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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Akua Naru - The Miner's Canary
    rhythmer | 2015-03-22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Akua Naru
    Album: The Miner's Canary
    Released: 2015-02-20
    Rating: 
    Reviewer: 강일권









    여성 랩퍼의 부진이 지속되던 2011, 귀를 잡아끈 한 곡이 있었다. 존 메이어(John Mayer) "I Don't Trust Myself (With Loving You)"를 샘플링한 나른한 그루브 위로 여성 힙합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랩퍼들의 이름이 나열되며 라임을 형성하던 그 곡의 제목은 "The World Is Listening", 나긋나긋하지만, 타이트한 플로우를 뱉어내던 랩퍼의 이름은 아쿠아 나루(Akua Naru)였다. 그녀는 이 곡에서 선배 여성 랩퍼들을 향한 헌사와 여성 힙합 씬이 부활하길 바라는 마음을 동시에 담아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어 발표된 데뷔작 [The Journey Aflame]은 강렬하진 않지만, 여성 힙합 침체기 속에 만나는 단비 같은 앨범이었다. 이후, 나루는 자신의 라이브 밴드 딕플로 밴드(DIGFLO Band)와 함께 활발한 공연 활동을 벌였는데, 여전히 그 재능에 비해 인지도가 따라붙질 못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이젠 아쿠아 나루라는 랩퍼에게 확실하게 시선을 고정해야 할 듯하다. 4년 만에 발표된 이번 새 앨범은 그만큼 경탄을 자아낸다.

     

    전설적인 블랙 팬더당(Black Panther Party)의 공동 창설자이자 사회 운동가였던 휴이 뉴튼(Huey P. Newto)의 상징적인 사진을 재현한 커버 아트워크는 본작이 매우 정치적인 힙합 앨범임을 드러낸다. 휴이 뉴튼에게 소총이 무기였듯이 아쿠아 나루에겐 마이크가 무기다. 특히, 영국에서 광산업이 성하던 시절, 광부들이 일종의 조기 경보시스템으로 카나리아를 이용했던 일화에서 유래한 앨범의 타이틀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주제를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다. 당시 카나리아는 광부들의 필수 사육조였다고 한다. 밝은 공간과 쾌적한 공기에서 사육되는 카나리아가 깊은 갱도 안에서 조금이라도 유독가스가 퍼지면,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떨어지는 걸 보고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후, 보이지 않는 위험신호를 광부의 카나리아(Miner's Canary)’라고 빗대어 표현해왔다. 아쿠아 나루는 이처럼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더불어 자기희생적인 카나리아를 흑인 사회와 흑인 여성을 상징하는 메타포로 내세워 이와 얽힌 여러 쟁점과 생각할 거리를 굉장히 문학적으로 풀어낸다.

     

    흑인들이 거쳐온 억압, 투쟁의 역사와 여전히 잔존하는 인종차별을 얘기하며, 미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에 도사린 문제점을 냉철하게 꿰뚫고, 흑인들이 이룩한 업적과 흑인 여성의 강인함을 역설하며, 자긍심을 고취하는가 하면, 스스로 비하하거나 여자를 차별하는 흑인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어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 그 안에서 꽃피운 힙합을 향해 애정을 표하고 힙합이 가진 힘을 설파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눈에 띄는 건 앨범 내내 언제나 흑인 여성으로서 굳건히 서 있는 그녀의 태도다. 나루는 흑인사회에서조차 억압받았던 여성의 아픔을 호소하거나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 위치임을 애써 강조하는 것에서 벗어나 여성 인권운동가인 다이앤 내쉬(Diane Nash)라든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같은 위대한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녹이고 경의를 표하며, 흑인 여성의 아름다움과 존재 가치를 부각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돌려치기 방식은 앨범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또한, 문제의식을 지닌 요즘 랩퍼들의 곡이 주로 개인과 주변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흑인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는 것과 달리 나루의 곡들은 블랙 커뮤니티 전체의 문제에서 여성의 문제로 좁혀 들어온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무엇보다 본작이 대단한 건 그녀의 뚜렷한 주관과 사유로부터 나온 이렇게 넓고 심오한 주제들을 표면화한 랩과 프로덕션 역시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음악적인 부분까지 진두진휘한 나루는 이번에도 딕플로 밴드를 이끌고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외부 연주자들을 대거 초빙하여 프로덕션을 꾸렸는데, 전작보다 몇 걸음은 더 나아간 연주와 구성을 통해 힙합, 소울, 재즈의 완벽한 합을 이뤄냈다. 흡사 루츠(The Roots), 에리카 바두(Erykah Badu), 로린 힐(Lauryn Hill)의 음악이 가장 이상적으로 버무려진 형태와도 같다. 게다가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곡들은 어느 하나 쉽게 넘길 수 없을 만큼 전부 소울풀하고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코디 체스넛(Cody ChesnuTT), 로버트 아르엘 럼지(Robert Ahrel Lumzy), 조지아 앤 멀드로우(Georgia Anne Muldow), 크리스찬 스콧(Christian Scott) 등등, 개성 있는 음악 세계와 걸출한 재능을 지닌 뮤지션들의 기용도 묘수였다. 아쿠아 나루의 중요한 음악적 뿌리인 ‘90년대 붐뱁 힙합(Boom Bap) 스타일에 기반을 둔 “Heard”“Boom Bap Back”, 아스라이 내려앉은 오케스트라 현악 사운드와 멜로디가 여운을 남기는 “Canary Dreams”, 후반부의 블루지하고 비옥한 연주가 압권인 “(Black &) Blues People”“Mr. Brownskin”, 가만히 굴러 떨어지다가 이내 리듬 파트 사이를 자유분방하게 휘젓는 건반이 인상적인 “Toni Morrison” 등은 그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겠다. 이 엄청난 기운에 방점을 찍는 건 아쿠아 나루의 랩핑이다. 바하마디아(Bahamadia)처럼 낮고 타이트하게 읊조리다가도 어느 순간 여자 척 디(Chuck D)가 된 것처럼 근엄하게, 하지만 그보다 훨씬 유려하게 내뱉는데, 그 주제와 비트에 따라 강약을 조절하며 곡의 무드를 완전하게 지배한다. 그야말로 가사, 랩핑, 프로덕션, 세 요소가 빈틈없이 꽉 맞물려있다.

     

    청자에게 결코 쉬운 접근을 허락하는 앨범은 아니다. 시인이기도 한 그녀의 어휘력과 은유의 수준이 워낙 풍부하고 심오하다보니 어지간해서는 세세한 표현이나 메타포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을 감수하고서라도 들어봐야 할 만큼 본작의 랩과 음악이 선사하는 울림은 상당히 크다. 아쿠아 나루가 멘토로 삼는 인물 중 한 명인 토니 모리슨이 문학 작품은 정치적이어야 해요.’라고 말했듯이 그녀 역시 정치적인 음악을 표방한 [The Miner's Canary]는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여성 랩퍼의 명작이자 힙합으로 구현한 한 편의 훌륭한 흑인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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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asym (2015-05-28 21:53:38, 122.128.177.**)
      2. 정말 좋네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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