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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Silk Rhodes - Silk Rhodes
    rhythmer | 2015-01-14 | 1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Silk Rhodes
    Album: Silk Rhodes
    Released: 2014-12-02
    Rating:
    Reviewer: 지준규









    인디 레이블 스톤즈 스로우(Stones Throw Records)가 설립된 지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간다. 일단 이곳에서 음반이 나오면 무조건 소장해야 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돌 정도로 명실상부한 위상을 갖고 있는 스톤즈 스로우는 주류와 타협보다는 아티스트 본연의 개성과 색깔을 최대한 존중하는 노선을 추구하며 현재까지도 장르와 스타일을 불문하고 많은 양질의 앨범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매드립(Madlib)이나 제이 딜라(J Dilla) 등의 힙합 스타들이 레이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메이어 호쏜(Mayer Hawthrone)이나 알로 블랙(Aloe Blacc)을 비롯한 여러 알앤비, 소울 뮤지션들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의 참신한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그 명성을 유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왔다. 지난해 스톤즈 스로우와 계약을 마친 볼티모어 출신의 알앤비 듀오 실크 로즈(Silk Rhodes)도 얼마 전 발매한 첫 정규작을 통해 레이블 역사에 또 하나의 굵은 획을 긋기에 충분해보인다.

     

    보컬을 맡은 사샤 윈(Sasha Winn)과 프로듀싱을 총괄하는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로 이루어진 이 듀오가 지향하는 음악적 방향성은 그룹명에서부터 명확히 나타난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상징하는 실크(Silk) 70년대 소울과 펑크(Funk)에 세련미를 부여했던 전자 피아노인 펜더 로즈(Fender Rhodes)를 조합해 만들어진 이름 속에는 과거 소울에 대한 짙은 그리움과 당시의 음악을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새롭게 재해석하고자 한 소망이 그대로 집약되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는 이번 앨범 전반에 걸쳐 극명하게 표출되는데, 모두 '70, 80년대 소울과 펑크 음악에 대한 오마주로 귀결되긴 하나 기존의 전통적인 리바이벌과는 다소 다른 노선을 취했음을 엿볼 수 있다.

     

    실크 로즈의 음악적 특징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미니멀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한 기교나 장식보다는 노래를 통한 감정의 전달에 더 충실하고자 한 이들은 불필요한 요소들을 극도로 줄이고 기본적인 사운드만을 활용하는 식으로 공백을 크게 넓힘으로써 곡이 담고 있는 정서의 여운을 보다 길게 가져간다. 그리고 사샤 윈의 서정적이고 매혹적인 음색의 보컬이 특유의 그윽한 무드와 절묘하게 버무려지며, 여운을 더한다. 사샤 윈의 보컬은 본작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이기도 한데, 다소 무심한 듯 들리지만, 각 노래의 느낌이나 분위기에 맞춰 목소리 톤을 세밀히 조절해가며 아주 미묘한 심정의 변화나 동요까지도 무리 없이 표현해내는 데에서 내내 빛을 발한다. 그의 정신적 혼란과 두려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진솔한 노랫말 역시 몰입과 공감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며 감상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단순한 펑크 리듬만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포문을 여는 첫 곡 “Intro”가 지나면 앨범의 첫 싱글이자 단연 백미라 할 수 있는 트랙인 “Pains”가 이어진다. 이 곡에선 비교적 느리지만 리듬감 넘치는 드럼 비트와 꿈결 같은 오르간 멜로디, 그리고 선명하게 울리는 날 선 현악음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아련하게 흘러간다. 거기에 농밀한 기타 연주가 적재적소에 등장하여 감흥을 더욱 고조시키고 결정적으로 달콤하면서도 애절한 사샤 윈의 보컬이 그 위에 살포시 얹어지며 곡의 감동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따라야만 하는 인생의 진리들이 우리를 얼마나 힘겹게 하고 압박하는지에 대해 이미 체념한 듯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호소력을 가지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바로 이어지는 경쾌한 곡 “Face 2 Face”에선 마이클 콜린스의 뛰어난 프로듀싱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곡에서 그는 되도록 간결한 음색들만을 사용하고, 그것들을 매우 단순하게 조합함으로써 기름기를 완벽히 거둬낸 깔끔한 펑크 사운드를 들려주는 데, 이는 별 다른 후렴구나 변주 없이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흐르며 귀를 사로잡는다. 앨범의 중반부에 다다르면 실크 로즈의 또 다른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트랙 “Realtime”이 등장한다. 피아노 샘플과 단정한 베이스 라인 등, 다양한 소스들이 유기적으로 배합된 리듬은 탄력이 넘치고 그 위에서 일정하게 매끈한 톤을 유지하며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흥을 이끌어내기까지 하는 사샤 윈의 감각적인 보컬은 곡에 따스함을 더하는 동시에 청량감까지 불어 넣는다.        

     

    이 외에 드럼 사운드의 뚜렷한 강조 없이도 긴장감을 영리하게 유지하며, 소박한 발라드의 묘미를 극대화한 “Barely New” “This Painted World”, 단출한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게 만드는 사샤 윈의 간드러진 보이스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Hold Me Down”, 일렉트로닉 비트에서 농염한 알앤비 사운드로 급격한 전환이 신선한 전율을 안기는 “Personal Use” 등의 노래들 역시 귀를 잡아끈다.

     

    다만, 30분 내외라는 짧은 러닝 타임 안에서 곡들의 석연치 않은 배치는 맹점이다. 템포와 분위기의 급격한 전환을 고려하지 않은 듯 보이는 상황에서 짧게 치고 빠지는 트랙들까지 적잖다 보니 지속적인 감상이 방해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옛 음악에 대한 진심 어린 경외와 존중을 음악으로 훌륭하게 풀어냈고, 과거의 것들을 모티프로 삼아 단순한 재현을 넘어 자기 색을 입히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현대 소울과 펑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은 앨범의 가치를 더욱 높게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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