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De La Soul - And the Anonymous Nobody…
- rhythmer | 2016-09-04 | 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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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De La Soul
Album: And the Anonymous Nobody…
Released: 2016-08-26
Rating:
Reviewer: 양지훈
데 라 소울(De La Soul)이 [The Grind Date] 이후 정규(full-length) 앨범을 다시 발표하기까지 무려 12년의 세월이 걸렸다. 물론, 최근까지 라이브 무대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고, 나이키(Nike)와 손잡고 만든 이벤트성 앨범 [Are You In?: Nike+ Original Run]이나 [Smell the Da.I.S.Y.]와 같은 믹스테입을 통해 녹슬지 않은 감각을 보여주었지만 말이다.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지도가 서서히 떨어진 그들에게 아직도 설레는 감정이 남아 있는 이들은 정규 앨범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 거라는 기대감 또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 라 소울은 그러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번에는 앨범의 제작 방식부터 파격적으로 바꾸었다. 뮤지션의 수익에 관한 음반 제작사의 간섭을 피하고 온전히 원하는 대로 앨범을 만들기 위해, 킥스타터(Kickstarter)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제작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트리오가 책정한 목표치를 훨씬 웃도는 금액이 모이자 그룹은 아직도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충만한 채로 새 앨범 [And the Anonymous Nobody…]를 제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And the Anonymous Nobody…]는 방향성이 뚜렷한 앨범이다. 알앤비 싱어, 커머셜 랩퍼, 락 보컬리스트 등 다양한 뮤지션을 초빙하고 탈 힙합적 구성요소를 강조했다. 20년 전부터 들어왔던 '얼터너티브 힙합'이라는 수식어가 이번 앨범에서도 유효한 셈이다. 특히, 이는 알앤비 보컬리스트와 랩퍼만을 게스트로 한정했던 [The Grind Date]와 차이점이기도 하다. 참신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더 보여주길 바라는 것은 사반세기에 이르는 트리오의 커리어를 감안했을 때 당연히 무리가 따르지만, 탈 장르적 앨범이라는 방향성을 잡고 열린 시각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점은 확실히 높게 평가할 가치가 있다.
오랜 세월 동반자였던 슈파 데이브 웨스트(Supa Dave West)의 프로듀싱 아래, 스눕 독(Snoop Dogg)과 함께 제목 그대로 인간의 삶에서 겪는 고통을 어렵지 않게 논하는 "Pain", 일렉트릭 기타가 전체 비중의 7할을 차지하는 7분 여의 대곡 "Lord Intended", 얼터너티브 락 그룹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프론트맨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을 보컬리스트로 초대하여 앨범에서 가장 강한 중독성의 후렴구를 일궈낸 "Snoopies",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떠나는 이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가는 "Greyhounds" 등은 진지하면서도 긍정적인 태도로 제작에 임한 데 라 소울의 노력을 대변하는 곡들이다.
반면에, 들쭉날쭉한 구성으로 60여 분의 러닝타임을 채운 점은 아쉽다. 특히, 앨범의 초반부에서 "Royalty Capes"와 "Pain"으로 산뜻하게 출발하며 기대감을 증폭시키지만, 그 기세가 한 풀 꺾이는 지점이 계속해서 존재하여 아쉬울 따름이다. 지난 날을 회상하는 잔잔한 분위기를 연출한 "Memory of... (US)"는 앨범에서 어셔(Usher)의 멜랑콜리한 보컬을 감상할 수 있는 "Greyhounds"와 쌍벽을 이루지만, 지나칠 정도로 루즈한 진행이 흠이며, 포스드너스(Posdnous)와 데이브(Dave, 혹은 Trugoy)의 랩보다 더욱 미니멀한 락 마르시아노(Roc Marciano)의 랩을 투입한 "Property of Spitkicker.com"은 게스트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특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함께, 피처링 랩퍼와 아슬아슬하게 지분을 나눠 가지며 주객전도의 우를 피해가던 모습이 데 라 소울의 장점이었는데, 이러한 장점이 앨범 전체적으로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힙합 사에 한 획을 그은 트리오가 파격적인 방식을 통해 발표한 이번 앨범에서 기대한 건 여전히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즐거운 감정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이 음악으로 얼마나 잘 표현되었는지였다. 그렇기에 새 앨범에서 느껴지는 일말의 아쉬움은 단순히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의 감정 그 이상이다. 다양한 시도 속에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곡들이 엿보이고, 노장의 건재함을 확인할 순 있었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이 쉬이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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