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Slowthai - TYRON
- rhythmer | 2021-03-02 | 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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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Slowthai
Album: TYRON
Released: 2021-02-12
Rating:
Reviewer: 황두하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래퍼 슬로우타이(Slowthai)의 첫 정규 앨범 [Nothing Great About Britain](2019)은 그해 가장 도발적인 작품이었다. 그는 바베이도스(Barbados)와 아일랜드(Island) 혼혈인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이민자 출신으로, 아직도 신분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영국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에 속한다. 브렉시트(Brexit) 이후 급격히 우경화가 진행된 영국 사회에서 노동자, 이민자 계급의 사회적 기반은 매우 위태로워졌다. 그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안감에서 비롯된 분노를 앨범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특히, 당시 영국 총리였던 테레사 메이(Theresa May)를 비롯한 기득권을 거침없이 공격하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라임(Grime)과 힙합, 그리고 펑크 록(Punk Rock)까지 적극적으로 껴안아 호전성을 드러낸 프로덕션과 독특한 억양을 그대로 살려낸 천부적인 리듬감의 랩으로 음악적 완성도까지 챙겼다. 이 앨범으로 그는 단숨에 가장 주목받는 신예 래퍼가 됐다.
약 2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TYRON]에서 그는 시선을 외부에서 자신에게로 돌린다. 앨범은 2CD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CD에는 광기 서린 에너지를 분출해내는 뱅어 트랙들이 포진되었고, 두 번째 CD에는 조금 더 침잠된 무드의 트랙들이 이어진다. 이는 어릴 적 동생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와 우울증을 앓게 된 슬로우타이의 내면을 상징한다. 전반부의 트랙은 대문자로, 후반부의 트랙은 소문자로 표기한 것도 마찬가지다. 앨범을 절반으로 과감하게 나누어 내러티브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본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내외부적인 요인을 향해 거칠게 분노를 쏟아낸다. 일례로 “CANCELLED”에서는 최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번지는 ‘캔슬 문화’(*필자 주: 유명인들의 작은 실수나 과거 언행을 문제 삼아 불매 운동을 벌이는 것. 초기에는 성폭력, 혐오 언행 등등, 중대한 문제들로 인해 생겨났지만, 점차 유색인 셀럽들을 타깃으로 꼬투리를 잡는 문화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이 있다.)에 반기를 들고, “VEX”에서는 SNS에서의 자랑을 위해 거짓된 모습으로 치장하는 현상을 꼬집는다. 더불어 “WOT”에는 고 팝 스모크(Pop Smoke)가 생을 마감한 날 저녁 파티에서 그를 만난 직후의 감상을 고스란히 담았다.
첫 CD의 마지막 트랙 “PLAY WITH FIRE”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급변하며 조금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간다. 자신이 앓고 있는 정신병을 고백하고(“i tried”), 팬데믹으로 인한 우울감을 토로하기도 한다.(“nhs”). 또한, “feel away”에서는 죽은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필자 주: “feel away”는 죽은 동생의 기일인 작년 11월 15일에 싱글로 발표됐다.)
다소 격한 어조로 간결한 어휘를 뱉어내는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서는 시적인 표현을 위주로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그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그래서 ADHD의 증상이 발현된 순간을 묘사한 마지막 트랙 “adhd”에 다다르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반부에는 그라임 사운드의 강력한 뱅어들이 모여있다. 대부분 2분 안팎의 짧은 러닝타임인 데다가, 비슷한 질감의 신시사이저 운용이 이어져 마치 한 곡이 죽 이어지는 듯하다. 프로덕션적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후반부다. 보컬 샘플링과 로우파이(Lo-Fi)한 질감의 악기를 운용하여 전에 없이 소울풀하고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었다. 마운트 킴비(Mount Kimbie)와 케니 비츠(Kenny Beats)가 프로듀싱하고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가 피처링한 “feel away” 같은 곡에서는 일본 멜로우 힙합 풍의 사운드가 느껴진다.
본인의 정체성을 가득 녹인 개성 강한 랩은 완성형에 이르렀다. 영국 힙합 특유의 발음과는 또 다른 독특한 발음으로 리듬을 밀고 당기며 그루브를 만드는 솜씨가 물이 올랐다. 마치 되는 대로 막 뱉어내는 것 같지만, 비트에 치열하게 따라붙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간다. 빠르게 단어들을 뱉어내다가도 “DEAD” 같은 곡에서는 속도를 늦춰 강약을 조절하기도 한다.
슬로우타이는 [TYRON]에 날 것의 자신을 그대로 담아냈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들을 향해 격렬한 분노를 토해내고, 나약하고 불안한 내면을 가감 없이 전시한다. 두 파트로 나눈 구성은 양극단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브렉시트 시대를 살아가는 이민자 출신 영국 청년들의 단상을 드러내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앨범은 그의 불안감과 ADHD 증세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끝이 난다. 하지만 본작이 그의 커리어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해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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