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Alicia Keys - Here
- rhythmer | 2016-11-15 | 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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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Alicia Keys
Album: Here
Released: 2016-11-04
Rating:
Reviewer: 황두하
2009년에 발표한 네 번째 정규앨범 [The Element of Freedom]의 상업적, 비평적 실패로 잠시 침체기를 가졌던 앨리샤 키스(Alicia Keys)는 2012년 다섯 번째 정규앨범 [Girls on Fire]를 통해 다시 커리어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는 데에 성공했다. 그녀의 강점인 감성 넘치는 피아노 선율과 유려한 멜로디 메이킹을 내세운 앨범은 준수한 완성도를 갖추었고, 초창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상업적인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Girls On Fire” 같은 곡에서는 지난 히트곡들을 답습하는 진부한 진행 탓에 한계 또한 고스란히 노출했다. 꺼져가던 커리어의 불씨를 다시 살려놓기는 했지만, 그 다음 스텝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던 것이다.그로부터 4년 만에 발표한 여섯 번째 정규앨범 [HERE]는 키스의 음악적인 변화가 돋보이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앨범의 프로덕션은 앨리샤를 중심으로 남편인 스위즈 비츠(Swizz Beatz), 마크 뱃슨(Mark Batson), 일안젤로(Illangelo) 등이 참여하였는데, 그녀의 음악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피아노의 비중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대신 기타, 신시사이저 등, 다양한 악기를 이용해 보다 미니멀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She Don’t Really Care / 1 Luv”에서 “Work On It”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이러한 음악적 변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붐뱁(Boom Bap) 비트를 기반으로 황량함이 느껴지는 신시사이저와 묵직한 드럼 라인이 어우러진 전반부와 나스(Nas)의 “One Love”를 샘플링한 후반부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또 하나의 뉴욕 찬가 “She Don’t Really Care / 1 Luv”은 일품이다. 나스와 대화를 담은 스킷 “Elevate (Interlude)”와 이어지며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밖에도 어쿠스틱 기타 위로 여러 사람의 코러스가 더해져 밝은 기운이 느껴지는 “More Than We Know”, 일렉트로닉 하우스 사운드를 차용한 “In Common” 등도 준수하다. 무엇보다 변화한 프로덕션 위에서도 뛰어난 멜로디 메이커로서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이 되는 “Kill Your Mama”나 “Holy War” 등에서는 지나치게 단순한 진행 탓에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레게 사운드를 차용한 “Girl Can’t Be Herself” 역시 무난한 프로덕션으로 특별한 매력을 찾기 어려울뿐더러, 앨범의 다른 곡들과도 분위기상 튄다는 인상이 강하다. 한편, 음악적으로 변화를 꾀한 와중에도 피아노가 중심이 된 ‘앨리샤 키스’ 표 트랙들을 포기하진 않았는데, 비장한 무드의 피아노 선율 위로 스포큰 워드(Spoken Word)에 가까운 랩을 뱉어내는 업템포 트랙 “The Gospel” 정도를 제외하곤 대체로 지난 히트곡들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쳐 아쉬움을 남긴다.
앨범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큰 틀의 주제 또한, 주목할만하다. 그녀는 흑인으로서 정체성과 뉴욕이라는 상징적 공간이 주는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She Don’t Really Care / 1 Luv”나 의붓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Blended Family (What You Do For Love”의 가사가 주는 감흥이 인상적이다. 다만, 이 외 곡 대부분에서 표현이 다소 피상적인 건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중간마다 연인과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다소 뜬금없이 튀어나와 흐름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HERE]는 분명 준수한 완성도의 작품이다. 그러나 앨리샤 키스가 이번 앨범을 통해 음악적 변화를 꾀한 시도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지난 취향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한 탓이다. 더불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보니 구성적으로도 다소 산만해진 인상이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섬세한 멜로디 라인과 매혹적인 보컬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쉽다. 본작에서 보여준 변화가 그저 현상 유지가 아닌, 더 큰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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