그 공식을 바탕으로 앨범을 구상했는데, 본작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컨셉트는 ‘할리우드 라이프에서 탈피하고픈 슈퍼스타의 다소 소박한 귀가’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미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성공한 후 자신을 돌아보는 형식의 곡과 앨범을 시중에 많이 풀어놓았기 때문에 이 컨셉트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은 다름 아닌 그 주제를 풀어나가는 제이 콜의 구성 능력과 연출력에 있다.
앨범에서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제외한 나머지 트랙들은 제이 콜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시간상으로 대변하는데, 이러한 전개는 마치 잘 짜인 한편의 서사물처럼 물 흐르듯 진행된다. 흔히 말하는 플롯에서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그리고 결말을 탄탄하게 구성하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데, 그는 슈퍼스타 판타지를 최대한 자제함과 동시에 오히려 스토리텔링을 통해 자신의 치부와 약점을 서슴없이 드러내면서 본인의 감정선을 청자와 직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끔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또한, ‘할리우드 라이프’와 ‘허황된 행복’을 의미하는 적절한 메타포 사용과 앨범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보컬 양식을 랩에서 노래로 무게 중심이 옮기는 등의 시도들은 앨범이 진행됨에 따라 고뇌를 겪고 성장하는 제이 콜의 심리를 아주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의 이런 노력들은 탄탄한 구성으로 이어지며, 그가 전하려고 하는 ‘절대적인 행복은 부와 명예에서 오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청자의 의식 속에 자리 잡도록 유도한다.
앨범을 듣다 보면 제이 콜이 이번 프로젝트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다는 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일단 랩적으로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정점에 있다 해도 무방하다. 특히, 고등학생 시절, 같은 반 여자 학우와 첫경험에 대해 회상하는 곡인 “Wet Dreamz”에서는 많은 남자들이 그 나이에 느꼈을 법한, 하지만 막상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들과 심리를 가감 없이 서술해내는데, 곡 후반부의 예상치 못한 반전은 긴장감 있게 흐르던 곡을 더욱 바짝 조인다. 그 이외에도 때때로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펀치라인들과 이중적 의미를 갖는 어구(double entendre)들, 예컨대 곡이 맥락에서는 성적으로 흥분된 제이 콜을 묘사하지만, 그와 동시에 미국 사회에 남아 있는 인종적인 차별을 비꼬는 역할을 띄고 있는 “No Role Modelz”에서의 기가 막힌 라인('I came fast like 911 in white neighborhoods/마치 백인동네에서 119에 전화한 것처럼 엄청 빨리 왔지')과 “Apparently”에서의 두 번째 벌스 등은 그의 펜촉이 아직도 날카롭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은 그의 랩에 비해 연구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부분은 아무래도 프로덕션 쪽이다.
그의 전작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가장 큰 불안요소는 확실한 킬링 트랙이 없었다는 점인데, 그것은 두 앨범 모두 본인이 무리하게 끌고 가려고 했던 제이 콜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루핑된 하프와 그랜드 피아노, 붐뱁 드럼과 뒤에서 잔잔하게, 혹은 아예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코러스와 현악기, 그리고 샘플링을 이용한 다소 느린 템포의 곡은 제이 콜 프로덕션의 시그니쳐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물론, 2집에서는 다채로운 사운드를 내려고 노력한 티가 나긴 했지만, 여전히 심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가 비트메이커로서, 그리고 한 앨범을 기획하는 프로듀서로써 한 단계 성장했음을 확실하게 말해준다.
제이 콜은 이번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곡을 많이 수록했지만, 다른 프로듀서들과 협업도 마다치 않았다. 앨범 초반부에 자리 잡은 “03’ Adolescence”와 “A Tale of 2 Citiez”, 그리고 “Fire Squad” 같은 경우 윌리 비(Willie B)와 바이널즈(Vinlyz)와 함께 작업한 곡들이며, 실제로 이 곡들은 묵직하지만, 아티스트를 압도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제이 콜이 채를 잡고 뒤흔들 수 있도록 주도권을 넘겨주는 관대함을 보인다. 그렇기에 그가 앨범 앞부분에서 묘사하는 대담하고도 때로는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분출하며 공격성을 폭발시키는 모습들, 예를 들면 사춘기 시절 마약을 거래하며 겪은 방황, 뉴욕으로 이사 오면서 경험한 혼돈, 그리고 ‘에미넴(Eminem) 디스’로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은 블랙 문화 내에 침투된 백인 우월적인 의식을 비판하며 자신이 최고라고 울부짖는 자신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제이 콜의 프로덕션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플롯에서의 위기와 절정을 묘사하는 중·후반부의 트랙들, 이를테면 “G.O.M.D.”와 “No Role Modelz”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슈퍼스타의 생활에 빠진 ‘할리우드 콜’과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저메인 콜’의 본격적인 내적 갈등을 묘사한 “G.O.M.D.”에서의 기획력은 아주 재미있다. 이 곡은 808드럼 위에 미니멀한 신시사이저를 얹고 감각적으로 잘 쪼개진 하이햇와 퍼커션이 매우 인상적인데, 후렴은 2000년대 초반, 클럽을 장악했던 릴 존(Lil Jon)의 히트 싱글인 “Get Low”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으며, 끊임없이 변화를 보이는 그의 심리를 잘 묘사하는 각 벌스들은 잘 짜인 기승전결을 보여준다. 포닉스 비츠(Phonix Beats)와 함께 작업한 곡인 “No Role Modelz”는 2집에 수록된 “She Knows”의 연장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트랙인데, 자신이 여태껏 경험한 여자들과 가벼운 만남에 대한 반성, 그리고 가식적인 모습만이 전부인 LA의 클럽 죽순이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곡에서 재미있는 지점은 전 대통령인 조지 부시(George W. Bush)가 2002년 한 학교에서 연설해 화제가 되었던 'Fool Me Once' 어록을 직접 샘플링으로 사용한 중반부인데, 이후 브릿지까지 절묘하게 이어지는 라인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렇듯, 제이 콜은 기존의 안정성 있지만, 단조롭게 진행되던 곡의 흐름 중간마다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화를 주며, 자칫하면 지구력을 잃을 수도 있을 법한 부분들을 센스 있게 피해 나간다.
여전히 전체 프로듀싱 면에서 좀 더 밀도 있고 타이트하게 이끌고 가지 못했다는 점이 클래식의 단계에 진입하는 발목을 잡지만, [2014 Forest Hills Drive]는 믹스테잎들을 포함한 여태까지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이번 앨범에서는 전작들에서 느껴졌던 부담감과 리리시스트로서 받는 강박증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조급하지도 않고 필요 이상의 힘을 쓰지도 않는다. 그저 슈퍼스타가 아닌 30대로 넘어가는 평범한 남자의 자연스럽고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인지 다사다난했던 그의 이야기의 결말, 즉 유년시절의 추억이 깃든 'Forest Hills Drive'에 위치한 집을 압류 당한 지 약 10년 만에 다시 구입하며, ‘진짜 행복’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부분에서는 말로는 형용 불가한 진한 감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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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izzy (2014-12-20 14:08:00, 211.176.67.***)
- 미국 내에서 제이콜의 입지도와 인기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게 한 앨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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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zualiza (2014-12-19 18:41:42, 122.36.50.**)
- 랩과 프로듀싱을 양분하여 각기 언급한 평가들에 공감합니다
랩퍼로서의 콜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진정성 넘치는 스토리텔러인것 같습니다
진심이 통한다는 것을 콜의 앨범에 대한 지지를 보며 다시금 느끼게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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