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T.I. – Us Or Else
- rhythmer | 2016-10-04 | 1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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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T.I.
Album: Us Or Else
Released: 2016-09-23
Rating:
Reviewer: 강일권
흑인들의 사회적 위치와 전반적인 삶의 질이 이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인종차별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은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임을 깨닫게 했다.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다가 수상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자경단원의 총격에 사망한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2012), 우연히 편의점 강도 사건 현장을 지나다가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마이크 브라운(Mike Brown/2014), 아직 십 대였던 이들이 죽은 건 단지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의 증언에도 총격을 가한 이들은 정당방위로 무죄 처리되었고, 이는 곧 인종차별 이슈로 번졌다.
무엇보다 이 같은 만행을 자행한 게 공권력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가 두려움과 분노를 표했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많은 흑인 스타들이 나서서 비판을 가했지만, 실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올해에도 두 건의 총격 사망 사건이 일어났고, 희생자는 모두 비무장 흑인, 총을 쏜 사람은 모두 백인 경찰이었다. 그리고 이 건 역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잉진압을 행한 게 원인이었다. 이처럼 연이은 비극 탓에 블랙 커뮤니티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티아이(T.I.)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EP와 함께 논란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총 6곡을 수록한 이번 EP에서 티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백인 경찰들의 과잉대응으로 흑인들이 억울하게 죽어 나가는 야만적인 인종차별 현장을 고발하고, 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한편, 블랙 커뮤니티 내에서 자행되는 흑인들 사이의 폭력을 꼬집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 앨범을 통해 티아이가 내비치는 태도는 예상보다 급진적인데, 이를 적당히 중화하여 영리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의 가사는 전체적으로 맬컴 엑스(Malcolm X)를 비롯한 휴이 뉴튼(Huey P. Newton), 에이치. 랩 브라운(H. Rap Brown) 같은 급진적인 운동가들의 것에 더 가까운 뉘앙스를 풍긴다.
그동안 사건들에서 경찰의 행위를 명백한 ‘살인’으로 규정한 뒤, '형제와 자매들의 삶을 앗아가는 동안 침묵하고 있지 않겠다. 싸움을 준비할 것이다.'라고 선포하는 첫 곡 “We Will Not”은 이러한 기조를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곡. 그런데 여기서 그는 무기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결속을 통한 싸움임을 주장하며, 싸움의 결을 살짝 비튼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맬컴 엑스와 함께 흑인인권운동의 기수였던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의 비폭력 노선이 녹아들면서 전체적인 톤이 중화된다. 그럼에도 티아이는 적으로 간주한 상대의 긴장감을 자극하고 유지케 하려는 뜻을 관철하기 위해 더 이상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선 안 된다는 주장을 계속 밑바탕에 깔아놓아 미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We Will Not”을 시작으로 미고스(Migos)의 쿠에이보(Quavo), 믹 밀(Meek Mill), 라라(Rara) 등과 함께 백인 경찰에 의해 무고한 흑인들이 살해당하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며 경찰을 저격하는 “Blackman”,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와 달리 인종차별에서 비롯한 만행이 벌어지는 미국 사회의 실상을 전쟁 지역에 빗대어 비판한 “Warzone”에 이르는 구간은 본작의 주제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며 압도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다. 이어지는 곡들도 탁월하다. 목숨이 위협받는 공권력의 폭력 속에서 살아남아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자기 방어 준비는 물론, 다 함께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Switchin Lanes”, 남북전쟁 뒤 흑인 노예의 자유와 관련한 상징이었던 ‘40 에이커의 땅’에서 레퍼런스를 취하여 현실 비판과 동시에 흑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40 Acres”, 앨범의 주제와 가장 동떨어졌지만, 자기성찰적인 내용과 앞으로 자식이 살아갈 세계에 대한 우려가 담긴 가사가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곡 “I Swear” 등, 전곡이 상당한 밀도를 자랑한다.
앨범의 무거운 주제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건 역시 탄탄한 프로덕션과 티아이의 랩 퍼포먼스다. 피프틴헌드레드 오 낫씽(1500 or Nothin)의 멤버 마스(Mars), 마이크 앤 키즈(Mike & Keys), 브랜든 로시(Brandon Rossi), 트레브 케이스(Trev Case), 더 푸샤 비츠(The Pusha Beats)가 각자, 혹은 합작으로 만든 비트는 개별 완성도도 좋지만, 흐름 또한 인상적이다. 공명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신스와 미니멀한 트랩 비트가 어우러진 가운데, 적당히 무게를 실은 랩핑이 얹힌 “We Will Not”, 가스펠적인 코러스로 시작하여 곧 둔중한 트랩으로 변주되어 본색을 드러내는 “Blackman”, 전통적인 박자의 드럼 위로 지-유닛(G-Unit) 풍의 중후한 건반 운용이 곁들여진 “Warzone”이 연속되며 후끈하게 달궈지다가 나른한 바이브의 트랩 비트와 티아이의 노래하듯 플로우가 어우러진 "Switchin' Lanes"가 잠시 분위기를 안정시키고, 다시 역동적인 리듬 파트와 랩핑의 “40 Acres”가 분위기를 끌어올린 뒤, 소울풀하고 멜로딕한 “I Swear”의 상승 무드로 마무리된다. 그야말로 짧고 굵은 감흥을 선사한다. 여기에 게스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벌스를 선사한 킬러 마이크(Killer Mike)를 비롯한 피처링 진의 활약도 적절했다.
힙합 슈퍼스타 티아이의 매우 정치적인 앨범 [Us Or Else]는 한동안 잊힌 듯 보였지만, 실은 꾸준히 꿈틀거리던 랩/힙합의 저항과 비판 정신이 전면에 부각한 작품이다. 적어도 그들에겐 의무감으로 다가왔을 냉혹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티아이는 급진적이나 영리한 메시지, 탁월한 랩과 탄탄한 비트, 그리고 냉철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가사를 통해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무엇보다 [Us Or Else]는 힙합의 가장 트렌디한 면과 컨셔스적인 면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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