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Jay Rock - 90059
- rhythmer | 2015-10-12 | 1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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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Jay Rock
Album: 90059
Released: 2015-09-11
Rating:
Reviewer: 강일권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랩의 성지로 알려진 건 ‘컴튼(Compton)’이지만, 그 발상지는 컴튼에서 북으로 좀 더 위쪽에 있는 ‘와츠(Watts)’다. 1920년대 최하층의 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며, 악명 높은 갱 집단 ‘크립스(Crips)’의 기원이 되는 곳. 여전히 LA에서도 가장 삭막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제이 락(Jay Rock)의 두 번째 앨범 [90059]에는 바로 그가 나고 자란 이 공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스쿨보이 큐(Schoolboy Q)와 함께 블랙 히피(Black Hippy) 내에서 전통적인 서부 갱스터리즘(gangsterism)에 기반을 둔 랩퍼답게 제이 락은 섹스·마약 관련 범죄로 점철된 와츠의 거리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거창한 주제를 담거나 대작 구성을 지향하지 않고 힘을 뺀 채 여유롭게 만든 느낌이다. 주목할 부분은 그가 고향을 비트 위에 옮기는 방식이다.
많은 갱스터 랩이 후드(Hood)의 실상을 담는 리얼리티와 후드에 대한 사랑을 담는 판타지의 결합으로 완성되곤 하지만, 제이 락은 어느 쪽에서도 노골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대부분 덤덤한 태도로 일관하며 도시의 거친 단면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것이 와츠의 역사 및 현실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면서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고군분투하며 성공한 제이 락의 극적인 캐릭터가 구축됐다.그런 가운데, 수록곡 중 가장 시각화가 도드라지고 역동적인 구조의 가사라 할만한 타이틀곡 “90059”이 중앙에서 뿜는 강렬함은 더해졌다. 더불어 지나온 과거와 현재의 삶을 돌아보며 내면의 고달픔을 토로하는 제이 락과 랩 게임의 대선배로서 따뜻한 격려와 무게 있는 충고를 건네는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의 콤비 플레이가 여운을 남기는 “Fly on the Wall“,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Good Kid, M.A.A.D City]에서 함께 물질에 대한 욕망과 허상을 노래한 “Money Trees”의 속편 격인 "Money Trees Deuce" 등이 귀를 사로잡는다.
프로덕션도 준수하다. 전작 [Follow Me Home]의 분위기를 이어받는 팽팽한 기운의 "Necessary"와 “90059”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침잠된 사운드의 비트가 주도하는데, 묵직하게 내려앉는 동시에 유유히 흘러가는 제이 락의 랩핑과 잘 어우러졌다. 특히, 808드럼과 레이드-백(Laid-Back) 그루브의 절묘한 조화를 들려주는 “Gumbo”, 변주와 공간감 연출이 탁월한 “Wanna Ride”, 곡을 주도하는 몽환적인 보컬 라인 뒤로 각종 소스가 인상적으로 치고 빠지고 맞물리는 "Telegram (Going Krazy)" 등등, 본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책임진 제이 엘비에스(J. LBS.)의 곡들이 일품이다.
뛰어난 랩 실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제이 락은 블랙 히피 내에서 가장 먼저 주목받았던 랩퍼다. 그러나 정규 데뷔작 [Follow Me Home]이 평범한 프로덕션 탓에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면서 각자 역사에 남을 걸작, 혹은 뚜렷한 개성이 담긴 앨범을 내놓은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90059]은 다시금 많은 이가 그의 존재를 각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만하다. 그야말로 ‘단단하다.’라는 표현이 꼭 어울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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