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Benny The Butcher & Harry Fraud - The Plugs I Met 2
- rhythmer | 2021-04-30 | 1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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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Benny The Butcher & Harry Fraud
Album: The Plugs I Met 2
Released: 2021-03-19
Rating:
Reviewer: 강일권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의 갱스터 걸작 [스카페이스, Scarface](1983)는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비백인 이민자로서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조직 보스 자리까지 오른 주인공 토니 몬타나(알파치노)는 자수성가 서사를 바탕으로 하는 래퍼들의 롤모델 캐릭터이자 주요 기믹이 됐고, 극중에 나오는 '세상은 너의 것(The World is Yours)'이란 상징적인 문구 또한, 래퍼들의 행동 방식과 가사에 적잖은 영감을 줬다.1980년대 후반 쿨 쥐 랩(Kool G Rap)이 싹 틔운 마피오소 랩(Mafioso Rap/*마피아 세계관과 요소를 바탕으로 전개하는 가사의 랩)의 새로운 부흥기를 이끈 래퍼 중 한 명, 베니 더 부쳐(Benny The Butcher)는 아예 [스카페이스]를 전면에 내세워서 작품을 만들어냈다. 유력 힙합 집단 그리젤다(Griselda)의 핵심 멤버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19년, 토니와 볼리비아 마약왕 소사가 함께 걷는 장면을 커버로 사용한 EP [The Plugs I Met]을 발표했다. '내가 만난 마약상'이란 독특한 컨셉트가 돋보인 앨범이었다.
[The Plugs I Met 2]는 그 속편이다. 커버 아트워크부터 다시 한번 토니와 소사의 만남 장면을 사용했다. [The Plugs I Met] 커버와 같은 시퀀스 다른 신이다. 다만, 이번엔 뉴욕의 베테랑 프로듀서 해리 프로드(Harry Fraud)에게 전곡을 맡겼다. [스카페이스]에서 소사는 토니에게 명과 암을 동시에 가져다 준 존재다. 토니는 소사 덕에 막강한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되지만, 결국, 소사 때문에 죽는다. 이처럼 양면성이 내포된 캐릭터 소사는 앨범에서 베니가 의도한 메시지의 핵심 메타포다.
첫 곡 "When Tony Met Sosa"에서 랩 음악계를 구했다는 세간의 평가에 랩 음악이 본인을 구한 거라며 겸손하게 시작한 베니는 이내 랩 게임을 장악한 과정과 성공 이후 게토에서의 삶을 진지하게 얘기한다. [스카페이스]를 비롯하여 여러 갱스터 영화 요소와 다양한 유명인을 레퍼런스 삼은 위트 있고 진중한 가사, 그리고 중후한 멋이 살아있는 플로우의 랩이 몰입도를 높인다. 이 계열의 선구자이자 최고급 랩 스킬을 지닌 래퍼 쿨 쥐 랩을 연상하게 하면서도 색깔이 확실하다.
전반적으로 은근한 자기과시와 극적으로 묘사한 마약상 이야기가 서사의 줄기를 이루지만, 정작 그가 하고 싶은 얘기는 랩 게임의 어두운 면을 자세히 알려주는 것이다. 많은 이가 드러내길 꺼려하는 랩 음악계의 부정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과 충고가 앨범 사이사이를 관통한다.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기보다 근사한 범죄 드라마를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에서 베니의 남다른 면모가 느껴진다.
피처링 중에선 2015년 살해당한 비운의 래퍼 칭스(Chinx)의 활약이 눈에 띈다("Overall"). 베니 이전에 칭스와 합작 믹스테입을 낸 바 있는 해리가 소장 중이던 그의 미공개 벌스를 넣자고 제안하면서 성사된 작업이다. 그 역시 탁월한 랩 실력을 지녔고, 코크 랩(Coke Rap)에 일가견이 있는 아티스트였기에 더할 나위 없는 컬래버레이션 곡이 나왔다. 칭스의 벌스에서 래퍼를 실력이나 메시지가 아닌 다아이몬드, 혹은 금 목걸이의 크기와 갯수로 평가하는 세태를 단 한 줄로 풍자한 'These ignorant motherfuckers measure you by your necklace, 이 무지한 새끼들은 너의 목걸이로 널 판단해'란 부분은 앨범에서 가장 빛난 라인 중 하나다.
진득한 랩으로부터 밀려온 희열을 해리 프로드의 프로덕션이 기어코 터트려버린다. 그는 아드리안 영(Adrian Younge)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의 '시네마틱 힙합' 프로듀서다. 이번에 고전 소울 음악은 물론, 사이 요시코(Yoshiko Sai)의 "胎児の夢 (Taiji No Yume)"(1977)와 타카나카 마사요시(Masayoshi Takanaka)의 "You Can Never Come to This Place"(1981)처럼 일본의 사이키델릭 포크와 재즈 퓨전 트랙까지 샘플링하여 더할 나위 없는 마피오소 랩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냉혹한 마피아 세계, 또는 빈민가의 거리를 그리듯 그의 프로덕션은 차갑고 음울하며, 무게가 있다. 특히, "Plug Talk"는 해리가 과거 스모크 드자(Smoke DZA)와의 합작에서부터 들려준 독보적인 사운드다. 808 드럼을 쪼개거나 하이햇을 부각하여 리듬 파트를 형성한 후, 사운드의 잔향을 슬쩍 퍼트린 신시사이저, 혹은 보컬 샘플로 멜랑콜리한 멜로디의 루프를 만들어 얹음으로써 매듭짓는 것이 특징이다. "Plug Talk"에서는 사이 요시코의 곡에서 샘플링한 보컬을 원료 삼아 원곡의 오묘한 기운을 극대화하여 808 드럼 위로 퍼트렸다.
해리 프로드의 비트가 극적인 흐름을 형성하며 흘러가고, 베니 더 부쳐의 랩이 탄탄한 기승전결로 갱스터 서사를 완성한다. [The Plugs I Met 2]는 깊은 역사를 지닌 마피오소 랩이 궁금한 이들에게 입문작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언더그라운드의 강자와 베테랑 프로듀서가 뭉쳐서 아주 우아한 범죄 랩 앨범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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