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Fabolous - The Young OG Project
- rhythmer | 2015-01-18 | 1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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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Fabolous
Album: The Young OG Project
Released: 2014-12-25
Rating:Rating:
Reviewer: 조성민
2000년대 후반, 패볼러스(Fabolous)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두 번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첫 번째는 2009년 [Loso’s Way]와 2010년 [There Is No Competition 2: The Grieving Music]을 발표했을 때인데, 그가 거둔 어느 정도의 상업적인 성공과는 반대로, 음악적으로는 아주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으면서 ‘능력있는 커머셜 랩퍼’로서 의미지가 공중분해 되어버렸다. 그렇게 추락을 거듭하던 그에게 다시 한 번 반등할 기초를 설립할 수 있는 기회가 약 1년 만에 찾아온다. 그의 다섯 번째 믹스테잎인 [S.O.U.L. Tape] 발표가 바로 두 번째 전환점인데, 정규 앨범에서는 결핍되어 있던 그의 강점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으며,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소울 샘플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비트들이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1년 전 그가 받던 ‘퇴물이 되어가는 랩퍼’라는 평가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 이후 정규 앨범 작업을 끊고, 매년 크리스마스 마다 [S.O.U.L. Tape] 시리즈를 발표하며 연이어 좋은 평가를 이끌어낸 그가 지난 달 25일에는 오히려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여섯 번째 정규 앨범 [The Young OG Project]을 가지고 돌아왔다. 하지만 이런 기습적인 움직임이야말로 정규 앨범에서의 실패를 만회해야 할 그에게는 꼭 필요로 했던 대담함이 아닐까?90년대 힙합의 영향을 많이 받은 패볼러스가 그때의 영광스러운 사운드를 재해석하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The Young OG Project]에서 그가 설정한 프로젝트의 음악적 목표는 대략 두 가지 방향으로 설정되었다. 90년대의 다채로운 사운드를 구현하는 것과 뉴욕을 호령하던 OG들의 레퍼런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일단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트랙 “Lituation”에서는 로린 힐(Lauryn Hill)의 명반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에 수록된 “Lost Ones”에서 그녀의 첫 구절을 샘플링함과 동시에 아주 차진 킥을 바탕으로 비트에 날카로운 느낌을 더했고, 패볼러스는 두 번째 벌스 후반부에 브루클린(Brooklyn) 출신 노토리어스 비아이쥐(Notorious B.I.G.)와 그의 부인이었던 페이스 에반스(Faith Evans)를 인용하며 멋진 이중적 라인(I do it big and light skin my new faith/난 크게 해먹고 백인 여자를 데려가지)을 만들어낸다. “All Good”의 인트로에서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쥐의 명곡 “Juicy”를 샘플링 했으며, 첫 벌스 도입부에서는 제이 지(Jay Z)의 곡 “Song Cry”의 플로우를 빌려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여자가 ‘좋은’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돈과 성공 같은 ‘좋은’ 것들 뒤에 따르는 시련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앨범의 인트로 트랙으로도 잘 어울렸을 법한 “Ball Drop”은 실제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1989년에서 1990년으로 넘어가는 신년 현장중계방송을 샘플링했는데, 90년대에 들어서는 설렘과 ‘새해가 됐으니 여자친구를 포함한 옛것들을 전부 버리고 새로 시작하자.’라고 랩을 하는 브룩클린 출신 랩퍼의 패기를 느껴볼 수 있다. 이외에도 “Bish Bounce”에서는 몹 딥(Mobb Deep)의 전성기적 앨범에서 들어 볼 법한 황량한 사운드를 구현하기도 하는데, 이렇듯 패볼러스는 앨범 전반에 걸쳐서 90년대 사운드뿐만 아니라 샘플이든 펀치라인을 통해서든, 수많은 90년대 레퍼런스를 곡마다 끼워 넣으며 향수를 자극한다.
