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Charles Hamilton - Hamilton, Charles
- rhythmer | 2017-01-21 | 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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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Charles Hamilton
Album: Hamilton, Charles
Released: 2016-12-09
Rating:
Reviewer: 조성민
2009년 미 힙합 매거진 XXL이 뽑은 주목해야 할 신예(XXL Freshman) 중 한 명이었던 찰스 해밀턴(Charles Hamilton)은 메이저 데뷔작의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당시 소속사였던 인터스코프(Interscope)로부터 일체 해명 없이 방출되었고, 이후 몇 년 동안 회사 몇 군데와 레코드 계약을 따냈지만, 변변치 않은 결과물 하나 없이 방출과 계약을 오가며 저니맨 생활을 했다. 그러던 그가 다시 탄력을 받게 된 계기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발표한 작업물 덕이다.평소 스타일보다 더 어둡고 호러코어적인 접근을 취한 곡들이 인기를 얻은 것이다. 이때부터 해밀턴은 블로그를 통해 과거에 작업해놓았지만, 끝끝내 발표하지 못한 앨범과 방대한 양의 믹스테입을 공짜로 뿌리면서 그만의 영역을 만들어갔다. 속세에서 벗어난 듯한 일정 기간을 보낸 뒤, 2015년에 발표한 EP [Black Box]를 기점으로 메이저 데뷔의 시동을 걸었고, 약 1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Hamilton, Charles]를 완성했다.
해밀턴이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시기로부터 약 7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나온 작품이다. 그러니 여타 신인들의 데뷔 앨범에서나 발견될 과도한 패기라든지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한 무리수는 찾아볼 수 없다. 앨범을 알차고 빡빡하게 채웠다는 느낌보다는 여백을 미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느껴지며 보다 안정된 운영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틀을 마련했다. 그 덕에 밸런스가 잘 잡혀있고, 프로덕션과 랩이 발휘하는 시너지도 충분히 잘 드러났다.
무엇보다 듣기에도 편한 미니멀한 프로덕션이 시종일관 랩을 잘 받쳐준다. 기타나 피아노 라인으로 뼈대를 완성하고 간간이 차용한 소울 샘플을 통해 풍성함을 더한 것이 프로덕션을 담당한 해밀턴 본인과 영국 출신의 삼인조 프로덕션 팀 인비져블 맨(The Invisible Men)의 주된 기법이다. 이러한 패턴은 특히 앨범의 초반부(“Clowns”, “Everyone”, “Correct”)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앨범의 중반부에서 바뀌는 프로덕션적인 노선은 메인스트림 진출에 대한 해밀턴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디스코 레퍼런스가 적극적으로 차용된 “Be With You”는 라디오를 노려보겠다는 그의 의도가 느껴지는 대표적인 트랙. 그 뒤에 배치된 “Make Yourself Over”는 곡이 주는 감흥 여부와는 별개로 피비알앤비(PBR&B)와 트랩 드럼을 바탕으로 설계됐다는 점에서 흥미를 유발하고, 앨범의 끝자락에 위치한 로큰롤 트랙 “Ugly Supermodel”에서는 장르적 탈선을 살짝 선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처럼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반부의 곡들이나 후반에 배치된 “Real Life”, “Stay There”만큼의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은 아쉽다. 그 원인을 뽑아보자면, 랩과 비트 간 시너지가 미미하다는 것이고, 그가 앨범에서 일관적으로 지키고 있는 캐릭터적 성격에서 오는 괴리감이 해당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작을 관통하는 주제는 해밀턴이 음지에서 보낸 시기의 이야기와 그것을 통해 깨달은 교훈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는 내면의 것들이 주를 이룬다. 메인스트림 진입에 대한 생각과 정치적인 견해, 옛 애인에 대한 회상과 과거에 행한 잘못에 대한 자기항변 등이 서술적인 두서 없이 배치되어 있다. 솔직하게 써 내려 간 가사와 단어선별도 우수한 편인데, 무엇보다 찰스의 스토리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랩 딜리버리 방식과 캐릭터 연출법이다. 그가 랩을 뱉어낼 때의 억양과 톤은 굉장히 무덤덤하면서 무감정적이다. 마치 시련을 겪은 후에 무언가를 깨닫고 통달한 사람의 입장을 대변하듯, 그 어감이나 곱씹듯이 던지는 랩에서 시니컬함이 배어 나온다. 그렇기에 길었던 공백 동안 느꼈던 서러움과 정신적인 질병에 시달렸던 날들을 되짚는 트랙들에서 훨씬 큰 공감대와 페이소스가 발현된다. 또 그것이 해밀턴에게서 문득 얼 스웨트셔츠(Earl Sweatshirts)가 연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밀턴은 본작을 통해 다양한 랩 스타일을 선보이며 다재다능함을 입증했지만, 후렴을 짜는 능력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보컬을 중심으로 한 후렴도 그렇지만, 랩으로 짜놓은 후렴 역시 목소리가 너무 플랫하기 때문에 존재감이 미미하다. 이는 특히, “Be With You”에서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다. 곡의 특성상 더 익살스러운 연기를 하거나 더 생동감 있게 접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게스트가 전무한 상황에서 랩 벌스로 끌어올린 분위기를 꾸준히 이어가지 못하는 부분이 노출되기도 했다.
지난 7년간의 공백을 설명하는 목적으로 기획된 [Hamilton, Charles]는 모난 부분 없이 듣기 편한 앨범이다. 물론, 해밀턴이 다루는 주제 대부분이 마냥 듣기 편하지만은 않지만, 본인의 심경을 미화 없이 서술한 덕에 그 진솔함이 크게 와 닿는다. 결과적으로 해밀턴은 본작을 통해 여태껏 입었던 손해를 상당 부분 만회했다. 이제는 고개를 돌려 앞을 보고 전진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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