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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Isaiah Rashad - The Sun’s Tirade
    rhythmer | 2016-09-21 | 1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Isaiah Rashad
    Album: The Sun’s Tirade
    Released: 2016-09-02
    Rating:
    Reviewer: 조성민









    아이재야 라샤드(Isaiah Rashad)는 탑 독 엔터테인먼트(Top Dawg Entertainment/이하: TDE)에 소속되어 있는 랩퍼지만, 그 주력 멤버들과는 여러모로 궤를 달리해왔다. 레이블의 근거지인 캘리포니아 주의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도시 출신이거나, 실제 갱단의 일원이기도 한 블랙 히피(Black Hippy) 멤버들과는 달리, 아이재야는 테네시 주의 채터누가(Chattanooga)에서 자랐다. 작업량이나 화제성 면에서도 선배들과는 동떨어진 듯한, 자칫 밋밋한 행보를 보이지만, 차이점이 가장 짙게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음악성이다. 일례로, 그가 2014년에 선보인 데뷔 EP [Cilvia Demo] TDE에서는 보기 드문 폭력을 주 컨텐츠로 삼지 않은앨범인 동시에 진득한 서던(Southern) 바이브를 자랑했었다.

     

    그 후, 2년 반의 공백기를 가진 아이재야는 약물 중독과 우울증으로 인해 레이블에서 세 번이나 방출될 위기에 놓였지만, 천신만고 끝에 정규 1 [The Sun’s Tirade]를 완성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우려와는 달리 본작은 아이재야가 성장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데뷔 EP때의 뼈대를 그대로 가져와 한층 더 진득해진 프로덕션으로 외벽에 살을 붙이고, 깊은 영역에 자리 잡은 그의 심층을 따라 안쪽으로 탐험해나가는 구성은 앨범의 성패를 결정지은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본작은 모든 면에서 확장된 [Cilvia Demo]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이재야의 이야기는 여전히 어둡고 자기성찰적이다. 이미 수차례 언급된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는 줄어들었지만, 그때 형성된 삐뚤어진 사상이나 술과 자낙스(Xanax)에 의존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여기에 랩 스타가 된 후 겪은 향수병과 우울증 같은 다른 형태의 정신적인 고통에 먹힌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의식의 변화가 눈에 띄는 지점도 있다. 음악적인 성공으로 이룬 재정적인 여유에 감사하는 모습과 긍정적인 태도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은 트랙들은 아이재야에게 변화가 있음을 나타낸다. 그가 택한 서술법 역시 눈에 띈다. [Cilvia Demo]처럼 어두운 기억의 한 부분을 선명하게 그리며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표현해내기보단 메타포를 통한 간접적인 어프로치와 포괄적인 단어를 지향하는 모습에서 정신적인 싸움을 이어가는 아이재야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앨범의 프로덕션은 전작보다 한층 밀도 있게 구성되었다. 대다수의 트랙은 레이드-(Laid-Back) 되어 감성적이고 재지하면서도 그루비한 바이브를 자랑한다. “4r Da Squaw”“Free Lunch”에서는 진득한 베이스로 톤다운 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펑키한 베이스 리프가 인상적인 “Rope / Rosegold”에서는 비트 변주를 통해 톤을 효과적으로 바꿔냈다. 중반부의 “Park”“Bday” 역시 앞서 언급한 트랙들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그 감상 포인트 역시 유사하다. 무겁게 눌러낸 베이스로 저음역의 멜로디를 잡고 건반과 실로폰 등을 더했는데, 이는 여유 있게 정박에 떨어뜨리면서 공간을 열어두는 랩을 하는 편인 아이재야와 좋은 궁합을 보인다.

     

    프로덕션적으로 전작과 유사한 점은 남부 힙합을 향한 오마주가 담긴 트랙들에서 드러난다. 앨범 후반부의 “Don’t Matter”처럼 빠른 브레이크 비트 위에서 날리는 후렴이나, “Silkk Da Shocka”“Tity & Dolla”처럼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 그 예다. 게다가 전작과는 달리 정통 트랩 트랙인 “A Lot”이 추가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마이크 윌 메이드 잇(Mike Will Made It)과 처음으로 협업한 이 곡은 진득하게 흐르는 앨범의 중반부를 한번 조였다가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편, 아이재야의 랩을 매력적으로 포장하는 일차적인 요소는 보이스다. 성대를 긁는듯한 걸걸한 목소리와 웅얼거리는 듯한 발성이 묘하게 맞물리며 귀에 감기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느릿하면서 규칙적으로 설계된 플로우와 가끔씩 섞어내는 남부억양 역시 아이재야식 랩의 묘미다. 특히, 전작의 “Heavenly Father”의 후속곡 격으로, 스물다섯 살을 맞은 것을 자축하는 “Bday”와 투어 활동 당시의 우울증을 고백하는 “Dressed Like Rappers”에서 음절 단위로 단어를 쪼개 그루브를 강조한 랩 디자인이 큰 감흥을 남긴다. 그는 또한, 빡빡하게 플로우를 짜서 동력을 가미한 랩을 간혹 선보이는데, 이와 동시에 목소리 톤을 작위적으로 바꿔가며 벌스에 긴장감을 더하기도 한다. 이 덕분에 “Wat’s Wrong”에서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에게 크게 밀리지 않았으며, 휘파람 샘플과 키보드 연주가 인상적인 “Tity & Dolla”에서는 중독적인 후렴과 랩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본작은 분명 여러 지점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아쉬운 지점도 존재한다. 가장 큰 부분은 구성적인 면모에서의 어눌함이다. 퀄리티를 떠나 비슷한 무드와 템포의 트랙을 겹겹이 배치해 놓은 결과, 앨범의 유기성은 견고해졌을지언정 긴장감과 트랙의 파괴력이 미미해졌다. 이것이 곧 킬링 트랙의 부재로 드러났으며, TDE 캠프의 앨범들에서 드러난 약점이기도 한 늘어지는 러닝타임도 효과 있게 제어하지 못한 느낌이다.  

     

    결과적으론 매우 탄탄한 앨범이다. 그리고 [The Sun’s Tirade]가 내포한 가장 큰 즐거움은 아이재야가 과거의 방황을 끝냈을 때 어떠한 마음가짐과 의도로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즉각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에 있다. 첫 트랙부터 그러하며, 그의 첫 앨범을 들었다면, 더욱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본작은 제자리로 돌아온 아이재야가 초심을 잃기는커녕 묵묵히 전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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