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Jazmine Sullivan – Reality Show
- rhythmer | 2015-02-08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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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Jazmine Sullivan
Album: Reality Show
Released: 2015-01-13
Rating:
Reviewer: 강일권
여전히 알앤비 음악의 가사에서 주를 이루는 건 남녀의 사랑과 섹스지만, 때론 랩 음악 못지 않게 다양한 주제가 담기기도 한다. 이는 주로 힙합 역시 중요한 음악적 뿌리로 삼는 싱어송라이터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데, 최근에는 랩퍼들처럼 속어와 은어를 곁들이며 개인의 삶, 혹은 관점을 녹여낸 결과물도 적잖게 등장했다. 트레이 송즈(Trey Songz), 어거스트 알시나(Agust Alsina), 맥 와일즈(Mack Wilds), 케이 미셸(K. Michelle) 등은 그 대표적인 아티스트들. 그리고 지난 2008년, 첫 정규작 [Fearless]로 호평 속에 데뷔한 재즈민 설리번(Jazmine Sullivan)도 그러한 뮤지션 중 한 명이다.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보컬과 멜로디 메이킹은 물론, 동세대의 삶과 사랑을 꿰뚫는 작사력까지 장착했던 그녀의 등장은 로린 힐(Lauryn Hill)을 필두로 한 보컬 리리시스트(Lyricist)의 계보를 잇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당시는 남자 뮤지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신예 여성 뮤지션의 활약이 미비했던 상황이라 설리번의 성공이 갖는 의미가 더 특별했다. 하지만 역시 탄탄한 음악을 담았던 두 번째 앨범 [Love Me Back] 이후, 그녀는 더 이상 음악 작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결국, 돌아온다는 기약 없이 음악계를 떠나버린다. 그로부터 무려 5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다. 다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살아난 듯, 설리번은 세 번째 정규작을 만들었고, 자신이 연출한 리얼리티 쇼로 우릴 초대한다.
본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재즈민 설리번이 구축한 캐릭터와 이를 바탕으로 뿌려놓은 생생한 내러티브다. 그녀는 이번에도 사랑처럼 보편적인 주제부터 자전적인 이야기까지 능숙하게 담아냈는데, 그 속에서 취하는 태도와 주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롭다. "#HoodLove"와 “Brand New”는 각각 이를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두 곡이라 할 수 있다. "#HoodLove"에서 설리번은 육체적 섹시미, 혹은 가녀린 이미지를 부각하며, ‘당신의 여자’임을 피력하는 기존의 흔한 여성 캐릭터에서 벗어나 ‘내 남자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는 여자’로 분한다. 남자가 어디를 가자고 하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르며,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총을 챙겨 기꺼이 백업하는 그런 여자. 캐릭터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를 통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맘이 드는 게 바로 사랑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게 백미다. 그런가하면, “Brand New”에서는 랩퍼 지망생과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남자가 레이블과 계약하자 버림받은 여인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가는 가운데, 뼈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주제인 메이저 레이블의 냉정함까지 담아내는 치밀한 구성력이 돋보인다. 이 외에도 꾸며진 외모 뒤에 감춰진 오늘날 여자들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린 “Mascara”,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된 이들과 혼자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길 담은 " Silver Lining" 등도 [Reality Show]가 가진 내러티브의 힘을 보여주는 곡들이다.
이야기의 힘이 아무리 좋다해도 정작 보컬과 프로덕션이 받쳐주지 못했다면, 별 의미 없었겠지만, 이 부분에서도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특히, 키 웨인(Key Wane), 척 하모니(Chuck Harmony), 디제이 다히(DJ Dahi)의 음악들이 설리번과 가장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잘게 쪼개진 스네어 위로 키웨인 특유의 은은한 패드(Pad/*필자 주: 신시사이저의 음색 이름의 하나) 사운드가 감싸는 “Mascara”를 시작으로 트렌디한 힙합 비트 위에 다채로운 멜로디 라인을 겹겹이 쌓은 "Brand New", 퍼커션을 중심으로 악기 소스들이 어우러지며, 가사에 꼭 맞는 누아르적 분위기가 연출된 "#HoodLove", 신스와 사운드 운용에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사이의 알앤비 흥취가 느껴지는 “Let It Burn”, 블루지하고 예스러운 기타 연주에 재즈민 설리번의 훌륭한 보컬이 봉인 해제된 “Forever Don't Last”, 마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의 곡을 듣는듯한 "Stupid Girl"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상당한 희열을 안긴다. 다만, 바로 이어지는 포스트 디스코 트랙 “Stanley”와 얼터너티브 록에 기댄 마지막 곡 “If you Dare”가 좋았던 흐름과 무드를 깨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재즈민 설리번의 [Reality Show]는 앨범의 주인공이 싱어송라이터로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프로덕션까지 제대로 제어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양질의 결과물로써 좋은 예라 할만하다. 그야말로 공백이 무색할 만큼 또 한 번 높은 몰입도를 선사했다. 그녀의 귀환이 더욱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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