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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Phonte & Eric Roberson - Tigallerro
    rhythmer | 2016-08-10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Phonte & Eric Roberson
    Album: Tigallerro
    Released: 2016-07-22
    Rating:
    Reviewer: 강일권









    랩퍼 폰테(Phonte)는 그룹 리틀 브라더(Little Brother)의 멤버로 데뷔한 이래 팀이 해체한 후에도 듀오 포린 익스체인지(The Foreign Exchange)와 솔로 앨범을 통해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보다 앞선 2001년에 데뷔 앨범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에릭 로버슨(Eric Roberson) 역시 15년여의 활동 기간을 탄탄한 커리어로 장식해왔다. 그리고 이 둘은 지난 2011년 그해 최고의 알앤비/소울 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로버슨의 [Mister Nice Guy] 수록곡 “Picture Perfect”에서 매우 좋은 합을 선보인 바 있다.

     

    인상적인 건 비단 퍼포먼스의 합뿐만이 아니었다. 가사에서 내비친 비슷한 사랑관(‘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렇듯 둘은 “Picture Perfect” 이전과 이후로도 각자의 곡에, 혹은 다른 아티스트의 곡에 함께 피처링하며 정식 듀오 못지않은 호흡을 맞춰왔고, 결국, 이렇게 합작 앨범을 내기에 이르렀다. 제목 ‘Tigallerro’는 그들의 별명, 폰테의 ‘Tigallo’와 에릭 로버슨의 ‘Erro’를 합친 것이다.

     

    앨범의 프로덕션은 그동안 두 아티스트가 추구해온 방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종종 랩과 노래를 병행하는 폰테는 니콜라이(Nicolay)와 프로젝트인 포린 익스체인지를 거치며, 예전부터 소울 음악에 가까이 다가서있었고, 로버슨도 힙합에 적지않은 지분을 할애해왔기에 그들의 음악은 접점이 많았다. 그 결과 네오 소울을 중심으로 곡에 따라 힙합이 조금씩 가미된, 따스하고 소울풀한 기운의 프로덕션이 구축됐다. 장르적으로 따지자면, 그만큼 힙합보다는 알앤비/소울 앨범에 가까운 셈인데, 폰테 역시 노래와 랩의 비중을 엇비슷하게 둔 점이 눈에 띈다.

     

    재미있는 건 노래 부분에선 오히려 에릭 로버슨이 폰테보다 힙합적이라는 사실이다. 시종일관 느슨하고 차분하게 보컬 파트를 소화하는 폰테와 달리 로버슨은 흡사 랩퍼가 플로우를 형성하듯 비트에 맞물려가는 보컬을 구사한다. 더불어 가사적으로도 ‘Freestylin’ over Dilla beats while we chillin’ at home’처럼 상황 묘사를 할 때라든지(“My Kind of Lady”), 노래 속 화자의 정체성을 드러낼 때(‘I’m just a hip-hop kid’ - “Hold Tight”) 등등, 힙합 레퍼런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전반적으로 유기적인 흐름이 돋보이는 앨범에서 단연 백미는 첫 곡 “It's So Easy”와 두 번째 곡  “Thru The Night”이다. 두 아티스트와 오랜 유대관계를 쌓아온 조!(Zo!), 나인스 원더(9th Wonder)가 조직한 프로듀서 그룹 더 소울 카운슬(The Soul Council)의 일원인 이 존스(E. Jones), 그리고 폰테가 함께 만든 “It's So Easy”는 전형적인 미드 템포의 리듬 파트 위로 두 톤의 멜로딕한 건반 연주가 달래듯 어우러진 곡. 특히,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Brazilian Rhyme” 일부를 절묘하게 다시 부른 여성 코러스가 말미에 포개지는 순간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그런가 하면, 리틀 브라더의 앨범에도 참여했던 갈렙 션(Caleb Sean)과 칸예 웨스트(Kanye West)베리 굿 비츠(Very GOOD Beats)’ 멤버인 심볼릭 원(S1)이 맡은 “Thru The Night”은 네오 소울로 시작하여 힙합으로 마무리되는 구성이 인상적인 곡이다. 탁한 리듬 파트와 몽환적인 신시사이저가 어우러지는 음악 위로 폰테와 로버슨이 노래를 주고받는 1,2절을 지나 세 번째 벌스에서 폰테의 랩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변주는 일품이다.

     

    이처럼 최고의 순간이 너무 일찍 연출돼서 그렇지, 이어지는 곡들도 준수하다.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한눈을 팔았다가 후회하지만, 용서받지 못하는 과정을 후렴구 없이 남녀 보컬의 교차를 통해 그린 “Never the Same Smile”, 언뜻 벌스의 진행이 에릭 로버슨의 지난 “Shake Her Hand”와 오버랩되는 “My Kind of Lady” 등은 대표적이다.

     

    [Tigallerro]의 또 다른 백미는 이들 콤비가 써내려간 낭만적이고 이성에 대한 존중심 넘치는 가사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두 아티스트는 육체적 관계보다 정신적 관계와 유대의 더 큰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는데, 간간이 곡으로 접하던 것과 달리 이렇게 앨범 한 장을 통해 구현되는 걸 보니 감흥의 여파가 확실히 더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플라토닉러브를 설파하는 건 아니다. 단지 섹스에 대한 갈망을 표출할 때도 상대를 배려하며 신사적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할 뿐이다. 전체적으로 가사들이 다소 예스럽게 낭만적임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건 둘의 기가 막힌 작사력과 퍼포먼스의 합 덕분이다. 대표적으로 “Thru The Night”에서 스토리텔링과 메타포, 그리고 메시지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은 폰테의 랩 벌스를 보라. 그가 오늘날 얼마나 과소평가된 랩퍼인지를 체감케 하는 지점이다.

     

    폰테와 에릭 로버슨은 그야말로 요즘 힙합/알앤비 씬에서 보기 드문 로맨티시스트들이다. 그리고 [Tigallerro]는 이 같은 그들의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난 작품이다. 두 아티스트는 오랫동안 쌓아온 우정과 공유해온 사랑관을 바탕으로 본작을 완성했고, (물론, 폰테가 노래도 할 줄 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 덕에 랩퍼와 싱어가 합작한 기존의 결과물과는 사뭇 다른 감흥을 선사하는 데에 성공했다. 부디 이것이 단 한 번의 프로젝트로 끝나는 게 아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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