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Sevdaliza - Shabrang
- rhythmer | 2020-09-10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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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Sevdaliza
Album: Shabrang
Released: 2020-08-28
Rating:
Reviewer: 김효진
어떤 아티스트이든지 내면 세계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창작 과정이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세브달리자(Sevdaliza)도 마찬가지다. 그는 음악을 시작한 때부터 정체성이나 무의식을 노래에 담았다. 해당 소재에 관심이 더 깊어진 계기가 있다. 자신의 음악이 옛날 페르시안 가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한 예술 학교 교수의 평을 들은 순간이었다.세브달리자는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이 되던 해 네덜란드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당연히 옛 페르시안 팝은 접해본 적 없으며, 어릴 적부터 음악 활동을 간절히 꿈꾸던 것도 아니었다. 음악 보다는 농구에 재능이 있었다. 실제로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 출신이다. 그런데 그저 영감을 실현시킨 음악에서 옛 페르시안 팝의 정취가 느껴진다니. 그 순간 세브달리자는 영감이나 정체성 같은 건 어쩌면 DNA나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본작 [Shabrang]도 그의 무의식을 표현한 앨범이다. 묵상 같기도 하다. 위태로운 현악기와 피아노 소리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는다. 요점을 잡는 건 메시지다. 페르시아어로 ‘내 사랑’이라는 뜻을 가진 “Habibi”에선 ‘나를 내 머리에서 빼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Is there anyone out there / To get me out of my head?’라고 사색을 하고, “Lamp Lady”에선 탠저린을 파는 여인을 묘사하며 알라신의 존재를 은유한다.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곡은 “Oh My God”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미국 내 인종차별, 혐오 범죄, 이란과 미국 사이의 갈등 등등, 정치적 소재가 다양하게 얽혀 있다. 그의 메시지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건 코러스다. 한국어와 러시아어 코러스(‘잊지마’, ‘спасибо(고마워)’)를 연속으로 삽입해 북한과 러시아의 갈등을 상기시키고, 자연스레 북한과 미국의 핵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주제 의식을 던지는 가사 구성도 인상적이다.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지?, What Should I be?”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해 '넌 매번 또 다른 악마야 / 지옥으로 데려다 줄 천사만 기다리고 있잖아, Every time, you're another evil / Waiting for an angel that you bring to Hell'라는 의식, 즉 갈등이 가득한 세상에서 행동 없는 희망은 무익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끝맺는다.
정돈된 프로덕션도 눈에 띈다. 이전처럼 고딕풍의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구성은 전작보다 단조롭다. 조금은 오싹하게 느껴지는 현악기와 유약한 피아노 소리가 음악의 요체가 된다. 연약하게 감각되다가도 제 리듬을 찾는 드럼 소리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신스 소스, 둔중한 베이스까지 섞인 음악들을 듣고 있노라면 현현(顯現)을 지독하게 좇는 한 개인이 그려진다. 앨범 후반부 갑작스러운 사이버틱 그런지(grunge) “Rhode”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무의식이나 통찰 같은 건 뜬금없고 산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한 샤브랑(Shabrang)은 페르시안 신화 속 영웅 시야바시(Siyâvash)가 타던 말의 이름이다. 페르시안 신화에 따르면 샤브랑은 시야바시와 함께 큰 불길을 통과한 뒤에도 살았으며, 말을 이어 타게 된 아들 카이 호스로우는 불사신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세브달리자는 앨범 내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지만, 누구보다 단단한 정체성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는 또 다시 의식에 물음을 던질 것이다. “나는, 우리는 정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의 실현과 함께 샤브랑을 타고 돌아올 것이라 여겨지는 카이 호스로우처럼 담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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