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Musiq Soulchild - Life on Earth
- rhythmer | 2016-04-21 | 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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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Musiq Soulchild
Album: Life on Earth
Released: 2016-04-15
Rating:
Reviewer: 강일권
‘90년대 중반, 디엔젤로(D’Angelo), 맥스웰(Maxwell),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등장을 기점으로 일어난 네오 소울 열풍은 실로 대단했다. 전통적인 소울 음악 속에 펑크(Funk), 힙합, 재즈, 아프리칸 음악 등이 절묘하게 뒤섞여 만들어진 이 장르는 매우 세련되었으면서도 한동안 주류에서 잊힌 옛 소울의 흥취까지 품은, 말 그대로 새로운 소울 음악이었다. 필라델피아 출신의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는 따지자면, 2000년대 등장한 첫 번째 네오 소울 스타다. 2000년, 데프 잼(Def Jam)과 계약하고 발표한 데뷔 앨범 [Aijuswanaseing]이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좋은 성과를 올리면서 커리어는 쭉쭉 뻗어가기 시작했고, 뮤지크의 소울풀한 음색과 그루브 넘치는 보컬 퍼포먼스는 많은 이를 단숨에 사로잡았다.그만큼 뮤지크의 음악 세계를 대표하고, 여전히 많은 팬들이 그리워하는 스타일은 아무래도 [Aijuswanaseing]이다. 특히, 이 앨범은 그가 밝힌 음악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3요소인 소울, 힙합, 제3의 음악(재즈, 가스펠, 블루스, 클래식, 라틴, 일렉트로닉 등등) 등이 기가막히게 맞물려 완성된 결과물이었다. 비트 박스 도입부에 이어 팻 마르티노(Pat Martino)의 재즈 곡 “Sunny”를 샘플링하여 주조한 힙합 비트 위로 리드미컬한 보컬 플로우가 작렬하는 앨범의 첫 싱글 “Just Friends (Sunny)” 역시 그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이다.
그러나 4집 [Luvanmusiq]까지 비교적 순탄하던 그의 커리어는 5집 [OnMyRadio],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앨범의 리드 싱글이었던 "Radio"가 공개되면서 위협받기 시작했다. 아무리 당대의 트렌드라지만, 뮤지크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서던 힙합 클럽튠이 그의 음악 세계로 들어왔고, 이는 침범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한 곡이 남긴 잔상은 비록, 전작들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준수한 편이었던 앨범의 완성도마저 먹어버렸다. 이후, 3년만에 발표한 새 앨범 [MusiqInTheMagiq]에서도 뮤지크의 방황은 계속되어 보였다. 원하는대로 자유로운 시도를 하는 한편으로, 옛 스타일을 원하는 팬들을 의식한 구성 또한, 눈에 띄었으나 이번에도 완성도와 별개로 그러한 그리움을 상쇄시킬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갔다.
레게와 소울의 결합을 시도한 실리나 존슨(Syleena Johnson)과 듀엣 앨범을 제외하면, 무려 5년만에 발표한 새 솔로작 [Life on Earth]에서 뮤지크는 드디어 방황(?)을 멈추고 초창기의 소울차일드로 돌아갔다. 인디로 정체성을 새로이 하고 내놓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애간장을 태우듯 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흐르는 일렉트릭 건반과 전반적으로 재지하고 느긋한 기운이 어우러져 초기 네오 소울의 향을 풍기는 첫 싱글 “I Do”는 물론, ‘90년대 힙합 소울 프로덕션을 고스란히 재현한 “Heart Away”, 나긋나긋하고 펑키한 그루브가 살아있는 “Changed My Mind”, 기존의 “Just Friends (Sunny)”와 “Stoplayin”처럼 탄탄한 그루브의 비트와 그 위를 여유롭게 가로질러 가는 보컬의 조화가 돋보이는 “Who Really Loves You”, “Who’s To Say” 등의 곡은 이를 증명하는 예다.
무엇보다 본작이 흥미로운 건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90년대 초·중반 스타일의 힙합 비트를 바탕으로 톤에서 변화를 준 보컬이 얹혀 강렬하게 진행되다가 2/3를 기점으로 808드럼의 트랩 비트와 그윽한 신스가 어우러지며, 기가막힌 무드의 반전이 이루어지는 “Wait A Minute”, 적절하게 비트가 치고 빠지는 가운데 재지한 네오 소울 사운드가 이어지다가 흡사 드럼 앤 베이스를 방불케 하는 역동적인 리듬 파트가 막판에 불처럼 솟았다 사라지는 “Far Gone” 등은 언제나 프로듀서들과 함께 음악 전반을 책임져온 뮤지크의 감각적인 시도를 엿볼 수 있는 곡들이다. 그리고 이 같은 곡들이 이질감 없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구성의 미학이 더욱 돋보인다. 그런가 하면, 피아노가 주도하는 소울 발라드 “The Girl”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있는 듯 오묘한 무드를 연출하는 “Life On Earth”에선 소울풀하고 달콤한 뮤지크의 보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매번 이해할 순 없고, 좋아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당신 없이 살 수 없다는 건 안다’고 고백하는 “I Do”를 비롯하여 연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현실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가사 또한, 적잖은 여운을 남긴다.
사실 뮤지크는 앨범을 거듭하며, 은근히 변화를 시도해왔고, 그럼에도 장르의 정통성을 놓치지 않고자 노력해왔다. 더불어 스스로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하길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랜 팬들이 원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이다. 때론 새로운 시도가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이번 앨범은 그의 클래스가 여전히 높다는 걸 증명한다. 뮤지크 소울차일드는 그의 음악을 향한 팬들의 기대와 불만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린 오랜 기다림을 제대로 보상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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