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Lupe Fiasco - Drogas Light
- rhythmer | 2017-02-26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Artist: Lupe Fiasco
Album: Drogas Light
Released: 2017-02-09
Rating:
Reviewer: 조성민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는 ‘힙합의 메인스트림화’, 혹은 사람들이 말하던 ‘장르의 변질 과정’에 따른 과도기 및 여파를 적절히 이용하여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 문장대로만 해석하면 그가 마치 시대의 흐름을 잘 탄 기회주의자같이 들릴 법하지만, 그것도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루페는 질적인 측면을 떠나서도 스타일적으로 여타 랩퍼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서사적 어프로치를 통해 사회적인 화두를 제기하고 의표를 찌르는 트랙을 다수 배출해왔다. 그의 주장은 너무 확고하기에 커다란 이슈를 다루는 곡에선 의도적으로 울부짖듯 감정을 토해내기도 하고, 때론 이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서슴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단순히 관찰자 입장에서 세태를 평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주도적이고 저돌적인 컨셔스 랩을 펼치는 셈이다. 그가 커먼(Common)이나 모스 데프(Mos Def) 같은 학자보다는 혁명가에 가까운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게다가 소속사와 다년간 이어온 분쟁을 스토리화해서 대중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으며, 정규 작업물의 결과 역시 잘 받쳐준 덕에 장르의 본질과 정신을 지키면서도 세련미를 갖춘 리리시스트(Lyricist)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루페는 걸작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제 무슨 말을 하든 큰 효력이 동반되지 않는 시점에 도달했다. 그는 수 차례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했고, 앨범을 뒤엎기도 했으며, 동료 아티스트들과 잦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옳고 그름의 여부와는 별개로 일단 그를 둘러싼 잡음이 많고 심히 충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인데다가 발언의 일관성 역시 떨어진다는 점에서 인물 자체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진 것이다. 본작의 탄생 역시 그런 의미에서 발표되기 전까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최소한 음악에 관해서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새 앨범 [Drogas Light]은 루페가 발표할 트릴로지 중 첫 번째 작품으로, 팝-랩 앨범인 [Lasers]의 기조를 잇고 있다. 국외 매체의 혹평 세례와 달리 루페 본인은 10점 만점에 7점을 줬지만, 어쨌든 완성도가 높은 수준에 도달한 앨범은 아니다. 한 가지 의문은 앨범을 끝까지 돌리고서도 기획 의도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단순히 꼼꼼하지 못한 작품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루페가 그리는 3부작 중 작은 그림에 불과하기 때문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 이유다.
완성도 측면에서 본작은 루페의 과거 결과물에 비하지 못한다. 그러나 프로덕션만큼은 상당히 흥미롭다. ‘’[Lasers]의 정돈된 버전’’이라 평한 그의 말대로 특정 장르를 거점으로 삼고 발전시킨 형태다. 정규 3집에서는 유로 팝을 위시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였다면 본작은 트랩이 그 역할을 한다. 특히, “Dopamine Lit (Intro)”부터 “Jump”까지 이어지는 초반부는 매우 정교한 편이다. 인상적인 건 해당 구간의 트랙이 정형적인 트랩으로 빚어졌다기보다 루페가 여태 고집해온 사운드를 지켜내는 선에서 트랩 요소를 적절히 가미했다는 점이다. “Promise”는 트랩 플로우를 제대로 구사해낸 곡으로 [Tetsuo & Youth]에 포함되어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을 사운드이며, “Made In The USA”는 한때 비프 상대이기도 했던 치프 키프(Chief Keef)로 대변되는 드릴 사운드를 루페식으로 영리하게 재해석한 킬링 트랙이다. 또한, 이 흐름에 최고점을 찍는 스토리텔링 트랙 “Jump”에 숨겨진 메시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또 한번 초창기적 루페의 영민함과 랩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후반부가 그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다. 응집력이 극도로 약해지는 탓이다. 곡의 완성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트랩 바이브가 지워지며 발생한 프로덕션적인 기복이 심하다. 이는 루페 특유의 작가정신이 느껴지지 않거나, 피처링 게스트가 곡의 감흥을 저하하는 등, 기획적인 오류가 드러나고(“Tranquillo”), 이미 예전에 차용한 주제를 재사용하는 접근을 취하지만, 안이한 결과가 되어버린(“City Of The Year”, “Law”) 경우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 사실 본작은 지난 5년 간 만든 곡을 추려서 발표한 모음집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발표된 석 장의 정규 앨범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에서 이미 ‘질적 하락’을 암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트랙들은 곡 자체의 감흥보다는 ‘이 곡이 어떤 앨범을 준비하면서 만들었는지’ 추리하는 재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결론적으로 초반부의 화력이 상당했기에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질적 괴리감이 참 아쉽다. 그렇기에 본작을 통해 루페가 시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감을 잡기도 어렵다. 그냥 떨이용 트랙을 묶어서 창고 대방출을 하고자 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정성이 덜 들어간 미적지근한 작품인지 말이다. 어쨌든 그의 기존 작보다 떨어진다고 해서 쉬이 지나치기엔 귀를 잡아끄는 지점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앨범이다. 결국, 루페이기 때문에 참 아쉬운 동시에 흥미롭다.
9
-
-
- 신숭털 (2017-02-28 20:35:40, 218.152.158.**)
- 전 초반부보다 후반부가 훨씬 좋았는데...거를 트랙이 없음. 회사 나온 뒤 셀링포인트에 신경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만든 듯한 음악이라 정말 좋았어요. 전작들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더군요. 사실 발매된 뒤 몇몇 평만 보고 걱정했는데 음악을 들을 때 편견없이 스스로 듣고 판단해야한다는 것을 여실히 느낀 앨범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