특히, 90년대 레퍼런스들을 그대로 복제해오기만 하는 안일하고도 시대착오적인 실수를 범하지 않고, 오히려 한 발짝 더 나아가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사운드와 레퍼런스들을 적극 사용하기도 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게스트들인 리치 호미 콴(Rich Homie Quan),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 프렌치 몬타나(French Montana), 케빈 하트(Kevin Hart)가 바로 그 증거인데,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적이 없다. 이런 라인업이 꾸려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패볼러스의 의도된 기획이라 볼 수 있는데, 90년대 샘플과 레퍼런스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되 기본적으로 사운드는 세련되게 끌고 가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크리스 브라운이 피처링한 “She Wildin’”은 나스(Nas)의 컴필레이션 앨범 [QB’s Finest]에 수록된 “Oochie Wally”를 샘플링하여 클럽 뱅어로서 매력을 더했고, 리치 호미 콴이 후렴구를 맡은 “We Good”은 트랩 비트에서 많이 쓰이는 일명 렉스 루거(Lex Luger) 하이햇과 몽환적인 느낌의 신시사이저가 인상적인데, 패볼러스는 오토튠 랩을 선보이며 곡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또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봐도 무방한 케빈 하트가 참여한 “Cinnamon Apple”도 주목할 곡이다. 몇 달 전 유투브에 업로드 된 화제의 (여자친구에게 차인 남자의 절규가 담긴)영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패볼러스는 뉴욕 출신의 전설적인 그룹인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의 데뷔작인 [People’s Instinctive Travels and the Paths of Rhythm]에 수록된 “Bonita Applebum”의 플로우를 토대로 후렴구를 만들었으며, 본인이 처음으로 여자한테 상처 받은 경험을 스토리텔링으로 털어놓는다. 애초에 오리지널리티를 내세우기보다는 유행하는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앨범을 만드는 능력이 출중했던 패볼러스는 자신이 잘하는 방면에 더욱 집중하는 한편으로 눈에 띄는 후배들과 협업을 통해 현재 시장에서 친숙한 사운드에 90년대 느낌을 가미하는 노력을 했고, 이는 나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사실 패볼러스는 한계가 명확한 랩퍼다. 그는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를 탑재한 커머셜 랩퍼로서 클러치 능력이 다분한 클럽뱅어를 앞세우고 트렌드를 적절하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이어나갔지만, 앨범마다 트렌드를 무리하게 쫓아가다 보니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는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버렸고, 아티스트로서 이미지는 어느 순간 고착화되어 버렸다. 더불어 선천적으로 축복받은 몇몇 MC들과는 달리 카리스마 있는 발성이나 목소리를 가지지 못했으며, 랩으로 풀어나가는 주제의 스펙트럼도 넓지 못한 편이다. 이토록 수많은 한계를 가지고도 그가 평균 이상의 랩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재치있는 펀치라인과 비유법, 그리고 체계적으로 계산된 라이밍 스킬 덕이다. 이 앨범에서도 대부분 곡에서 이러한 그의 장점이 빛을 발한다. 특히, Nas의 명곡 “Represent”를 샘플링하여 감각적으로 재구성한 “Gone For the Winter”에서는 그의 이름값에 걸맞은 리리시스트로서 능력을 선보이며 빈틈없는 랩을 자랑하는데, 곡 후반부의 벌스는 매우 강력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패볼러스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한 곡 내에서의 꾸준하지 못한 퍼포먼스, 즉 고질적인 기복이 그대로 드러나고, 반복적인 라이밍을 통해 플로우를 빌드업 해야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때때로 유치하거나 선을 넘는 비유를 선보이기도 한다. 마치 홈런으로도 곧 잘 연결시킬 만큼의 장타력이 있지만, 동시에 삼진도 많이 당하는 전형적인 파워히터가 연상된다. 앨범의 또 다른 아쉬운 부분은 킬링 트랙의 부재다. 모든 곡은 최소한 평타를 쳐줄 만큼의 준수한 퀄리티를 자랑하지만, 청자의 귀를 사로잡고 중심을 잡아주는 트랙이 없기 때문에 앨범에 긴장감을 부여하진 못했다.
[The Young OG Project]에서도 패볼러스의 약점은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의 전작들과 같은 실패노선을 걷지 않은 이유는 이 앨범이 보유한 강점들이 앞서 거론한 약점들을 충분히 커버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강한 라인들을 뱉어내고 있고, 90년대 특유의 감성과 재미를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훌륭하게 앨범에 녹여냈다. 그렇기에 90년대 후반 씬에 데뷔한 이래 당대의 OG들을 동경해온 패볼러스 자신을 칭하는 말일지도 모르는 ‘Young OG’라는 타이틀이 앨범의 기획과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지 않나 싶다. 이로써 다음 정규작으로 알려진 [Loso’s Way 2]에 대한 기대감을 더 가져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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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sha (2015-01-19 02:23:29, 58.234.64.**)
- 역시.. 리드머는 조성민씨의 리뷰가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취향에 치우치지 않는
안정감이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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